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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외계인 Jun 11. 2024

나의 돌봄 노동 해방 일지

아들, 엄마 돈에선 똥 냄새가 나

돈을 버는 일이 달라지자, 돈 씀씀이도 달라졌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교사일 때 임금은 추상적이고 실체가 없는 돈처럼 느껴지곤 했다. 반면에 멜번에서 비정규직 시간제 알바로 요양보호사와 장애지원사를 하면서 버는 돈은 즉각적이고 직관적이다.


교사의 임금은 월급제이고, 호봉제이다. 솔직히 난 내 월급 명세서의 출처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교사를 그만뒀다. 매달 입금액이 달랐고, 각종 명목들이 달랐고, 명절이면 명절 휴가비가 목돈으로 입금되었고, 내가 주당 몇 시간을 일하고 받는 돈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설령 행정실 담당자가 설명을 해줬더라도 내 머리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게다) 주는 대로 받고 살았다. 아주 수동적인 자세였다고나 할까?


반면에 시간제 알바로 일하는 지금은 아주 능동적으로 내 노동시간을 계산하고, 페이슬립을 보면서 일주일에 몇 시간을 일하고 있는지, 어느 에이전시가 시급이 좋으니 그 쪽 일을 늘려야 하는지를 가늠해 보기도 하고, 시급 높은 주말이나 공휴일 시급도 꼼꼼하게 계산하면서 일한다. 적극적이고 주인의 자세로 전환했다고나 할까?


한국의 교사일 때는 월급제였지만, 멜번에서의 시급제로 일하는 내 에이전시는 주급제(weekly)와 격주급제(fortnightly)이다. 이번주에 일하면 다음주나 이주 뒤에 따박따박 나의 노동의 발걸음이 꾹꾹 찍혀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내 노동이 얼마나 귀한가에 대해 아주 즉각적이며 실제적인 감각들이 자란다.


교사의 노동은 애매하다. 하루 종일 말을 녹음기 자동 재생하듯 하고 기본적으로 하루의 너덧 시간은 서서 일을 하지만 육체 노동이라고 간주되기 어려운 점이 있고(대부분 가만히 서서 하는 일이라서 그런 듯하다), 수시로 학생, 학부모, 관리자나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에서 정신적이거나 감정적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쉬운 위치에 있지만 정신 노동으로 분류되기 어려웠다(교사가 학생이나 학부모와의 위치에서 권력을 가진 위치에 있기 쉽기 때문인 듯하다).

    공휴일 새벽. 요양원 출근 길


반면에 나의 일, 특히 요양원의 요양보호사란 돌봄 일은 완전히 육체 노동이다. 3D 직종이다. 한국에서 간병이나 돌봄을 왜 타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도맡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물론 장애지원은 당사자의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연령 무관하게 남녀노소 모든 사회 구성원의 신변처리를 책임지는 직업에 몸을 담갔다.


 특히 요양원에서의 기본적인 7시간 근무의 태반은 변 처리를 하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씻기고 움직이지 못하는 고장 난 몸들을 들어 올리고 떠 받치고, 부축하고, 육중한 침대 같은 의자(Princess chair) 생활 하시는 분들을 이리저리 옮기고 밀고 하는 일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아침 근무로 두 세명만 목욕을 씻기고 나면 줄줄 흐르는 땀으로 내가 목욕을 하고 있다. 입주자들은 물로 목욕을 하고 요양보호사인 나는 땀으로 목욕을 하는 꼴이다. 그래서 내 몸에선 쉰 내 나는 땀이 흐른다. 처음에 너무나 쇼킹했다. 그리고 깨달음이 왔다.


‘아, 나는 이제 육체 노동자구나.’


이렇게 번 돈을 쓸 때 나는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과연 이게 내가 꼭 사야 하고 돈을 지불해야만 하는 일인가, 거듭 고민을 한다. 3D 직종에 몸을 담그는 일은 그 자체가 훌륭한 경제 교육이다. 내가 돈을 허투루 쓰면 쓸수록 똥을 닦는 일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이 자각은 나의 돈 씀씀이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교사일 때 나는 돈을 ‘생각’없이 큰 ‘고민’없이 쓰는 사람이었다. 교사의 월급이 대단히 많지는 않았지만 싱글 생활에 큰 지장이 없었고, 철밥통이라 생각하면 매달 끊임없이 마르지 않는 분수처럼 입금이 되었고, 교사란 직업의 지위에 맞는 생활을 해야만 할거 같아서 주변 동료들처럼 방학이면 해외로 떠났고, 맛집을 찾아 다녔고, 철마다 옷을 샀다.


