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물건’과의 이별은 너무 어려워
우리 집 거실 벽면 한쪽에는 아이들의 유년 시절에 그린 그림 컬렉션이 있다. 한글에 막 눈을 떴을 즈음, 글자를 그림처럼 그리면서 ‘ㄹ’을 좌우 반전으로 쓴 단어가 들어간 토막글과 크레파스로 빈틈없이 색칠한 그림, 노을 지는 에펠탑, 무지개와 구름과 비와 꽃 그림에 어우러진 짧은 시 같은 글, 아이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그려본 미지의 세계지도, 천체망원경과 지구 달 그림, 한 어린 영혼의 손이 이끈 자유로이 뻗어나가는 선의 흐름이 아기자기한 드로잉 등…. 온통 아이들 어린 날의 순수, 때 묻지 않은 고유한 감성,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유일무이한 작품인 셈이다. 이제는 부모와 함께 있기보다는 또래를 찾고, 자신만의 독립된 공간을 찾아 자꾸 부모의 품에서 떠나려는 아이들은 알까. 벽에서 떼어 내기도 아쉽고, 점점 바래져가는 종이가 안타까운 나의 마음을.
"난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김희성의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쓸모가 없어 쓸데없는 것들, 갖고 있어서 득이 될 것이 없으니 소용없는 것들. ‘시절 인연’처럼 남들은 진즉 정리하고, 정말 소중한 것들만 추려서 보물 상자에 간직했을, 시절 물건과 같은 이런 ‘무용’한 것에 난 왜 이리 집착하는 걸까.
It's like the end of an era.
하나의 시대가 끝난 것 같아.
미국 시트콤 <프렌즈> 시즌 10(에피소드 16)에 나왔던 이 대사도 꽤 오래 내 마음에 머무는 문장이다. 모니카와 챈들러가 부모가 되어 도시 외곽으로 이사를 결정하고, 레이첼도 파리로 떠나면서 10여 년을 가족처럼 지낸 친구들이 더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없게 된 상황과 이젠 각자의 삶을 향해 나아감을 바로 보여주는 대사여서 그렇다. 살림살이와 짐이 없는 텅 빈 집, 테이블 위에 집 열쇠를 남겨두고 떠나며 주인공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한 곳으로 향한다. 다름 아닌 이들의 영원한 아지트, ‘센트럴 퍼크(central perk)’ 카페다. 헤어짐을 앞두고 여운을 되새기려 함께 나누는 마지막 커피 타임이 될 그곳으로.
그 시절의 추억은 되새기기 마련이다. 정들었던 집, 함께 쓰고 누렸던 물건들과 짐, 그리고 그 물리적인 공간만 사라질 뿐 추억은 기억인자가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으니까. 점점 끝을 향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프렌즈를 상징하는 카페는 그대로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한 시절에 누렸던 공감각적 모든 추억은 과거로 향하는 마음의 문만 닫혀있지 않다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마음먹고 생각해도, 우리 아이들의 유년 시절은 나의 30대와 맞바꾼 흔적이나 마찬가지다 보니 추억을 되새김 직한 물성이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손가락에 아직 힘이 없어서 삐뚤빼뚤 서툰 글씨가 적힌 편지, ‘우리 집에 놀러 와’ 친구와 주고받은 쪽지, 크고 작은 공예작품들, 유년기적 읽은 책더미와 유치원과 어린이집 연간 활동 파일 더미들….
진작 이별했어야 할 유년 시절의 동화책에서 나온 짧은 감상평 쪽지 한 장을 보고 난 또 엄청난 시간의 파고를 넘어 그 시절로 여행을 떠났었다. 나 혼자만 아는, 나 홀로 시절 여행. 훌쩍 커버린 지금의 아이를 소환하면 그 꿈의 여행은 시간의 벽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냥 오롯이 나 혼자 쓸어 담고 쓰다듬으며 되돌아봐야 온전하게 보전되는 역주행의 고유한 맛과 감성이 있다. 말로는 풀어내기 힘들고 대화로도 헤아리기 어려운, 나만, 오직 나만 차지하는 타임슬립.
살다가 원치 않은 이사철을 맞이하면서 해묵은 짐을 한 번씩은 솎아내곤 했는데, 아이들이 4년 터울이라서 굳이 새로 사지 않고 물려 쓴 물건들이 많아 나도 모르게 더 마음과 눈길이 갔다. 버리기 아쉬워서, 제대로 버릴 줄을 몰라서 창고에 콕 처박아 두고 나서 시간이 흐르는 사이, 물건의 주인공들은 어느덧 10대로 훌쩍 성장했고 물건은 쓰임을 다 한 짐이 되고 마는 결말. 제때 정리하지 못하고 방치한 게으른 자아를 한참을 자책한다. 살림하는 엄마가 이래도 되는 거냐며, 지난해 정리 컨설턴트의 강연을 들으면 뭐 하나. 기껏 한 것이라곤 이불장 정리뿐이었는 걸. 배운 것을 제대로 적용하며 각 잡고 정리했던 당시 뿌듯함은 사라지고, 체계화되지 않는 정리의 부족하고 모자란 빈틈을 파고들며 자기 성찰로 화살을 돌린다.
