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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외계인 Apr 03. 2024

나의 돌봄 노동 해방 일지

Don‘t take it personal!

“이상하네, 차에서 고양이 소리가 나는 거 같아요.”


70세 NDIS (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 고객 J를 내 차에 태우고 식료품을 사러 마트에 가는 길.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가 들렸다. 작은 동물, 그러니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가 고양이였고 난 고양이가 숨을 내쉬는 소리가 자꾸 들리는 거 같다고 했다. 사실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아서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긴 하다. 알고 보니 천식이 있는 J가 내쉬는 소리였다. 난 천식이 없고 가족 중에도 천식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천식을 가진 사람이 어떤 숨을 내쉬는지도 당연히 들어 본적이 없다.


J는 거의 삭발이다. 격주로  Barber shop 에 가서 10불을 주고 깍는다, 아니 민다? 7살 즈음에 부모님을 따라 몰타 섬에서 호주로 이민을 왔다는 그녀는 옅은 푸른 빛의 깊고 큰 눈에 오똑한 코를 소유했는데 아주 짧은 헤어스타일이 참 잘 어울린다. 다른 내 장애 고객과는 달리 스몰 토크(small talk)도 잘 이어가고 기능(function)도 꽤 괜찮은 J, 왜 “멀쩡해” 보이는 그녀가 NDIS , 즉 장애지원을 받는지를 첫눈에 알아보기 어려웠다.


장애는 한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visible) 장애가 있는 반면, 깊게 오래 들여다 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는(invisible) 장애가 많다는 사실을 장애를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다운 증후군처럼 한 눈에 장애를 알아 볼 수 있는 경우도 많지만, 수많은 정신 장애나 발달장애인 들 중에는 전혀 장애인처럼 보이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몇 년 전 한국을 강타한 드라마의 주인공 우영우가 내 곁에서 아무 말 없이 머문다면, 난 그가 자폐인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 할 게다.


J를 고객으로 받고 첫 몇 주는 운전하는데 신경이 곤두섰다. 뚜렛 증후군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지, 처음으로 당사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터.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그녀는 수시로 벌떡 벌떡 몸을 일으켰고, 손을 번쩍 번쩍 들어 올리고, 킁킁 끊임없이 소리를 냈다.


놀라웠다. 워커에 의지해서 걸으며 덩치가 내 곱은 되어 보이는데 어떻게 몸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을까. 비자발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녀의 신체로 인해 운전 중에 신경이 곤두섰는데, 한 달 즈음 지나자  더 이상 그녀의 뚜렛이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어라.


J는 SRS(Supported Residential Service)에 거주하신다. SRS는 또 다른 형태의 요양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제일 쉽다. 어르신들 중에 요양원에 갈 정도로 High Care 가 필요 없거나 , 중년 성인들 중에 자립할 능력이 없는데 돌 볼 가족이 없는경우, 장애를 가진 성인인데 돌볼 사람이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저렴한 렌트비를 주고 머무는 형태의 주거다. J가 머무는 SRS는 20여명의 남녀 입주자가 살고 있다. 오래된 건물 안에 화장실이 딸린 여러 방들 중 하나가 J의 Home이다. J는 NDIS 펀드로 일주일에 두 번씩 케어러가 방문하는데 이 시간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다.


“여기 방에 앉아 있으면 우울감에 시달려.”


치매 초기, 장애, 노쇠, 연고가 전혀 없는 독거노인, 조현병 등등. 각자마다 인생의 우여곡절이 모여 이곳으로 밀려온 사람들이 대다수다. 은유 작가의 말처럼 “그냥 사는 사람이 없”듯이 여기 온 사람들도 사연 없이 그냥 온 사람이 없다. J와의 첫 만남은 이랬다.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


한날 SRS의 메니저인 K가 나를 보자고 했다. 난 6개월 정도 그 곳에 거주하는 연고자가 아무도 없는 할머니 고객 D를 일주일에 두 번씩 지원하고 있었다. K 의 설명에 따르면 J는 속은 여리고 따듯한 사람인데, 성격이 불 같고 감정 조절이 쉽지 않아서 케어러들이 오래 붙어 있질 못하고 떠난다며, 나더러 J를 지원해줄 수 있냐고 제안을 했다. 역시 K는 고수다. 하필 나의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문장을 날렸다.


“너라면 J를 감당할 수 있을 거 같아.”


J는 정부에서 주는 Age Pension으로 생활한다. 그녀가 젤리, 알커피, 초콜렛, 생수, 우유, 티슈 등의 물품들을 바구니에 담을 때마다 나는 빠듯한 그녀의 예산에 맞춰 옆에서 핸드폰의 계산기로 가격을 더한다. 격주마다 나오는 pension으로 렌트비를 내고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고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려니 언제나 돈이 모자르다. 2달러 샵에서 산 5 달러 짜리 장지갑을 열어 5센트, 10센트, 50센트짜리 동전까지 탈탈 털어 세어 보기를 몇 번해야 장보기가 끝난다. 언제나 돈이 모자라서 바구니에 담았던 물건을 도로 내려 놓아야만 하는 J. 돈이 없어서 장보기도 금방 끝난다. 그 기분은 좀 안다. 원래 수중에 돈이 없으면 쇼핑을 가도 흥이 별로 나지 않고, 반면에 살 물건이 딱히 없어도 지갑이 두툼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재미가 붙는다.


J는 욕을 입에 달고 산다. 처음 욕을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웠는데 지원이 길어지면서 그녀의 형편을 이해하니 나라도 욕을 입에 달고 살 거 같다. 욕이라도 해서 현실의 불행이 잠깐이라도 해소 된다면 욕쯤이야. 인내심도 제로인 J는 수시로 흥분을 하고 화를 낸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 본인이 꼭 사고 싶었던 젤리가 품절이면 Fuck을 날린다. 계산대의 줄에 5명만 서 있으면 참을 수가 없어 안절부절이며 짜증을 낸다. 주차장에서 내가 주차하려던 곳에 다른 사람이 주차를 하면 어김없이 욕이 튀어 나온다, Bastard! 그녀가 나의 영어 욕 선생이다.


“I am so sorry with my language, daring!”


미워할 수가 없는 캐릭터다. 욕을 막 쏟아 붓고는 바로 나에게 사과한다. 웃음이 터진다. 내 앞에 외계인이 출몰한 기분이다. 반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생생한 캐릭터의 소유자를 만나본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지인들은 어떻게 그분과 매주마다 3시간을 보낼 수 있냐고 의아해 한다. 나를 아끼는 지인은 “당장” 지원을 그만두라고 한다. 가끔은 증상이 심한 날이 있는데, 내 인내심 게이지도 덩달아 출렁인다. 다행히 이젠 요령이 생겨서 심한 순간엔 그녀가 하는 말들을 의도적으로 듣지 않는다. 어차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집중을 해서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도 않는다. 세상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편리한 점도 있다니. 이젠 멘탈 이슈가 있는 고객이 내 멘탈을 털어가는 순간엔 마음 속으로 되새기는 나만의 전략이 있다.


“Don’t take it personal!”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 NDIS (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 호주 국가 차원의 장애 보험 제도

*Age Pension: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들이 기본 생활을 유지하도록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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