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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외계인 May 04. 2024

나의 돌봄 노동 해방 일지

호주에선 “장”자만 들어가면 다 좋아. 2

지난 여름 방학, 내 생애 첫 장애캠프는 시선을 강탈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집합 장소에 속속 도착하는 장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알록달록 다채로웠다. 초등부터 중등까지 연령과 성별, 진단명도 다 달랐다. 장애 세상은 넓고 배워야 할 일은 무궁무진하구나, 심장이 뛴다, 배울 게 많으니 내 인생이 지루하진 않겠지. 백세 인생 시대에서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더 많으니 차근차근 배우면 되겠지 싶다.


‘저렇게 high needs 인 당사자도 참여를 하네.’


토끼처럼 놀란 눈이 쉽게 닫히지 않는다. 유달리 한 여학생의 등장은 시선을 오랫동안 잡아 두었다. 휠체어의 feet rest 에 올려진 다리는 AFO가 신겨져 있고, 양팔은 팔목을 고정해 주는 보조기구를 착용했고, 목은 옆으로 기울어진 채 앞으로 떨구고 있다. 지적장애와 신체장애를 모두 겸비한 중 1 여학생은 기본적인 언어 소통만 가능했다. 일대일로 밀착 지원중인 20대 초반의 젊고 거칠 것 없어 보이는 장애 지원사 R이 미는 휠체어에는 주렁주렁 가방이 달렸다. 이박 삼일 동안 복용할 약을 담은 냉온가방, 간식 가방, 기저귀 가방,  Full wheelchair 사용자이다 보니 취침과 화장실 사용에 필수인 hoist(lifting machine) 를 사용할 때필요한 슬링까지 챙겨왔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묵을 숙소에는 이미 hoist 가 구비되어 있고, 휠체어 사용자의 욕구에 맞게 시설이 완비되어 있단 뜻이기도 하다. 또 이번 캠프의 이동과 활동은 hoist 가 구비된 공공 시설들로 동선이 짜여진다는 뜻이고, 멜번의 공공 시설들에는 대부분 휠체어 사용자들의 신변처리에 필요한 공간과 기구들이 구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정도로 중증이면 한국에선 바깥 구경이 어려웠겠죠.”


멜번에서 한 달 살이를 하고 간, 멜번에 살고 싶어하는, 자식들을 멜번에 살게 하고 싶은 한국 사는 친구 담쟁이가 내 직업담을 들으며 종종 하는 말이다. 그라고 해서 자기 모국의 현실을 이렇게 야박하게 평가 내리고 싶진 않았을 게다. 서글픔은 때론 언어를 뺏는 법이어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다.


목욕과 신변처리, 식사 및 약물 복용, 이동 등 이박삼일 full time 지원이 필요한 당사자를 지원하는 장애 지원사 R은 20대 초반으로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다. 멜번에서 에이지드 케어의 요양 보호사와 장애 지원 분야는 간호학을 공부하는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구직터다. 시급도 다른 일반 직종보다 높고 현장 실무 경험을 중시하는 호주 노동 문화에서 향후 졸업 후에 구직을 원할 때 선발의 아주 중요한 자격요건이 되기도 한다. 일년 넘게 지금의 당사자를 지원하고 있다는 R은 약물 복용 지원도 척척, 맞춤화된식사나 간식 제공도 척척, 봉고차에 휠체어 탑승과 하차도 척척, 기구를 사용한 신변처리도 척척, 야무지고 당차다. 좀 멋지다.아직 내가 도전해보지 않은 지원을 해내는 그녀를 보면서 마음 속의 각오를 다진다. 나도 더 분발해야지.


이번 가을 방학 캠프에도 어김없이 휠체어 이용 고객이 왔다. 이번엔 두 명이다. 두번째 경험이라서 덜 당황스럽다. 클래식 기타를 어깨에 메고 온, 밝은 금발에 늘씬한 체형의 세컨더리 학생 A , 인물이 훤하고 호감이 가는 스타일이다. 다른 한 명은 완전 삭발한 머리에 헤드셋 비슷한 보조기구를 끼고 등장한 젊은 청년 B. 그는 청력을 완전히 잃어 머리 속에 청력 보조 장치를 심었다고 한다. 지적 장애, no speaking, 다리엔 AFO를 장착 한 B는 삼킴 기능이 좋지 않은 지 연신 침을 질질 흘리고 옆에서 일대일지원을 하는 지원사 네이단은 티슈로 연신 침을 닦고 있다. B는 이민가방을 들고 캠핑을 왔다.


