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하는 새 아침의 풍경이 있다면 이렇게
첫 조카를 향한 애정이 남다른 여동생이 스치듯 하던 말이 심장을 콕 파고든다. 중학생 사춘기의 파고를 넘고 있는 조카를 바라보며, "넌 기억 안 나지만 이모는 생생해. 말문이 트여 쫑알쫑알 말을 잘하기 시작했을 무렵, 자고 일어나면 네가 불광동 외가댁 온 방문을 열고 총총총 뛰어다니며 외쳤어. 아침이야 아침! 일어나요. 태양이 떠떠. 아침이라고!"
동생은 마치 세상 문을 처음으로 여는 마음으로, 잠에서 깨어 눈을 뜨자마자 이불속에서 뭉그적거리지도 않고 스프링처럼 곧장 튀어 올라와 해맑고 기쁘게 온 식구들 모닝콜을 자처하던 세 살 조카의 모습이 그렇게도 선연하다고 했다. 아침이 온 게 저리도 신기할까 생경하면서도, 아이의 아침 인사는 걱정과 불안과 염려로 물든 어른의 아침에 차갑고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창문을 열어 바깥 날씨를 살펴보기도 전에 ‘온통 신남’으로 채색된 아이의 들뜬 목소리. 그 낭랑한 목소리는 어른들에겐 매일같이 다를 바 없이 시작되는, 다소 무감각해진 아침 일상에 감각을 깨우는 자극제였다.
요즘 우리의 아침은 어땠을까. 졸린 눈을 비비고 아침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야 하는 중3, 초5 두 아이들의 평일 아침 풍경은? 자차에서 지하철로 머나먼 출근길을 택하고 이제 세 번의 계절을 향해 가고 있는 남편에게 아침이란? 새로운 하루가 열리는 날일까, 그저 고단하고 피곤해서 기상과 동시에 퇴근을 떠올리는 날일까. 각자의 온도차는 달라도 모두가 한 마음으로 바란다. 금요일아, 어서 오렴.
온통 경탄으로 가득 찬 아이의 명랑한 행동, 기대와 희망을 품은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하던 아이의 말이 가끔은 그립다. 그런 에너지, 어디서 찾아야 하지? 그때를 떠올리며 아이처럼 에너지를 가득 부어 넣은 ‘솔 톤’으로 “아침이야 아침!"을 외쳐보지만, 정작 아직 꿈속을 헤매는 아이들은 엄마인 나의 모닝콜이 그리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이미 한 차례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알람 시계를 끄고 다시 잠에 빠진 아이들은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당기며 3분만, 5분만 더 따스한 이불속에서 꾸물거린다. 주말이라면 얼마든 허락하겠지만, 오늘은 평일이거든! 5분 기다렸다 더는 한 치의 양보 따위는 없는 B사감 엄마 출동이 곧장 이어진다.
나의 루틴대로 라디오를 켜고 커피를 내린다. 밥을 찾는 첫째 아이, 빵을 좋아하는 둘째 아이의 취향 사이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가 부담스럽게 말고 간소하게 둘 다 차리기로 한다. 잡곡 넣은 따끈한 밥은 예약 시간 맞춰 취사 완료. 멸치 바지락 코인 육수 넣은 끓는 물에 감자 넣고 계란 휘휘 풀어 감자 계란국을 끓이고, 마침 엊그제 냉동실에 쟁여 놓은 미니 크루아상 생지를 꺼내 토스터 오븐에 굽는다. 몇 분 뒤 땡! 타이머가 울리고 간단한 아침 밥상을 차린다.
