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방문 케어러의 임종기 1
왜 하필, 과 어쩜 좋아,가 교차한다. 머릿 속이 하얗게 질리고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잖아도 나이가 들면서 머릿 속에 들어 있던 지식과 정보들이 술술 빠져나가서 생각날 것도 많지 않은 터이다.
아버지의 임종을 목도한 적이 있다. 20대 중반, 신입 교사 시절이었다. 시골 사시던 집에서 많은 자식들에 둘러 싸여 마지막 긴 숨을 거두셨다. 내 부모는 슬하에 10남매를 두셨다. 자식 사랑이 남 달라서가 아니라 그 시대에는 시골 대부분의 가정이 그랬다. 지금 시대처럼 아이 양육이 취향에 맞거나 부부가 여러 명을 키울 능력이 되어서 열 손가락 만큼 출산한 것은 아니다. 가족 계획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었고, 피임도 없었고, 생기면 낳는 시절이었고, 일손이 항상 딸리는 농촌에서 자식은 일손을 보태는 노동력이기도 했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들이 너무 자주 죽어서 예비로 많이 낳던 시대였고, 이런 근거 없는 소문이 낭자하던 시절이었다.
“지 밥숟갈은 알아서 다 물고 태어난다.”
아버지는 마지막 유언대로 꽃상여를 타고 무덤으로 가셨다. 꽃상여를 메던 인부들은 9남매(첫째 오빠는 부모보다 일찍 사망했다)가 발길마다 놓아주는 돈 봉투를 사뿐 사뿐 즈려 밟으며 묘지로 향했다. 2000년대 초반이었다.
그 뒤로 한국의 장례 문화는 급속도로 변했다. 아버지가 타고 간 꽃상여가 내가 본 마지막 꽃상여였고, 우리집이 가정에서 장례를 치르는 마지막 가정이었다. 그 뒤로 친구나 지인, 학교 동료들의 부모 장례는 언제나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에서 이뤄졌다. 자본주의적 장례 신문명이 초스피드로 한국을 휩쓸었다. 역시 한국은 뭐든 화끈하다.
요양보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분들이 있다. 요양원에서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종종 보게 마련이고, 죽음을 보는 일이 두려워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접는 예비 요양보호사가 있다. 죽음은 젊고 건강하고 팔팔한 존재들에게 환영 받지 못한다. 생생한 젊음과 노쇠한 죽음의 간극은 너무 깊어서 생각할 빌미를 주지도 않지만, 생각만으로도 불편하고 두렵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길인데도 그렇다.
간혹 세상에는 ‘생생한’ 젊음을 누리지 못하는 “변종”이 있게 마련이고, 그게 바로 나였다. 숨 쉬는 일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고통스러워 본 사람들 만이 알 게다. 다음날 아침이 와도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의 심정을. 그런 기도들로 채워진 날이 많던 나에게 죽음을 목도하는 일은 공포스럽거나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실제 나이와 신체적 나이가 불균형을 이룬지 오래 된 몸이었다.
또래처럼 활동을 할 에너지가 없으면 책을 많이 읽는 법이기도 하다. 돈 안드는 가장 좋은 시간 때우기라 그렇다. 건강 약자라고 해도 하루 24 시간은 똑같이 주어졌고, 깨어 있는 시간은 많았고, 그 시간은 무료했다. 자연스럽게 병듦과 늙음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았다. 또래 친구들은 뭘 더 배우고, 도전하고, 계발하고, 즐기고, 투자할 생각을 하는 동안에.
“돌봄 일이 너무 재밌어.”
너무나 지루한 표현 같지만, 세상 모든 일엔 음과 양이 있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란 직업이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고 재밌었다. 맞춤 옷을 입은 듯 일과 고객을 만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진실되게 말하면 재밌었다. 내가 오랫동안 책으로만 보던 장애와 병듦과 늙음을 실제로 눈앞에서 목도하고 경험하는 일이니 몰입도가 높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애 지원사 교육 과정 중에 요양원에서 거주하시는 어르신들이 사망하는 경우에 요양보호사가 해야 할 일을 간단히 배웠다. 요양원에서 17년을 근무한 피지 출신의 강사가 유투버 선생의 영상을 틀어주며 설명해줬다. 물론 그녀의 완벽하지 않은 영어 설명보다 유투버 선생의 영상이 더 효과적이긴 했다.
참고로 난 요양 보호사 자격증 대신 장애 지원사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호주에서 두 과정의 교육과정은 상당히 교차하기에 하나를 공부하면 웬만하면 양쪽을 다 일할 수 있다. 두 과정 모두 대략 6-8 개월 정도가 소요되는데 120시간 즉 한 달간의 실습을 끝내야만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한 달 교생 실습을 하고 교사 자격증을 받은 경험보다 더 짜릿하다. 한국에서 교사가 되기 위한 실습 시간이 호주에서 요양보호사 되기 위한 시간과 같다. 그래서인지 요양보호사란 직업이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느껴진다. 뭐든 상대적인 법이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제 말 들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