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아닌 지원을 해주세요.
“ADHD 들은 시간 개념이 없어요. 항상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 헐레벌떡하고 약속 시간에 자주 늦어요. ADHD는 지능하고 관계가 없어요.” 지나영 교수, 미국 존스 홉킨스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이자 ADHD 당사자
비ADHD 엄마 입장에서 보면 ADHD 아들은 미루기 대장이고, 잊기의 달인이다. “아, 깜빡했네!” 아들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문장 중 하나다. 러셀 바클리 교수(Russell Barkley)의 말대로 여자들이 폐경기가 도래할 때 쯤의 건망증을 ADHD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지닌 듯이 보인다.
ADHD계의 권위자이신 바클리 교수는 본인의 쌍둥이 형제가 충동성이 강한 ADHD 였는데 젊은 나이에 운전을 하다가 사망을 했고, 이 비극적 사건이 바클리 교수가 ADHD 연구에 헌신하게 된 이유라고 강연과 책에서 밝혔다. 지금은 은퇴 후에 자폐 손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 만약 내가 공부하지 않는 엄마였다면 내 아들은 시도때도 없이 혼나고 꾸중을 들었을 게 분명하다(아래 참고 1). 진단명이 없이는 기존에 내가 알던 세상의 아이들과는 너무 달라서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존재였다. 차라리 신체 장애나 다운 증후군이나 지적 장애라면 바로 드러나기라도 할 텐데, 지나영 교수의 말처럼 ADHD는 지능하고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더 헷갈렸다. 왜 똑똑한 애가 이런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수행하기가 이렇게 어려운지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부모들이 대다수란 뜻이다.
그러다 내가 폐경기가 도래할 때쯤 냉장고 문을 열고 뭘 찾으려고 열었는지가 기억도 안 나고, 전날 저녁에 만든 반찬이 냉장고가 아닌 접시들과 같이 서랍장에 얌전히 놓여 있거나, 가스불을 끄지 않아서 냄비를 태워먹기 시작하면서 아들의 일상적인 어려움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실수가 잦아지자 스스로가 한심하고 기가 막히고 쓸모 없이 여겨지고 또 무슨 실수를 할까 싶어서 불안이 따라왔다. 그리고 아들의 어려움에 깊게 연결이 될 수 있었다.
‘엄마는 반평생 가까이 살고 경험하는 세상을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살아가구 있구나!’
어려서 진단 주고 꾸준히 아들에게 적합한 방법들을 서로 발굴하고 일상생활에서 적용하다 보니(가장 큰 장점은 본인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알게 되니) 중학생이 된 지금은 훨씬 수월한 게 사실이지만, 어릴 때 외출은 전쟁 같았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시작한 목소리가 점점 커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 아직도 양말을 안 신은 거야? 엄마가 30분 전에 외출한다고 준비하라고 했잖아?”
난 외출 준비가 10분이면 끝나는데 아들의 기약 없는 외출 준비는 도대체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매일 문 앞에 서서 두 남자를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었다.아들은 양말 한 짝 신고 세월아 내월아, 바지 걸치고 딴 짓, 그러다 티셔츠를 갈아입는 걸 깜빡하기 일쑤다. “양말 신어-바지 입어-티셔츠 갈아입어.” 차라리 옆에 서서 단계별로 말을 해주는 편이 가장 쉬운 해결이었다. 참고로 본인이 꽂힌 일이나, 신나는 일이나, 위급한 상황에서는 번개 같이 갈아 입는데, ADHD 뇌가 가장 효과적으로 동기화 되고 작동하는 순간이다. 어느 날 가족 외출을 하면서 문고리를 잡고 선 내가 두 남자를 기다리며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내 소원은 두 남자가 나 좀 문간에 서서 기다려 보는 거야!”
그렇다 보니 ADHD들은 약속 시간을 맞추거나 정해진 일을 기한 내에 마무리하는 일이 하늘의 별을 따는 일처럼 어려워진다.이들의 특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게으르다’, ‘근성이 없다’, ‘책임감이 없다’, 말하지만 이들이 의도하는 바가 아니다. 비ADHD인들이 정해진 시간에 딱딱 맞춰 일을 끝내고 약속 시간에 나타나고 자주 잊지 않는다면, 이는 당신들이 훌륭하고 인품이 높아서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운이 좋아서 ADHD 의 뇌를 갖고 태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한국에 사는 조카에게 연락이 왔다. 너무 속상하다는 게다. 중학교 1학년 ADHD 민우의 등교를 챙기기 전에 부부가 출근을 하다보니 애가 종종 지각을 한다고 한다. 일찍 일어나고도 시간 개념이 없으니까 딴짓을 하다가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하는순간 벌써 지각이 되곤 한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지각벌로 깜지 쓰기나 벌금을 낸다고 했다.
여러가지 면에서 놀라웠다. 아직도 깜지 쓰기랑 벌금 내기가 있다는 사실도 놀랍고, 지각을 했는데 교사가 벌을 주는 문화가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멜버른에서 교사는 출결을 관여하지 않고 학부모와 행정실의 일이기도 하고 이미 지각처리가 됐는데 왜 벌을 주는 이중처벌을 할까?), 이런 문화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학부모나 교사나 학교 관리자가 없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다.
“혹시 학교 교사들이 아이의 손글씨를 알아보기 어렵다고 하거나, 손으로 글씨를 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거나 하는 코멘트를 받아본 적이 있나요?”
얼마전 만난 아들의 발달전문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물었다. 많은 ADHD 아이들은 손글씨 쓰는 일이 마치 고문과 유사하다. 너무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고 휘갈려 쓰는 경우도 많아서 해독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또 자폐인들 중에는 글씨를 너무 천천히 쓰거나 완벽하게 쓰려고 해서 내용을 알아도 과제를 제때 못 끝내는 아이들도 있다. 아들의 전문의가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만약 아들이 손글씨 쓰기로 인해 과제 수행이나 평가에서 불이익을 본다면 이에 대한 조정을 학교측에 요구하도록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들이 초등학교 때는 담임 교사와 상의해서 아들 스스로에게 선택권을 갖게 했다. 지금은 큰 어려움이 없지만, 초등 저학년 때에는 글씨 쓰기가 너무 싫어서 영어 수업을 싫어했을 정도다. 가령 긴 에세이 쓰기 같은 과제를 수행할 때 손글씨로 쓸 것인지 아니면 타이핑으로 완수하게 할 것인지를 아들에게 물어서 원하는 대로 선택하게 해서 아들의 선택과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게 했다.
ADHD 인 민우에게 ADHD의 특성상 발생하는 지각에 대해 깜지 쓰기나 벌금 내기 같은 벌은 교사가 휠체어가 필요한 아동에게 휠체어를 제공하는 대신 네가 알아서 바닥에 기어 다니거나 의자에 앉아서 공부를 하던지 말던지 하라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반 사람들은 너무 이해하지 못한다. 언제까지 부모나 당사자가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설명을 해도 듣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바꿀 재간이 없다는 게 절망스럽다. 왜냐면 신경다양인들의 특별한 요구들은 눈에 잘 드러나지가 않기 때문에 이들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주의 깊게 다가가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깨닫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또 절망한다. 호주에 살면서 신경다양성을 축하하고 당사자들의 삶을 옹호하는 내게는 민우게게 교사가 주는 벌들은 이렇게 들린다.
“넌 ADHD로 태어났잖아. 그러니까 인생이 아주 고통스러워야 해. 그리고 ADHD로 태어났으니 벌을 받아야 해.”
1. 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루아나 저, 여는 글 편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