[오늘의 아침 메뉴]
잡곡밥
감자 계란국
김구이
노른자 터뜨린 계란 프라이와 데친 브로콜리
명란젓
미니 크루아상
사과
알록달록 칵테일 토마토
이 정도면 아침으론 부담 없는 메뉴 아닐까. 밥상을 차리는 나도, 먹는 가족도. 첫째는 뜨끈한 국물에 밥을 적셔 식사를 시작하고, 둘째는 바사삭! 크루아상 한 입 베어 물며 부스러기를 남긴다. 남편은 국은 건너뛰고 밥과 반찬으로 속을 채우고. 저마다의 여정을 향해 집을 나선 후, 식탁엔 크루아상 하나와 발사믹 글레이즈 뿌린 오색 빛깔 칵테일 토마토와 브로콜리는 그대로 남았다. 커피와 함께 내 몫이 되겠군.
세 살 어린아이가 온몸으로 기쁘게 감탄하며 맞이하던 그런 격정적인 아침의 분위기는 아니지만, 무탈하고 평온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감사한 마음과 함께 각자의 리듬대로 움직이는, 과거와는 다른 아침 풍경이 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멘트와 음악 소리, 수저와 그릇이 부딪히는 작고 여린 소리, 오물오물 거리는 소리, 이따금 나갈 시간을 재촉하는 나의 잔소리가 공존하는 그런 아침. 그러고 보니 평일은 네 식구가 오롯이 식탁 앞에서 마주하는 시간이 아침뿐이구나. (퇴근이 늦는 남편은 주로 저녁을 해결하고 오는 편. 아이들은 저마다 학교 학원 일정이 다르다 보니 초저녁에 한 끼 식사 같은 간식을 먹고, 중학생 아들이 학원 마치고 오면 형제의 두 번째 저녁 식사가 이어진다) 온 식구가 함께 하는 평일 아침 식사가 새삼스럽게 각별해진다.
새롭게 발표된 악뮤의 4집 정규앨범을 들으며 타이틀 곡 '기쁜, 슬픔, 아름다운 마음'만 무한 재생하던 중에 가사를 보다 새로워 멈칫하게 된 곡이 있다. 바로 '우아한 아침 식사'. 내가 추구하는 아침 풍경을 정확히 그려낸 가사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살아가는 건 기적과도 같아. 세상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저마다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면 된다고. 음악 들으며, 아침 햇살 받으며, 고요함을 깨뜨리며 우아하게 아침을 먹으면서 말이야. 대단히 잘 차려진 정찬이 아니라도, 소박한 밥상 나누며 그렇게 아침의 고요함을 깨우고 오늘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어가는 것 말이야.
'우아한 아침 식사'
우아한 아침 식사를 하자
스둡둡 두루 스두루루뚜
소음을 뭉개는 고요함의 반란
스두비두비 두바바
음악은 클래식
날 바보로 만드는 아침 햇살
세상을 바꾸는 건 말야
사실 불가능하단다
저마다의 정원을 가꾸자
스둡둡 두루 스두루루뚜
소음을 뭉개는 고요함의 반란
스두비두비 두바바
식탁은 거룩히
축복의 땅이 준 빵과 계란
살아간다는 건 말야
기적과도 같단다
_ 가사 : 악뮤(AKMU) 4집 앨범 [개화] 중 '우아한 아침 식사'
아침이면 늑장을 부리며 꾸물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짜증 섞인 감정이 올라왔던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그저 마냥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던 순간들은 두고두고 흔적을 남겼다. "궁디팡팡!" 응원의 기운을 듬뿍 얹어주지 못하고 잔뜩 날이 선 말들로 생채기를 내고 나면 온종일 마음이 찜찜했다. 꾸깃꾸깃 구김살이 진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는 일은 고통스럽다. 아닌 척하려 할수록 틈새를 비집고 못난 감정들이 새어 나와 하루가 얼룩지니 말이다.
밝고 해맑은 해처럼 그렇게 구김살 없이 맞는 새 아침을 기대한다. 기쁘고 벅차게 아침을 맞이했던 지금보다 더 어린 날의 너희들을 자주 소환하며.
나도,
너도,
우리 같이
우리의 아름다운, 우아한 아침 풍경을 함께 만들어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