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벨을 들어 올리는 여자
“매뉴얼 핸들링(manual handling)이 왜 돌봄에서 중요한지 설명해 봐요.”
면접관이 질문했다. 돌봄 일을 시작한지 2년이 되어 가는데 총 다섯 번의 면접을 봤다. 대부분 캐주얼 돌봄사들은 두 세개의 에이전시를 끼고 일하거나, 하나는 에이지드 케어의 요양원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가정방문 에이전시를 끼고 캐주얼로일을 한다. 총 다섯 번의 면접에서 꼭 등장하는 질문이 바로 매뉴얼 핸들링 관련이다.
멜번에서 돌봄 영역은 전세계에서 온 이민 여성들이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최초의 노동 진입 장벽이 낮고, 애를키우며 일하기 좋고, 여성들의 인생 자체가 케어로 점철된 삶이 대부분이고, 남성 고객들도 여성들의 케어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고, 유창한 영어 기능이 요구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내 영어 실력으로 영어 교사를 하려고 한다면 부담이지만, 돌봄 영역에서 내 영어 실력은 “꽤” 우수한 편이다. 간호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영주권을 획득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직업이다 보니 젊은 여성 이민자들 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간호학을 공부하고간호사가 되기도 한다. 요양원에 가보면 아시아에서 온 젊은 스태프들이 주를 이루고(호주 이민자의 반 가량이 아시안이다), 가정 방문 돌봄에서 슬립오버(sleepover)를 책임지는 상당수의 케어러들은 간호학을 공부하는 젊은 이민 여성들이다. 낮에는 공부를 하고 밤에는 고객들을 케어하면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그렇다 보니, 젊은 돌봄 노동자들이 넘친다. 20대의 학생들부터 30-40대 돌봄 노동자들이 많다. 특히 장애분야는 에이지드 케어 분야에 비해 젊은 활동 지원사가 많다. 나랑 같은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장애 지원사들은 갓 20대를 지난 청년들이 많다. 장애인의 탈시설화가 마무리 된 호주이니 장애인들이 커뮤니티에서 어울려 살고,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다양한 활동과 일상유지에 대한 욕구는 20대 젊은이들, 특히 남성들에게 매력적인 직업군이 되고 있다.
“케어러의 안전을 위협하는 지원과 케어는 금지”가 돌봄의 원칙이다.
말 그대로 Safety First이다. 돌봄을 업으로 삼은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는 “Duty of Care” 인데, 이 때 Care 에는 돌봄을 받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돌봄 제공자인 케어러들의 돌봄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가령, 연로하신 어르신을 모시고 외부 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진다고 해도 케어러들에게 몸으로 부축하지 말 것을 교육 과정에서부터 가르친다. 부축하려다 더 큰 부상이 일어나기 쉽고, 법적 책임으로 휘말릴 가능성이 있고, 케어러마저 부상을 당했을 때는 쓰러진 고객의 안전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이유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끄덕. 호주문화와 시스템, 살다 보면 참 합리적일 때가 많다.
유사한 맥락에서 케어러들은 고객을 직접 “몸”을 써서 지원하지 않는다. 요양원 뿐만 아니라, 가정 방문 지원에서도 마찬가지다.고객이 간단한 부축만으로 일어나서 거동할 수 없다면, 호이스트(Hoist)나 스탠딩 기계를 써서 휠체어에 앉힌 후 이동을 시켜야한다. 장애 지원에서도 휠체어를 타는 장애 아동이 가볍다고 장애 지원사인 내가 번쩍 안아서 이동 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시스템은 과도한 신체적 접촉과 문화적 차이에서 올 수 있는 각종 불미스런 불화들을 예방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멜번에서 케어러로 일을 해 보면 기계 없이는 도저히 들어 올릴 수 없는 ‘Big’ 한 고객들이 너무 많다. 한국에서의 ‘Big’과 호주에서의 ‘Big’은 같은 ‘Big’이 아니다. 잘록한 개미 허리와 가녀린 몸매를 소유하지도 않았지만, 내 몸무게의 두배가 넘는 고객들을 어떻게 호이스트 없이 들어 올릴 수 있단 말인가? 한국의 천하장사 씨름 선수가 와도 기계 없이 매일 이런 일을 하라면 쉽지 않을 게다.
“오늘 고객 혼자서 지원 못하겠어. 나와 고객의 안전을 위해 파트너 케어러 한 명 더 넣어줘.”
침대에서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말기 암 고객을 지원하고 나니 허리가 빠질 듯이 아프다. 내가 젤 꺼리는 지원 중 하나다. 지원이 끝나고 당장 에이전시에 요구한다. 가정 방문 케어러들의 권리라고 교육과정부터 배운다. 난 배운 대로 행하는 모범생일 뿐이고 이렇게 배웠을 뿐이다.
“절대로 혼자 감당 할 수 없는 케어를 할 수 있다고 자만하지 말기!”
‘왜 저런 당연한 것까지 가르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케어러들을 양산하는 교육 과정에서 부터 ‘매뉴얼 핸들링’은 중요한 교육과정이다. 어이없게도 바닥에 놓여 있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방법부터 가르친다. 막상 현장에 나가 보면 매뉴얼 핸들링은 치명적으로 케어러들에게 중요하다. 호이스트 같은 기계 사용 여부에 무관하게 케어러들의 직업은 매뉴얼 핸들링으로 가득하다. 밀고, 당기고, 들어 올리고, 구부리고, 옮기는 이 모든 일련의 작업들은 매뉴얼 핸들링이고 우리 케어러들의 업무는 모두가 이런 몸 쓰임 동작들의 연속이다. 그렇다 보니 케어러들은 각종 근골격계의 손상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쉽다. 주변 지인중에도 케어러 몇 년 하고 허리가 아파서 치료 받는 일이 주가 된 분이 계시다. 타산지석, 난 저런 상황을 초래하지 말아야지, 다짐을 새긴다.
난 오늘도 덤벨을 들어 올린다. 건강 약자인 내가 일을 시작하기 위한 필수과정은 운동이었다. 힘을 써야 하는 직업, 근육을 키우고 근력을 강화하는 길만이 나의 노동을 보장해 준다는 사실을 알자 운동에 재미가 붙었다. 돈도 벌고 건강도 챙기고.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 아닌가!
인생 중반에 접어드니 근육 늘리는 일은 젊을 때와 다르다. 아마 이 삼십 대에 지금처럼 덤벨을 들어올리고, 싸이클링을 했다면난 온 몸이 근육 돼지가 되어있을 게다. 가는 세월 잡을 수 없고 지나간 세월 되돌릴 수 없는 게 인생. 근육 돼지는 꿈꿀 수 없어도 케어러란 직업 덕에 난 거침없이 소멸되어가던 근육을 붙잡아 두는 사람으로 변신했다. 아, 케어러란 직업의 위대함이여! 넌 내 노후의 건강까지도 관리해주는구나.
그런데 왜 근력을 키우는데도 Bed wash 고객은 이렇게 허리가 빠지게 아픈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물리치료사와 상담을 받아봐야겠다. 언젠가는 내 신체 조건 때문에 고객을 가리지 않고 받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위해.
*근골격계 질환: 무리한 힘의 사용, 반복적인 동작, 부적절한 작업자세, 날카로운 면과의 신체접촉, 진동 및 온도 등의 요인으로 인해 근육과 신경, 힘줄, 인대, 관절 등의 조직이 손상되어 신체에 나타나는 건강 장해를 총칭.
*Bed wash: 각종 이유로 욕실로 갈 수 없어서 목욕 대신 침대에서 따뜻한 타올로 간단히 씻기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