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는 외계인 Jun 13. 2024

나의 돌봄 노동 행방 일지

돌봄의 순환

세 명의 요양보호사가 달라 붙었다. 내가 일하는 요양원의 치매가 가장 심한 입주자 N, 그녀를 아침마다 씻기는 일은 결연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치매환자 치고는 착한 치매에 속하는 편인 그녀는 옷을 갈아 입히고 씻길 때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돌변한다.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완강히 버틴다. 피지 출신인 그녀가 피지어로 말을 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이해 못하나, 본인의 뜻에 반하여 세 명이나 달려 든 우리들에게 화를 내며 호통을 치는 것 외에 뭐가 있겠나? 


옷을 벗기고 욕실로 안내하는 데만 몇 십분이 소요된다. 달래고 어르고 이성적으로 샤워의 필요성도 피력해 보고,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인생 중반이 넘은 요양보호사들이 노래도 하고 몸을 들썩여도 보지만 도통 통하지가 않는다. 


옷을 안 벗겠다고 바지 자락을 꽉 쥐는 그녀의 손에 나의 손목을 내어 준다. 그 사이 다른 요양보호사 한 명은 바지를 내리고 똥이 새어 나온 기저귀를 벗긴다. 입맛이 좋아 먹여주는 식사와 간식을 싹싹 드시는 할머니는 인풋(Input)에 비례해서 아웃풋(Output)도 엄청나다. 나머지 한명은 그녀의 윗옷을 벗기느라 실갱이를 한다. 신체적 장애나 특별한 질병이 없이 인지적 퇴행이란 치매로 요양원에서 살고 계신 그녀는 힘이 장사다. 그 아비규환의 순간에도 내 머리 속에 이런 불길함이 스친다. 


‘이러다 내 손 목 부러지는 거 아냐?’ 


아침에 그녀 방에 들어가면 퀘퀘한 똥 냄새가 가장 먼저 반긴다. 매일 세 명의 요양보호사가 달라 붙어 씻기고 닦여도 기저귀를 착용하고 기저귀에 용변을 보시는 그 분에게서는 냄새가 가실 날일 없다. 덧붙여, 씻는 일을 너무 싫어하셔서 우리의 손길을 일일이 거절하시는 그녀를 애시당초 깨끗하고 깔끔하게 씻기는 일은 정복하기 힘든 과제이기도 하다. 


“인간이 세상에서 제일 흥미롭지!?” 


샤워를 겨우 마치고, 이마에 송송 맺힌 땀을 닦으며 동료 요양보호사 아이린이 말한다. 아이린은 다른 요양원에서 치매 환자들만이 모인 시설에서 일한 치매 돌봄의 신이다. 혼잣말인지, 나에게 하는 질문인지 아리송하다. 내가 장애지원사와 요양보호사란 일을 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느끼는 감정이다. 세상에서 인간만큼 지루하지 않고 영원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가 또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나 싶다. 가장 오묘하고 가장 신비하고 가장 위대하고 가장 난해하고 가장 실망스럽기도 한 존재, 인간. 


‘벽에 똥칠하며 산다.’ 란 말은 어려서 부모님과 시골에 살 때 동네 어른들 얘기들 틈에서 종종 들었다. 1980년대 한국의 산골 마을엔 종종 벽에 똥칠을 하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위생, 의료와 복지가 현저히 낮던 시대이니 도시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을 듯하긴 하다. 어린 나에겐 현실감 없는 얘기들이었다. 유년기를 거친 인간이 본인의 똥처리를 못한다는 사실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왜 더러운 똥을 벽에 칠 한단 말인가? 


돌봄이란 일에 발을 담그고 치매 어르신들을 보면서 벽에 똥칠 한다는 말이 사실이란 것을 알게 됐다. 남 똥 치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요양보호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요양원 같은 시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금 같은 장수란 말이 시대의 화두가 되는 시절에 벽에 똥칠하는 분들은 세상에 넘쳐날 게다. 


요양보호사 세 명이 달라 붙어야 샤워 한번 시킬 수 있는데, 요즘처럼 핵가족화 된 가정에서 치매 어르신을 매일 아침 씻길 가족들이 얼마나 될 것이며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목욕 한 번 시킬라면 징글징글 해.” 


나의 아버지는 임종 전 이 년을 누워 생활하셨다. 시골 집에서 혼자서 아버지를 간병하던 엄마는 종종 말씀하셨다. 엄마는 아버지가 눕기 전에 이미 3년을 본인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에게는 외할머니를 같은 집에서 간병하셨다. 그 시대의 한국 시골엔 모두 좌식생활을 하던 시절이어서 침대도 없이 엄마는 방바닥에 붙어 외할머니와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살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허리 좀 펴고 사나 했더니 바로 아버지가 누웠다. 


“이 놈의 팔자는 노년도 징글맞네.” 


간병에 지친 엄마는 간혹 본인 신세를 한탄했다. 평생을 채식만으로 소식을 하시며 사신 작은 체구의 외할머니에 반해 남자인 아버지의 몸은 엄마에게 너무 무거워서 많이 버거워 하셨다. 그 당시 이십대인 나는 돌봄과 간병이 무엇인지, 치매가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철없는 존재였고, 그래서 엄마의 노고를 이해하기엔 끝없이 미숙했다. 교사가 대단한 직업인 줄 알았고 난 평생 남을 돌보는 일과는 무관하게 살다 죽는 줄 착각 속에서 살았다. 평생 돌봄만 받다 가는 인생도 없고, 평생 돌봄만 주다 가는 인생도 없다는 진리는 늦게 찾아 왔다. 


요양보호사란 직업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동반된다. 몸을 움직일 수 없거나, 통증이나 병이 있거나, 치매가 있거나 등등의 여러 가지 불운한 이유로 요양원에 모인 사람들이기에 한없이 너그럽고 인자한 분들이 많은 반면 짜증과 불만과 분노가 솟구치는 입주자들이 간혹 계시다. 가끔 돌봄 지원 중에 과하게 화를 내고 짜증을 쏟아내는 어르신이 계시면 동료와 번갈아 맡는다.  내 정신건강을 돌보는 방법이다. 내 정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주된 이유는, 그 분들이 내 가족이 아니니 감정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고,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 일을 하면 되고, 나를 도와 줄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지금 한국의 요양원에서 사신다. 외할머니와 남편의 노후를 돌보고 간병한 그녀는 이제 요양원에서 제 3자인 요양보호사들의 돌봄으로 삶을 이어 가신다. 부디 엄마가 매일 만나는 요양보호사들이 너그럽고 친절한 분이기를, 나의 엄마를 아끼고 따뜻한 손길로 돌봄을 제공해 주기를, 언어를 잃으신 엄마에게 예의를 갖춰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노후의 치매와 간병 돌봄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수적이면서도 고된 것인지를 삶으로 이해하 게 된 지금, 그 어렵고 대단한 돌봄을 몸으로 실천해 오신 내 엄마에게 합당한 돌봄이 제공되기를 바란다. 


새벽 출근길, 나 또한 요양원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을 엄마를 돌보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출근한다. 내가 제공하는 돌봄의 질을 살핀다. 마음가짐, 자세와 태도, 그리고 상냥한 얼굴 표정을 상기한다. 지금 내가 제공한 돌봄이 미래에 내가 받을 돌봄의 질이라 여긴다. 그리고 마치 엄마 대하듯 손을 포개고  아침 인사를 전한다. 


“좋은 아침이에요. 푹 주무셨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돌봄 노동 해방 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