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차 3대와 자가용 한대가 출발했다. 대그룹이다. 이번 캠프에는 총17명의 장애인이 참가했다. 장애고객 17명, 나를 포함한 장애지원사 스태프 7명, 중고등 학생부터 대학생 자원봉사자 10명, 총 34명의 이동이다. 지난 여름 방학에 이어 두번째 장애인 캠프 참석인데 살짝 걱정과 부담이 밀려온다. 지난 번엔 7명의 장애 당사자와 3명의 스태프, 그리고 4명의 중고등 학생 자원봉사자, 총 14명이 이박 삼일을 함께 했다. 지난 캠프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숫자이다.
“오늘 한 명의 자폐인을 만났다면 세상의 자폐인 중 딱 한 명을 만났을 뿐이다.”
위와 같은 자폐계의 불문율은 비단 자폐계에만 해당하는 진실이 아니란 걸, 장애 지원을 하면서 깨달았다. 가령, 12살 다운 증후군 고객은 아주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한데, 나의 또 다른 삼십대 다운 증후군 고객은 지원 내내 한 시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낸다. 지원이 끝나면 앞의 고객과는 묵언수행을 하는 기분이고 후자의 고객과는 영어 폭포로 샤워를 한 기분이다. 실로 경험의 극단을 달린다.
워낙 요구와 취향과 기호, 취미가 극단적으로 제 각각인, 즉 개성이 강한 장애의 특성상, 그리고 당사자의 장애에 따른 요구와 취향과 기호를 우선하여 지원을 하는 게 호주의 국가장애보험제도의 기본 방침이어서, 내가 일하는 역사가 무구한 비영리조직장애 전문 에이전시는 인력을 아낌없이 투입하는 듯하다. 직원이 됐든 자원봉사자가 됐든 캠프에서는 장애 당사자 한 명 당 한명의 지원인력을 붙인다. 풍족한 지원인력 없이 좋은 장애지원은 나오지 않는 법을 긴 세월을 거치며 깨달았을 게다.
“방학마다 캠프가 열린다고요?”
작년 하반기에 장애 에이전시로부터 만 12살 다운 증후군 소년을 첫 고객으로 배정 받았다. 격주 일요일마다 2시간 잠깐 지원하는 정기 고객이다. 한 날 엄마가 나에게 아이를 데리고 2박 3일짜리 방학 캠프에 다녀올 수 있냐고 물었다. 엄마 말로는 내 에이전시에서는 방학때마다 캠프를 운영한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기 중에도 주말 캠프가 있었다. 그러니까 고객이 원하면 일년 내내 연중 캠프를 운영한다.
교사 시절 수학여행과 체험활동이 너무 싫었다. 내가 원하지도 않은 장소에서, 대형 여행버스에 몸이 맡겨 진 채로 여기저기로 짐짝처럼 옮겨지고, 빠듯한 일정들에 이동만 하고, 멀미 날 거 같아 내 몸도 땅이 잡아 끌어 당기는 듯 축축 쳐지는데 30여명이 넘는 학생들을 인솔해야 하고, 이동시마다 인원 체크를 해야 하고, 학생들이 술과 담배처럼 허용되지 않은 물품을 숨겨왔는지 소지품 검사를 해야 하고, 밤새 교사들이 순번을 정해 불침번을 서야 했던 극한 노동의 경험들로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대형 숙소의 음식들은 한결같이 무미건조하게 맛이 없었다. 내내 달갑지 않은 “단속”과 “관리”의 연속이었다.
교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내 인생에서 다시는 가족이 아닌 타인을 데리고 책임을 동반한 여행이나 활동은 영원한 안녕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캠프라니, 그것도 장애인들과 함께? 찰나 흔들리는 나의 동공을 고객의 엄마는 예리하게 잡아냈다.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요. 우리 아이를 일대일 지원으로 붙이는 거라서 우리 아이만 돌보고 지원하면 되니까 크게 어렵지 않을거에요.”
일대일 지원이란 말에 넘어갔다. 몇 번 만나본 고객은 캐릭터는 선명하고 분명하지만, 우선 에너지 레벨이 아주 낮아서 활동량이 적다. 이박 삼일, 24/7전담 케어와 지원을 해야 하는 50이 다 되어가는 장애 지원사의 입장에서 에너지가 넘치는 고객은 선뜻 맡기가 어렵다. 예전에 만 5- 7세의 잠시도 “멈춤 버튼”이 작동하지 않는 어린 자폐 어린이 고객들을 지원해 보고 알았다. 장애분야에서 고객과 지원사의 케미는 아주 핵심 사항이고 그 케미 중에 최고는 체력이라고. 즉, 고객의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내 부실한 체력의 문제이다. 내가 나름 분수 파악은 기가 막히게 한다.
“이번 가을 방학에도 우리 아이랑 캠프 같이 다녀 올 수 있나요?”
고객 엄마의 요청에 또 다시 머뭇거린다. 호주의 여름방학(한국은 겨울 방학,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의 계절은 한국과 정반대다)은 6-7주 정도로 긴 데 반해, 나머지 가을, 겨울, 봄 방학은 2주다. 짧은 2 주 동안 고객하고 캠프를 다녀오면 정작 내 아들과는 캠프를 다녀올 시간을 빼기 어렵다. 지천인 자연이 자랑인 호주에서 아이들의 방학은 캠핑이나 여행의 시기이니 망설여진다.
“엄마, 난 괜찮아.”
언제나 쿨한 아들은 엄마의 이박 삼일 캠프를 허락한다. 엄마가 돈을 많이 벌어와야 본인에게 후한 용돈과 맛집 투어의 기회가 자주 온다는 걸 알아 버렸다. 아들은 엄마가 일을 시작한 후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더 잘 깨닫는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일에 진심인 아들이서 다행이다. 뭔가에 꽂힌 사람은 꼬시기가 수월한 법이니. 반면에 엄마인 나는 경제적 수입에 꽂힌 사람이다. 내 결심을 굳히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솔깃한 이박 삼일 동안의 임금이다. 낮 지원 활동시간과 고객과의 이틀 밤 Sleepover 까지 더해진 임금은 내 일주일 치의 수입과 엇비슷하다. 통장에 꽂힐 수당의 숫자들을 떠올리며 속전속결로 타협한다. 자본으로 노동을 환산하고 그 돈으로 필요한 물품을 거래하며 생활을 영위하는 자본주의 세상, 어쩔 수 없다. 난 시대적 흐름을 제법 잘 따라가는 현대인이다. 즉시 에이전시의 담당 코디네이터에게 참석을 알리는 메일을 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