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아니면 어때? 백스테이저의 꿈도 빛나거든

저마다 다른 그릇, 다른 재주가 있잖아요

by greensian

말수가 적고 숫기가 없는 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을 아끼고 대화보다는 주로 침묵을 택하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편이다. 특히 첫 만남, 첫 모임과 같은 낯선 자리에서 '자기소개' 시간이 이어질 때 내 차례가 한참 남았는데도 머릿속은 비상이다. 비상구가 있었다면 남들 모르는 사이 벌써 뛰쳐나갔을 지도. 앞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있지만 생각은 먼지처럼 부옇게 흩어지고 점점 순서가 다가올수록 머릿속이 하얘진다. 처음부터 뛰기 시작한 심장박동은 점점 고공행진. 머리로 시나리오를 구상해도 엉망이다. 그러는 사이 결국 차례가 오고 마는데... 상황이 닥쳐서 뭐라 말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순간은 휘발되어도 감정은 남는다. 잘하지 못했다는 생각, 역시 나는 말주변이 없고 무대체질이 아니라는 자책과 후회, 충족되지 않는 부족함과 불만족의 티끌들이 마음속 허공으로 떠오른다.


어떤 자리에서든 마이크 잡고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사람, 그 와중에 듣는 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면서도 유머와 입담까지 겸비한 사람, 무대가 제 세상인 듯 자유롭게 표현하는 사람이 세상 부럽다. 일대일 또는 소규모 구도의 안전한 울타리라고 생각되는 공간 안에서는 그나마 낫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발표'하는 일은 내게 너무도 두려운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직면해야 하는 순간엔 가상의 대본을 준비하고 극복 모드로 열심히 임해 보지만 끝에는 꼭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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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나는 교실에 있는 듯 없는 듯 유난히도 조용한 학생이었다. 과묵하고 소심했고, 선생님과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그저 고요히 묵묵히 해 내는 아이였다. 친구들에게 나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특기는 바른 글씨체가 전부. 글자를 반듯반듯 정자체로 잘 쓰는 편이어서 선생님 대신 판서를 맡아 쓰는 '조용한 만년 부반장'이 나였다. 남들은 인생 역전의 기회를 만나 성격이 확 바뀌는 모먼트를 경험한다고들 하는데, 나의 성격은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았다. 타고난 본성을 받아들였고, 성격을 반전시킬 만한 찬스도 딱히 없었다. 나서서 발표하거나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글이 더 편했다. 어쩌면 일기에 코멘트를 달아주고 공감해 주는 선생님이 좋아서 글쓰기를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나를 드러낼 이유가 없었지만, 글 속에서 나는 긴장감을 덜고 좀 더 유연하게 나를 드러냈다.


5학년이 된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사회 시간에 나를 칠판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괘도에 있는 표를 설명하라고 발표를 시켰다. 내게 뭔가 극적인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선생님은 발표력도 리더십도 전혀 없는 나를 자극시켜 어떤 기댓값을 유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생님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말 한마디 뻥긋하지도 못하고, 내 앞에 앉아있는 수 십 명의 친구들과 눈을 맞추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5분, 10분쯤 지나자 선생님은 나를 다그치더니 크게 한 마디 쏘아붙였다. "너는 부반장이나 되어서 그깟 발표 하나 못하니?!"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얼음!" 하고 외치지 않아도 경직된 얼음이 되었고, 보이지 않는 점처럼 아주 작아졌다. 점점 더 보이지 않는 존재, 그러니까 투명망토를 쓰고서 아예 없는 존재로 서 있었다. 해리포터의 망토가 내게 있었다면 진작 숨고 말았을 텐데. '그깟' '발표'라니. 부반장이면 모든 걸 잘 해야 하나? 내겐 인생 최대의 장벽이자 나를 최약체로 만드는 엄청난 도전과제인 것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터덜터덜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던 그날의 씁쓸하고도 슬픈 기억이 아직까지도 허탈하고 가슴이 쿡쿡 아려온다. 두고두고 그 선생님을 미워했고, 지금도 그 분이 야속하다.어린 날의 내가 경험한 모멸감은 지독히도 나를 지배했고 공개석상에서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일에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러다 이렇게 조용히 있는듯 없는듯 살아서는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 건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였다. 그저 조용히, 가만히 있다가 어떤 기회도 갖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채로 평생 살아간다는게 말이 돼?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과 표현의 의지는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고 살아남기 위한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아리 문을 두드렸고, 무대에 직접 서지 않고도 무대 뒤에서 백스테이저로서 나의 기량과 깜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인생 첫 터닝포인트를 만났다.


원고를 꾸리고, 취재를 하고, 제작물을 만들고, 무대 위에 올려질 콘텐츠를 기획했다. 그 숫기 없고 잠자코 있던 애가 대학 방송국 제작부 PD일을 하다니. (5학년 담임 선생님! 보세요!믿겨지시나요?!) 가수를 초청해 선보인 방송제 행사 2부에서 우리가 기획한 프로그램의 진행 시간이 더 늘어나는 바람에 가수 섭외를 담당했던 내가 무대 뒤 한편에서 매니저에게 한바탕 크게 혼나던 순간에도 무대는 안정적으로 돌아갔고 객석 반응은 절정을 찍었다. 무대에 선 가수는 준비한 노래를 다 하고도 오히려 대학생 제작진들이 기획한 코너를 다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앙코르도 준비한 것 그 이상으로 열정을 쏟아냈다. 우리를 존중해 주고 열성을 다 한 그가 어찌나 고맙고 감사한지. 그 덕분에 냉정한 매니저의 분노에도 굴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다. 내게 최고의 뮤지션으로 기억될 그가 아니었더라면, 이후 나의 커리어도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지도. 새로운 분야에 성큼성큼 도전하며 나날이 성장해 가는 그 뮤지션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백스테이저로서 꿈을 꾸었던 스무 살의 나를, 그에게 큰 빚을 진 그날을 끊임없이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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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저절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공개석상에서 반듯하고 멋있게 잘 말하고 발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로서 나를 드러내 보이는 행동이다. 사실 말하기도 일종의 훈련이라 일단은 편하고 자연스럽게 생각을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그만이다. 5학년 선생님의 망신 주기 식의 말 한마디는 교육이라 할 수 없다.나의 행동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만 강화되었으니까. 기질적인 면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교육도 반대한다. 어린 날의 나처럼 숫기 없고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들이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갖고 있던 가능성마저 부정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기질과 장점을 꾸준히 관찰하고 이끌어주는 어른의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그릇과 재주는 각기 다르고, 다양한 조화로움으로 인해 사회는 돌아간다. 너그럽고 따스한 어른들의 시선이 좀 더 풍요롭게 어린 새싹들에게 닿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