그 시절의 낭만을 모두 그러모아

옛 추억의 앨범을 다시 정리하며

by greensian


친정집에서 명절을 쇨 때 루틴 중 하나는 가족 앨범 보기다. 아니, 루틴이라기보다는 의미 있는 일종의 ‘의식(ritual)’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엄마 아빠의 결혼식 사진으로 시작되는 켜켜이 쌓인 추억의 지층을 꼭 보고 넘어가야 기분이 안정되는 느낌이랄까. 사진첩에는 한 편의 영화보다 더 아름답고 아련한 시간의 흐름이 세월의 파고 속에 물들어 있다. 사진을 보며 그때의 추억을 곱씹어 보고 회상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진이 말해주는 이야기를 만나느라 수다 꽃이 이어지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사진이 찍힌 시점을 기준으로, 미래의 내가 수많은 사진에 담긴 무수한 이야기들을 시간을 거슬러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당연히 사진 속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서사가 달라진다. 추억은 방울방울, 그 너머로의 시간은 언제 봐도 새롭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마냥 찬란하고 푸르른 청춘 그대로의 엄마 아빠를 만나는 시간은 특히나 더 그렇다.


엄마는 서랍에서 가족 앨범이 아닌, 종이 가방 하나를 들고나오셨다. 앨범이 오래된 탓에 인조가죽으로 덧대어진 겉표지가 삭아서 사진을 다 하나씩 뜯어내어 종이 가방에 낱장 그대로 쌓아 놓고 보관하셨다고 했다. 사진을 인화할 당시 필름 카메라에 날짜가 적힌 사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 게다가 시간도, 사진 속 인물도, 순서 없이 80-90년대가 마구 뒤섞여 있는 상태. 앨범이야 주문하면 그만이지만, 이 많은 사진을 어떻게 정리한담? (사실, 앨범 장수로 따지자면 많은 수도 아니다. 내 휴대전화 사진 보관함에 저장된 수만 장의 사진에 비하면 말이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새 앨범에 가지런히 옮기지 못하고 평생에 걸쳐 수집한 가족사진을 낱장 그대로 쌓아두고 있던 엄마 마음이 어땠을까 불쑥 새로운 질문이 송곳처럼 마음을 후벼댔다. 이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마침 아이들 겨울방학이 지나면 엄마의 칠순 생신이니, 앨범을 새로 정리해 선물로 드리자 마음을 먹었다.


클래식은 영원하지. 옛 감성 그대로 접착식 속지가 들어있는 앨범이 도착했다. 이 낱장의 사진들을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가장 단순하게 시간순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연도를 예측할 수 없는 사진들이 나와 애를 먹고, 인물 별로 구분했다가 양적인 균형감이 깨져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상황과 스토리 위주로 선별했다가 그 범주 안에 들어가기 애매한 사진들로 머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의 대서사가 담긴 한 권의 책이니까. 그냥 마구잡이로 사진을 담을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조금 더 욕심을 내 보는 수 밖에.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내적으로 귀찮음을 밀어낸 신남 모드가 더 발동했다. 사건과 풍경이 정지된 채 박제된,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재구성하는 편집자가 되기를 자처하며.


79년에 만난 남과 여로 시작되는 이야기. 흑백, 세피아 톤으로 만나본 부모님의 젊은 날은 눈이 부시다.

붉은 원피스를 입고 들판에서 밝게 웃고 있는 20대 엄마의 모습도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찬란하다. 꾸밈없이 순수하고 반짝거리는 그 시간만이 내뿜는 아우라에 전율이 스친다. 그 아름다운 청춘의 시간을 갉아먹고 나와 동생들이 자란 것이다. 엄마는 폐백 한복이 꼭 ‘무당 옷’ 같다고 싫어했지만, 그 당시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색감은 그 어디에서도 다시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함이 있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사진을 보다 보면 질문과 사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함께 한 용인 자연농원과 창경궁 나들이, 부모님 첫 서울살이 터전이었던 대림동, 바쁜 서울살이에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 촌스럽기 그지없는 꼬꼬마의 나, 구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옛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찍은 가족사진, 온 동네 사람들 수영장에서 함께 놀던 여름날 등. 다만, 지금 아쉬운 건 별이 된 소중한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땐 내가 너무 어렸고, 이야기를 꿰려면 부모님을 포함해 그 시절을 들려 줄 당시의 증인을 찾아야 한다.


사진을 보다 말고 상념에 젖는 일이 많아 앨범 프로젝트 마감일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많은 고비 끝에 한 권은 완성! 우선 이 한 권만 붙들고 있어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기를 평생 충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나로서 성장할 수 있던 생의 디딤돌이 사진첩을 펼치면 재현되니 말이다. 사진 한 장만으로 다 알 수는 없지만,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정 또한 날마다 새로울 테니까. 나 혼자만으로는 번역도 추론도 불가한 만큼 식구들을 붙들고 묻고 물어도 계속 궁금해지는 이야기가 와르르 쏟아져 나올 테니까.

저걸 보라고 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가리키고, 빛을 밝히는 것. 하지만 우리의 주목을 요하는 건 이미 밝게 빛나며 손짓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목격하기 위해, 감성 – 존 버거(John Berger)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는 법”(ways of seeing)-을 발전시킨다. 나긋나긋한 희망과 꿈, 기쁨, 취약함, 슬픔, 두려움, 갈망, 욕망을 – 인간은 저마다 하나의 풍경이다. 감정을 이입해 상상하면 편의점 금전등록기 앞에서 일하는 여자를, 트럭 휴게소 화장실에서 나오는 남자를,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비행기 복도를 오가는 어머니를 흘긋 볼 수 있고,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안다. 저걸 봐, 인간의 위기를, 누적된 평범한 축복을, 혹은 견딜 수 없는 상실을 그리고 여전한 한 줄기 햇살을, 빨래하는 여자를, 도살된 소를. 우리가 붙드는 삶을. 우리가 아는 삶을.

<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
대니 샤피로, 평범한 삶’ p.175중에서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아빠의 삶, 엊그제 칠순을 넘긴 엄마의 삶은 평범하면서도 낱낱이 들여다보면 ‘평범한 삶이었다’라고 함축시켜 말하기 어렵다. 없이 살았음에도 딸 둘에 아들 하나 잘 자라 이만하면 행복하다 하시지만, 쉬이 꺼낼 수 없는 깊은 고통과 쓰고 아린 기억들을 어떻게 다 풀어놓을 수 있을까.

투명한 접착지가 입혀진 사진을 손으로 훑으며 사진 너머로 새겨진 미지의 나날들은 여백으로 남겨둔다.

침묵이 자유로이 숨쉴 수 있도록.





<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

대니 샤피로 지음, 한유주 옮김, 마티(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