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과 남겨진 것

봄날의 꽃갈피, 코팅기와 폐기물 더미 사이에서

by greensian

자연의 문을 열고 계절의 한가운데를 통과할 때, 이따금 나뭇잎 꽃잎을 줍곤 한다. 하늘하늘 일렁이는 바람에 이파리와 꽃잎을 떨굴 결심을 한 나무들이 한 치의 미련과 후회 없이 자유로운 꿈을 누릴 때, 허공으로 흩어진 꿈의 조각들을 책 사이사이에 끼워 집으로 데려 온다. 단출한 차림으로 외출하느라 가방 안에 책이 없을 땐 지갑 속 종이 카드 사이 혹은 영수증 사이에 슬며시 꽂아 두었다가 집으로 달려와 책을 펼쳐 종잇장 사이에 고이 끼운다. 자연의 흙으로 돌아가 땅의 양분이 되어 다시금 자연을 길러 낼 그 꿈의 조각들을 굳이 담아 오는 건 애착일까 집착일까. 그렇게라도 지나가는 계절의 일부를 잠시라도 붙들어 두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이파리와 꽃잎을 끼운 책 위로 아이들 어릴 적 보던 자연도감 책을 열댓 권 정도를 꺼내 책 탑을 쌓아 올려 무게감을 준다. 집에서 가장 쉽게 압화 하는 방법이다. 특별한 도구는 없다. 사부작사부작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다.


그러고는 까먹고 지낸 일이 허다하다. 언젠가 꽃잎과 이파리를 끼워 둔 책을 발견하면 잠시 지난날을 추억하다 바싹 마른 잎이 색이 누렇게 바래지고 가벼운 터치에도 쉬이 바스러진 적도 많았다. 나에게 코팅기가 생기기 전 까지는 말이다. 학령기 자녀를 둔 집이면 코팅기를 구입해 아이들 놀이 또는 학습 자료로 많이들 쓴다는데, 난 쓸 일이 많지 않아 굳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 내가 코팅기를 집에 들이게 된 것은, 동네 친구들과 폐업한 회사의 물품이 당근 마켓에 대거 나왔다고 해서 근처에 구경 삼아 나들이를 갔던 날이었다.


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야외에 마련된 창고에는 없는 물건이 없었다. 새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들이 창고에 가득했다. 갖가지 사무용품은 물론 의자, 선반, 조립가구 등 생활용품에 컵, 그릇과 같은 주방용품과 소품 등 거의 대부분 사용한 적 없는 새 물건이었다. 다만 겉 박스 위에 먼지가 소복이 쌓였거나 아님 박스 상태가 조금 찢어져 있거나 그 정도. 종류는 무한대였으니 필요한 건 보석을 발굴해 내는 매의 눈과 감각이 전부였다. 물건의 종류를 최대한 빠르게 눈으로 훑고 필요한 것이 뭔지 찾아내는 능력 말이다. 안타깝게도 나에겐 그런 스피드와 재능은 없는데 어쩌나. 워낙 많은 가짓수의 물건이 한데 뒤섞여 있기도 하고 흩날리는 먼지로 인해 잠깐씩 현기증이 일어 멍하니 구경만 하던 찰나. 누군가는 새 박스에 들어있는 어린이 훈련용 젓가락(에디슨)을 발견하고, 간단히 조립해서 쓸 수 있는 선반장을 발견하며 감탄사가 들려왔다. 그때 친구 하나가 박스 속에 잠자고 있던 코팅 기계를 보고 나를 찾았다.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코팅기가 들어있는 박스 위로는 덤으로 코팅지 100장도 비닐 팩에 봉인되어 있었다.


폐업 물건을 팔고 계신 아저씨에게 가격을 물었다. 코팅지까지 단 돈 2천 원. 단, 코팅기에 전원이 들어오는지는 테스트해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제대로 작동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2천 원이면 정말 괜찮지?! 함께 간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렇게 해서 어영부영 손으로 들어온 코팅기계를 들고 동네 단골 카페로 와서 코드를 콘센트에 꽂아 보았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예열되기를 기다렸다가 마침 가방에 들어있던 아이의 추천 도서 목록 종이 한 장을 꺼내 코팅을 시도했다. 오! 10분도 안 되어 코팅 완성!


손과 눈이 누구보다 빠르고 감각적인 동네 친구들 덕에 굴러 들어온 코팅기는 꽤나 쏠쏠하다. 낱장으로 굴러다니던 일본어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종이도 코팅기를 만나 잘 보관하게 되었고, 볕 좋은 날 주워 온 단풍잎과 은행잎도 아끼는 지인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벚꽃이 지는 올봄에도 꽃갈피를 매끈하게 감싸주어 이 계절을 기억하는 소박하고도 근사한 선물이 되어 주었다. 부디 책을 읽는 시간에 의미 있는 친구가 되어 주기를.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는 한 누군가의 손에서 돌고 돌기를.



그나저나 창고 가득 채워진 중대형 폐기물들과 남겨진 수많은 집기들과 생활 물품들은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안타깝게 사업장을 접은 이들의 탄식도 식어버린 지 오랫동안 방치되고 적채 된 물건들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 인간의 필요로 탄생하고 다시 필요에 의해 소리 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물건들을 생각한다. 자연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처음부터 '영원한 쓸모'란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의 물건들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헐값에라도 새 주인을 만나면 쓸모를 발휘할 접점이 생기고, 재활용(리사이클링 recycling) 또는 업사이클링(upcycling) 기술로 폐기물의 가치가 재탄생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파기 대상으로 버려질 일만 남겠지.


문득 그림책 [플라스틱 섬]이 떠오른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플라스틱 쓰레기 섬에 갇혀 버린 그저 호기심 가득한 새들과 바다생물들의 고통은 점점 커진다. 그 고통의 끝은 인간의 몸 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물건의 쓸모를 말하는 것은 철저히 인간의 관점이다. 가치가 있고 없음을 재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더는 쓸모가 없어서, 쓸모를 다했기에 버려지는 것은 냉혹하고 처연하다. '쓸모없다'는 말을 인간에게 갖다 붙이면 얼마나 또 가혹하고 냉정한 일이 되는가. 돌아볼수록 거짓도 모순도 없는, 존재의 쓸모 자체를 따지지 않는 너그러운 자연의 섭리가 얼마나 숭고한지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