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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외계인 Apr 14. 2024

나의 돌봄 노동 해방 일지

가정방문 케어러의 임종기 2

“할아버지, 할아버지, 제 말 들리세요?”

 

불길하다. 오래전 아버지의 임종 순간이 떠오른다. 숨을 어렵게 한 모금 들이마신 할아버지는 한동안 숨을 붙들고 계신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내가 코에 손을 갖다 대본다.

 

마지막 숨을 한 참 만에 내쉬는 고객, 이 순간 문제는 죽음에 대한 공포 따위가 아니다. 여기가  호주란 사실이고, 요양원처럼 동료 요양 보호사나 간호사가 상주하지 않는 나홀로 가정방문 지원중이란 사실이고, 더 난감한 사실은 호주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란 거다.  

 

매 주 토요일마다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고객 T를 방문하고 있었다. 84세인 할아버지는 24/7 돌봄이 필요해서 케어러들이 3교대로 방문했다. 당뇨를 오랫동안 관리하시던 할아버지는 작년에 암으로 수술을 받으신 후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셨다고 했다. 워커에 의지해서 힘겹게 화장실을 가시고 기본적인 이동을 하셨던 할아버지는 작년 연말에 악화되어 병원에서 한달 넘게 지내다 오신 터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신 후 방문해서 보니 할아버지의 돌봄은 일반침대 대신 병원침대로, 워커 대신 휠체어로, 화장실 대신 소변통으로 바뀌었다. 병원 입원 전에는 잠에 취해 계시다가 가끔씩 깨어나 나랑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며 힘없이 따스한 미소를 보내던 할아버지는 대화 한 마디 못하고 고통에 신음하셨다. 이제는 Palliative Care 상태로 돌아섰다. 노인의 건강 상태란 한낱 신기루 같다고 여겨졌다. 몇 달 동안 만나온 할아버지와 가족들과 정이 많이 들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당일 3시,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자 뭔가 심상치 않았다. 자녀 3남매와 배우자들이 모두 와 있었고, 짙고 무거운 안개가 온 집안을 휘감고 있는 듯하다.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던 오전 근무 케어러가 말했다. 지난 밤에 할아버지 상태가 악화되어 응급팀과 Palliative Care 팀이 다녀갔고, 지금은 몰핀을 맞은 후라서 각별히 낙상에 주의하고 할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며 “Good luck”을 날리며 퇴근을 했다. 에이전시에서는 밤 근무(밤 10부터 다음날 아침 8시 근무)에는 경력이 많은 간호사 케어러가 배치되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지원을 캔슬하고 도망가고 싶은 맘이 굴뚝같다. 몰핀을 들어본 적은 있으나 본적도 몰핀을 맞는 사람을 본 적도 없는데 걱정이 앞을 가린다.

 

무사히 내 근무가 끝나가고 있었다. 9시 40분 경 인수인계를 위해 약물 복용, 당뇨 체크, 소변의 양과 횟수 등등을 기록하고 있는데 할아버지 방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번개의 속도로 달려갔다. 집이 워낙 넓은 집이라 한참 달려야 한다. 놀란 할머니도 뒤따라 들어왔다. 

 

“매기, 매기.”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두 번 불렀다.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할머니는 두 번 답했다. 금슬 좋은 부부 답게 할머니는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이마에 키스를 두 번 하셨다.

 

너무 아프다고 온 몸으로 표현 하시며 의료팀이 복부에 삽입한 몰핀 주사를 위한 튜브를 만졌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전 간호사가 아니라서 주사를 놓을 수가 없어요. 10시에 간호사가 오면 도와 드릴 거예요. 15분만 기다려 주세요.”

 

찰나 생각했다. ‘아 씨, 간호사가 될 걸 그랬나.’

 

고통과 병마와 싸우느라 몸에 붙은 통통했던 살들이 낱낱이 사라진 후 볼이 움푹 들어간, 얼굴이 일그러진 할아버지는 일어나 앉고 싶다고 하셨다. 물론 너무 허약해서 혼자 앉을 수가 없으니 내가 부축하고 있는데 “퍽”하고 뒤로 넘어지셨다. 아득한 곳을 응시하는 눈동자에 초점이 없다. 오랫동안 참고 있던 마지막 숨을 약하게 내쉬는 할아버지, 속으로 생각한다. 

 

‘그 많은 케어러가 당신 곁을 지켰는데 왜 하필 저인가요?’ 

 

생각은 생각일 뿐,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 또한 나다. 우선 당황한 할머니에게 말씀드린다.

 

“할아버지는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계신 거 같아요. 가족들에게 연락해 주세요.”

 

할머니는 너무나 놀라서 바르르 떠신다. 할머니를 안아 드린다. 할머니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진다.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할아버지 그동안 감사했어요. 할아버지의 자상함과 따듯한 미소를 잊지 않을 게요. 이제 편안하게 쉬세요.”

 

이 순간 60대로 보이는 간호사가 등장했다. 나에게 구세주는 하늘이 아닌 지금 내 눈앞에 도래했다. 마침내 내 숨이 쉬어진다. 들어서자 마자 상황 파악을 한 간호사는 청진기를 꺼내 할아버지의 숨을 확인한다. 할머니에게 사망하셨음을 알리고 일사천리로 후속 조치를 진두지휘를 한다. 멋지다. 역시 경험과 연륜 앞에 난 찌그러든다. 그 순간에 나의 안부까지도 챙긴다.

 

“Are you okay?”

 

눈물이 조금 흐른다. 직업인이니 눈물을 조절하는 법도 안다. 

 

“혹시 남아서 할아버지 씻기고 옷 갈아 입히는 거 좀 도와 줄 수 있니?”

 

땡큐다. 너무 배우고 싶고, 마지막 순간을 나에게 허락하신 할아버지의 마지막 채비도 도와드리고 싶다.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할아버지의 자세를 똑바로 눕히고, 뜬 눈을 감기고 젖은 타올로 몸을 씻긴다. 물 티슈로 치아를 닦아 드리고, 기저귀를 새 걸로 갈아 드리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힌다. 새 이불보로 덮어 드리고 입이 벌어지지 않도록 수건을 둘둘 말아서 턱밑에 받친다. 그리고 일년동안 매달 첫째주에 할머니에게 꽃 배달을 시키던 낭만주의자 할아버지를 위에 꽃병에 있던 싱싱한 연주홍 장미를 가슴 위에 놓아 드렸다.

 

밖으로 나가보니 지근거리에 살던 자식들이 도착해서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할아버지 가족은 사랑과 친밀감이 넘치는 보기 드문 가정이다. 자식 3남매가 효자 효녀다. 매일 아버지를 방문하고 병간호에 지칠 엄마의 안부를 챙기던 자식들이다. 이런 가족은 근래에 멸종위기에 가까운 존재들이라 그런지 신기하고 부럽고 부끄럽기도 했다. 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그리고 요양원에 거주하시는 어머니에게 이런 효도를 하지 못하고 살고 있고 10남매인 내 형제자매들은 이렇게 돈독한 우애를 유지하며 살지 못했다.

 

아마도 경제적으로 부유함에 인자함과 자상함을 겸비한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일 게다. 퇴근하려는 나를 본 가족들이 다가와서 안아주며 고마움을 표한다. 슬픔이 슬픔을 포갠다.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별이 반짝인다. 


*Palliative Care: 완화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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