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쉐어홈 사람들
헤일리가 일하는 쉐어홈에는 5명의 입주자가 산다.
루벤, 카일, 에릭, 마틸다, 그리고 엠마. 남자 세 명, 여자 두 명이 각자의 방을 쓰면서 두 개의 화장실, 두 개의 거실, 한 개의 부엌, 그리고 세탁실을 공유한다. 나머지 한 방은 지원사들의 오피스 겸 슬립오버(sleepover)를 하는 공간으로 책상과 싱글 침대가 배치되어 있다.
헤일리가 3개월 전 입사를 했을 때, 마틸다를 제외한 네 명의 입주자만 살고 있었다. 마틸다는 헤일리의 입사 열흘 전에 화장실에서 넘어져 발목이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을 한 터였다. 지금은 병원에서 퇴원을 한 후, 쉐어홈에 돌아오기 위해 재활병원에서 재활 치료 중이라고 했다. 마틸다는 지원홈 팀리더인 에런에게 끊임없이 독촉을 했다.
“나 너무 외로워.”
“아무도 나 보러 안 오는 거야?”
“에런, 언제 올 거야?”
한날 에런이 헤일리에게 물었다.
“헤일리, 혹시 마틸다가 입원한 재활병원에 문병 좀 다녀올 수 있어? 한 세 시간 정도만 곁에서 말벗도 해주고 가벼운 운동도 도와 주면 될 거 같아. 이참에 가서 얼굴도 익히고 좋을 거 같아.”
헤일리는 속으로 부담이 엄습했다. 일반인이라면 서슴없이 승낙했겠지만, 장애인들은 어떤 장애가 있는 가에 따라, 또는 어떤 행동상의 어려움이 있는 가에 따라, 또는 언어로 대화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가에 따라서 변수가 너무 많다. 서슴없이 다가갔다가낭패를 보기 십상인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헤일리는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신입이고 정규직으로 취직을 했는데, 3개월은 수습기간이라 팀리더와 동료들에게 좋은 인상을 박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찬밥 더운밥 따질 처지가 아니다.
“전 헤일리라고 해요. 최근에 쉐어홈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근데 왜 에런이 안왔어?”
“에런은 너무 바빠서요.”
“그런데 왜 파올라는 안 왔어?”
“파올라는 오늘 근무날이 아니에요.”
“그런데 넌 나를 모르잖아.”
“(활짝 웃으며) 그러니까 이렇게 얼굴을 익혀야지요.”
다행히 마틸다는 언어로 소통이 가능했다. 그나마 한시름 내려 놓는 헤일리. 그 순간 마틸다는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레이스, 그레이스!!!”
“(우렁찬 소리에 자지러지게 놀라서) 왜 그러세요? 필요한 게 있으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그래서 제가 왔잖아요.”
“그레이스, 그레이스”
마틸다는 마치 헤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그레이스를 부른다. 잠시 후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일을 보던 한 젊은 여성이 달려왔다. 그레이스, 왼쪽 가슴에 붙은 명찰을 보니, 간호 대학교에서 실습을 나온 예비 간호사다.
“내 침대 커버랑 수건이 젖었어. 바꿔야 해.”
“네, 알겠어요.”
헤일리는 그레이스를 따라 나간다. 그레이스에게 본인 소개를 한 헤일리는 그레이스 대신 새 침대 커버와 수건을 들고 돌아온다.침대 커버를 갈면서.
“마틸다, 그레이스는 간호사라서 다른 환자들 케어하느라 바빠요. 그러니까 저에게 말씀을 해주세요.”
“알았어.”
침대 옆의 휠체어에 앉아서 아이패드로 텔레토비를 보던 마틸다, 조용한 4인 다인실의 정적을 깨뜨리며,
“그레이스, 그레이스!!!”
“마틸다, 왜 그러세요? 저에게 말씀하세요.”
“그레이스, 그레이스!!!”
간호사 곁에서 업무를 배우던 그레이스는 다시 마틸다에게 찾아온다.
“왜 광고가 나오는 거야?”
“여기 스킵을 누르시면 돼요.”
“나 못해. 니가 해줘야 해.”
그레이스가 떠나고 헤일리가 다시 상기를 시킨다.
“마틸다, 제가 옆에 있잖아요. 그레이스는 지금 아주 바빠요.”
“알았어. 미안해.”
헤일리는 마틸다 옆에서 간헐적으로 떠오르는 광고 스킵을 눌러준다. 나이가 들고 지능이 낮으면 태블랫의 화면 바꾸기도 이렇게 어려워 진다니, 헤일리는 나이드는 일의 비애를 생각해 본다. 텔레토비를 보다 꾸벅꾸벅 졸다 깬 마틸다.
“근데 당신의 뒷머리는 밑에만 머리카락이 있는 대머리네. 당신은 머리카락을 더 잘 관리했어야 해.”
‘뜨악’, 헤일리는 순간적으로 공기가 얼어붙는 듯하다. 호주도 고령화 사회라서 4명이 쓰는 공립 재활병원의 침상 4개는 모두 어르신들이 차지했다. 아시안계 할아버지, 할머니, 호주인 할머니, 그리고 호주인 마틸다. 아시안계 두 분은 깨어 있을 여력도 없으신지 계속 잠만 자고, 호주인 할머니는 아들이 문병중이었다. 중년의 다정한 아들은 엄마와 함께 간간이 이런 저런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아들이 화장실에 간다며 일어나는 순간, 잠에서 깬 마틸다가 뜬금없이 헤어스타일 품평을 한 것이다.
헤일리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대신 미안하다고 말할까? 그런데 또 이게 왜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잖아? 헤일리 머릿속이 마구 엉키는 순간 옆 침상 할머니의 아들은 뒤통수를 매만지며,
“맞아요. 제가 머리 관리를 잘 안해서 대머리에요.”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눌러가며 헤일리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마틸다, 타인의 외모에 대해 품평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난 헤어스타일에 아주 관심이 많아.”
“네???”
“나는 머리를 묶는 걸 아주 싫어해..”
“네.”
“난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것도 싫어해.”
“네.”
“너도 머리를 묶지 말고 풀고 다녀.”
“……”
세 시간 지원,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딴 세상 구경을 한 기분으로 귀가를 하던 헤일리, 앞으로 그레이스가 헤일리로 대체되겠구나, 불안이 엄습한 헤일리는 그레이스를 보며 응원한다.
‘그레이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