지금은 맛집을 가고, 옷을 사고(요양보호사나 장애 지원사의 직종에 맞는 옷이란 아주 편안한 바지와 티셔츠와 운동화다), 놀러가고, 불필요해 보이는 물건을 살 때마다 진상 어르신이 떠오르고, 어깨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역겨운 똥 냄새와 치질 걸린 할머니의 항문에 연고를 바르고 형태가 뒤틀리고 퉁퉁부은 발가락에 엎드려 연고를 바르는 내 모습들이 떠오르곤 한다.


내가 돈을 쓰면 쓸수록 이런 순간들을 더 자주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절약하는 마음이 마치 신생아가 자고 나면 쑥쑥 자라듯이 자란다. 그리고 가장 큰 결정적인 차이는 교사는 방학과 휴일에 무관하게 월급이 나오지만, 시급제 알바는 일하지 않으면 입금이 제로라는 점이다.  


No work, No money!  


아들은 한번도 노동의 대가 없이 용돈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다. 만 열살 되던 해부터 주당 $10, 본인 나이와 꼭 맞는 용돈을 매 주 지급하는데(현재는 주당 $12), 본인의 나이와 역량에 걸맞는 몇 가지 집안 일을 해야만 그 돈을 받을 수 있다. 하교 후 도시락 가방 싱크대에 가져다 놓기, 개어 놓은 자기 옷가지를 자기 방 옷장에 정리하기, 식사 후 그릇 싱크대로 옮기기, 학교 가방 정리하고 자기 등과 같은 사소하고 작은 일로 시작을 해서 지금은 강아지 물주고 밥주기, 자기 빨래 개서 정리하기, 식탁 차리기, 식기 세척기 정리하기, 숙제 끝내기, 저녁마다 쓰레기 버리기, 주말엔 마트 가서 식료품 가방 들어 나르기, 금요일은 간단한 도움 받으며 저녁 만들기 등으로 제법 역량을 키워오고 있다. 아들이 나중에 나이 들고 나서 다른 아이들은 노동 없이 용돈을 받아 썼다는 사실을 알면 분개할 지도 모르겠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가불해서 쓰는 성격의 엄마가 아니다. 이런 엄마 만난 일 또한 아들 팔자려니 한다.


“아들, 엄마 돈에서는 똥 냄새가 나.”


한날 아들에게 경제 교육을 단디 시키겠다고 다짐하며 부지불식간에 나온 말이다. 용돈이 꽤나 모인 아들은 너그럽게 돈을 썼다. 친구들에게 점심도 잘 사주고, 이발소에 가선 팁도 주고(12살 짜리가 팁이라니?), 빌려 준 돈을 받아내지도 못하고, 얼마 안되는 몇 불은 안 갚아도 된다고 아주 후한 인심들을 주변에 날렸다.


요양원에서 쉰내 폴폴 날리게 일을 하고 배추 절여 놓은 몸으로 돌아온 엄마 눈에 가관이었다. 돈 버는 일의 고됨, 돈 쓰는 일의 엄중함, 돈 쓰는 일의 우선 순위, 돈 쓰는 일의 현명함에 대해 말하자 아들은 억울해 하며 반문했다.


“왜 내가 번 돈을 내 맘대로 쓰는데 화를 내?”


아들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들이 돈을 벌기는 했으나 그 돈은 진짜로 번 돈이 아니다. 아들이 하는 일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태어나서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일일 뿐이고, 엄마는그 구실로라도 일하지 않고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가르쳐 주고 싶었을 뿐이니까.


“아들, 부모에게 받는 돈은 돈 버는 게 아니야. 니가 제 3자가 원하는 노동을 하고 돈을 벌어야 진짜로 돈을 버는 거야.”


천성이 착하고 따듯한 아들이 얼마나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허리 아픈 엄마를 위해 핫팩을 가져오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캐모마일 차를 가져온다. 그 속에서 엄마는 흡족하게 미소를 띤 채 가물가물 해진다. 육체 노동의 진미가 바로 이때다. 일을 끝내고 난 뒤의 나도 땀이 아닌 물이란 걸로 샤워를 하고 취하는 휴식이 꿀보다 달콤하다. 침대 속으로 깊이 빠져 든다.


그리고 똥 냄새가 허브차로 덮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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