“으 어어어~”


평소에 쉽게 듣지 못하던 소리, B가 자지러지게 웃는다. 말을 못하는 장애인은 웃음소리도 다르다는 걸 장애분야에서 일하면서 알게 됐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손까지 팔락이며 온 몸으로 웃는다.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B랑 말을 잘하는 네이든이 서로 소통하며 웃는다. 둘은 흔하디 흔한 말이 아니라 오슬란으로 연결된다. 장애인들과 캠프를 가보고 알았다. 호주에 살아서 내 유능한 한국어가 아무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들이 난무하듯이 때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신통방통한 말이 장애인들 속에서는 참으로 하잘것 없기도 하다. 그나저나 궁금해 죽겠다. 둘이 무슨 말을 하기에 저렇게 즐거운지, 나도 그 대화에 끼고 싶다.


“너 오슬란 어디서 배웠어?”


오슬란을 쓰는 네이단이 너무 멋져 보여서 질문이 툭 튀어 나온다. 그리고 결심한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오슬란을 배워봐야 겠다고.


이박 삼일 동안 묵을 사설 캠프장에는 Giant Swing 과 Giant Flying Fox등 다양한 신체 활동 프로그램이 계획되어 있었다. 이기구들을 타는 날, 사설 기관에서 일하는 4명의 스태프가 두 명의 휠체어 사용자들을 위한 특별한 기구들을 들고 왔다. 멜번 공원에서 종종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그네는 봤어도 휠체어 사용자들이 일반 그네도 아닌 하늘을 나는 대형 그네를 탈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매번 느끼지만 한 존재의 상상력도 국경을 넘기는 어렵다.


30여 분의 안전장치 장착과 안전 점검을 한 후 줄에 매달린 B가 슬금슬금 하늘위로 올라간다.  더 높이 더 높이 B는 줄이 닿을수 있는 끝까지 오른다. 그리고 하늘을 앞 뒤로 가른다. 오늘도 B는 신이 났다. 허공에서 너무 신이 나서 으어어~ 를 연발한다. 땅 위에 선 사람들이 우러러보며 박수를 친다. 너도 나도 마땅히 누려야 할 기쁨이다.


장애는 상대적이다. 장애인끼리 모여 있어도 순간순간 차별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다. 이박 삼일 캠프 동안에도 다운 증후군인 내 고객은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곳은 싫어해서 거실에 나가지 않는다. 반면에 신체 장애인은 특별한 보조 기구나 장비등이 제공되지 않으면 야외 활동에서 소외된다. 말을 못하는 발달장애인들은 수어를 사용하는 주변인이나 AAC가 제공되지 않으면 소통에서 제외되기 쉽다. 그러니 결국 이번 캠프에서도 진부한 결론에 이른다.


“사람 중심의 개별화된 지원이 필수!”


캠프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모든 비용은 호주의 장애보험공단(NDIS)에서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AFO, AFO를 신기 위한 신발과 양말, 휠체어, AAC 등 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도 장애보험공단에서 지원한다.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국가가 부담하기 위해 생긴 제도가 NDIS 다. 이박 삼일간 지원사들의 수당과 당사자들의 먹고 자고 활동하고 이동하고 입장하는 모든 비용이 포함되니 당연히 참가자들의 참가비가 높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이런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운영되기 어렵고, 이런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결과적으로 시설에 갇히거나 집에 갇히는 장애 당사자들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일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지인 J에게 전화를 건다.  캠프를 다녀와서 흥분한 내가 주저리주저리 보고를 한다. 학생들이 체험학습 다녀와서 체험학습 보고서를 작성하듯이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보고를 한다. 신문명을 만난 사람은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만방에 신문명을 알려 상상력이 국경을 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B가 하늘을 가르듯 다른 나라의 또 다른 B들도 하늘을 갈라야 한다. 호주에서는 자식이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일이 공포스럽지 않겠어요, 맥 없이 내뱉는 담쟁이의 부러움이 한국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왜 캠프에서 제공되는 식사마저도 이렇게 맛있냐며 숨도 안 쉬고 감탄을 쏟아내는 내게 J가 툭 한마디를 던진다.


“언니, 호주는 “장”자만 들어가면 다 좋아요.”    


*세컨더리(Secondary): 중고등학교

*AFO(Ankle- Foot Orthosis): 무릎과 발에 채우는 보조기

*오슬란(Auslan): 호주 수어

*AAC(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보완대체 의사 소통, 구어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말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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