생각의 굴레에 갇혀버린 반성은 안 하느니 못하다. 쳇바퀴 돌 듯 그 안에 갇혀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발목을 잡는 헛된 생각보다는 작은 행동 하나가 더 의미 있는 법. 이번 주의 거사는 바로 ‘베란다 창고 한 칸 비우기’. 작지만 내겐 ‘거대한’ 목표 하나를 세우고 재활용 수거하는 날에 맞춰 봄맞이 대청소, 그 첫 시동을 걸었다. 몇 년 전에 시트를 세탁하고, 고장 난 부품은 새로 교체해 지인에게 물려줄 준비를 맞췄다가 선물을 받게 되어 다시 보관하게 된 디럭스 유모차, 꼬꼬마 유아기적 장난감 옥스퍼드 레고와 토마스 기관차, 폴리 친구들 장난감, 아기자기하고 귀여워서 갖고 있던 원목 주방 놀잇감, 유년기에 읽은 전집, 그리고 당근마켓에 내놓아도 유행과 맞지 않아 외면당할 철 지난 짐들. 신기하게도 재활용 수거하는 날 밖에 내놓자마자 족족 해묵은 물건들이 사라졌다. 물건의 쓸모를 알아본 주인이 잘 찾아갔을 거라 믿는다. 아무쪼록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쓸모가 있기를.
대청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작 베란다 창고 한 칸 비우기만 성공했을 뿐이다. 내일, 아니 어느 날 어느 순간 덜컥 그 물건들이 생각나 울컥할 때가 오겠지. 그런데 지금 비워진 공간을 보니 허탈감이나 허망함보다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차오른다. 꽉꽉 찼던 창고를 볼 때마다 짓눌렸던 마음과 갑갑함이 사라지고 빈 공간만큼 숨이 쉬어진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가볍다. 버리지 못해 싸안고만 있던 미련함과 겹겹이 둘러싼 나태의 성벽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성취감도 느껴진다. 공간에 숨이 쉬어진다는 기분이 이런 것이라니. 뭐든 적체되어 있으면 새로움이 깃들 수가 없는 모양이다. 아직 자축할 정도는 아니지만, 봄맞이 대청소의 첫걸음마가 주는 신선한 환기와 자극이 새롭다. 수년간 행동하지 못한 주저함과 망설임을 단번에 털어내고 한 발 힘겹게 내디딘 날. 무한한 감격과 성장의 기쁨을 처음 안겨 준 아이들의 걸음마를 기억하듯, 오늘의 작은 성취를 기억하고, 잘했다 스스로 듬뿍 칭찬해 주자. ‘작은’ 성취라고 하찮게 여기지 말 것. 엄청난 용기를 낸 것이니 ‘큰’ 성취로 자축할 것. 나와 가족이 머무르는 모든 공간에 시선을 돌리고 욕심 내려놓고 하나씩 활기를 소환해 볼 것. 2026 봄맞이 대청소의 첫 시작, 다시 시작될 하나의 시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련다.
p.s
휴대폰 사진 보관함에서 ‘공간’이라는 텍스트를 검색하니 전에 읽었던 책, 그리고 관련 자료가 주르륵 나온다. 그중 영감이 되는 귀한 글감과 문장들을 발견했다. 모든 영감은 멀리 있지 않았구나. 다음에 이어질 공간 살리기 프로젝트를 실행할 때 새겨두고 싶어서 다시 기록해 두기.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집에 있을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말이다.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집을 아늑하게 꾸밀 줄 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가족을 위해서.
_한수희 에세이 [온전히 나답게] 중에서
만약 네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잘 챙긴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가득한 공간이 생기지.
그 공간을 상자 안에
넣을 수도 있고
그 공간을 친한 친구에게
줄 수도 있어.
_ 그림책 [아무것도 아닌 것] 중에서
모든 것은
날마다 많아져
모든 것들이 이미 아주 많아서
가득하더라도
언제나 더 많은 것들이 있을 공간은 있어
아직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들에게
좋은 소식이지.
모든 것은 정말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야.
모든 것을 위한 공간은
어디에나 있고 지금 여기에도 있어
모든 것은 모든 곳에 있어.
_ 그림책 [모든 것] 중에서
에세이 [온전히 나답게]
한수희 글, 인디고(글담) (2016)
그림책 [아무것도 아닌 것]
쇠렌 린 글, 한나 바르톨린 그림
하빈영 옮김, 현북스(2015)
그림책 [모든 것]
쇠렌 린 글, 한나 바르톨린 그림
하빈영 옮김, 현북스(2017)
cover image :
카페 ‘오느른’(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