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쉐어홈 사람들
챗지피티의 정의에 따르면 쉐어홈은 "보통 여러 사람이 한 집을 함께 빌려서 생활하는 주거 형태"다.
한국처럼 원룸, 옥탑방이라는 주거 형태를 찾기 어렵고,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주 주거 공간인 호주에서 쉐어홈은 흔한 주거 방식이다. 한국에서 유학을 오던지 워홀을 오는 젊은이들 대부분이 경험하는 주거 형태도 “쉐어홈”이다. 마찬가지로 호주의 젊은이들도 부모와 주거독립은 원하는데, 방이 두 개 이상인 아파트나 주택을 통째로 렌트 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젊은이들도 방을 쉐어하며 살아간다.
어찌 보면 가족으로부터는 독립, 그러나 타인과의 동거를 하는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 부여되는 자식 노릇,부모 노릇, 형제 자매 노릇 같은 역할과 신분에 따른 책임과 의무는 옅어지고, 타인이어서 지켜야 할 바운더리는 높아지는 형태다. 막 노동시장에 진입한, 또는 대학생이거나, 그리고 부모의 경제적 뒷받침이 따르지 않는 호주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주거 형태다.
어쩌면 헤일리는 쉐어홈 경험자의 원조격이다.
1990년대 초, 한국의 산골 출신이던 헤일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도시로 나와서 혼자 자취를 했다. 주인집에서 남아도는 방 하나를 세 놓은 공간에 살면서 화장실과 부엌을 공유 했다. 또는 오래된 가옥의 허름한 사랑채 마냥 별채로 지어진 집에도 살아봤다. 입구는 부엌이 있고 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의 부엌들을 보면 부엌이라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한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부엌이 샤워공간이기도 한 곳에 살면서 주인과 화장실을 공유했었다. 어찌 보면 요새 원룸이라 불리는시조격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돌고 도는 수레바퀴’, 같다는 생각을 헤일리는 종종 떠올린다.
헤일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취생활’은 하고 싶지 않아서 공부를 했었다. 그런 헤일리가 중년이 되어서 이렇게 타인들이 모여사는 쉐어홈에서 일을 할 줄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가족이란 이름이 아닌 자발적으로 타인들이 모여 사는 조립식 가족들이 탄생하는 시대를 맞이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장애인 쉐어홈, 이곳도 어느 가정처럼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5명의 장애 당사자와 수많은 지원사들이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그 안에서 복작대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찌 보면 요새 같은 핵가족을 넘어 일인 가족이 넘쳐나는 세상에 보기 드문 대가족이기도 하다.
“헤일리, 난 네가 해 준 음식은 다 맛있어.”
엠마가 헤일리가 만들어준 매콤한 두부 조림을 앞에 두고 말했다. 헤일리의 경험상 장애인들, 특히 자폐인들은 입맛이 아주 제한적이고 까다로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애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매일 똑같거나 또는 이삼일 간격을 두고 똑같은 메뉴를 반복하며 식단을 유지하는 당사자들의 식습관이 의아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엠마가 매우면서도 이국적인 음식을 좋아한다니?
“매울텐데 괜찮아?”
헤일리가 만들어준 두부 조림을 맛있게 먹는 엠마를 보며 헤일리가 재차 묻는다. 물론 헤일리는 한국에서 조리하던 두부 조림 매운맛의 반 정도의 맵기로 요리했다.
“난 아시안 음식이 맛있어. 우리 가족들은 아무도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해. 왜 그런지 모르겠어.”
헤일리와 엠마는 상당히 가까워졌다. 둘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은 넷플릭스의 K 드라마다. 엠마는 모든 영화와 드라마를 본다. 헤일리는 그녀에겐 기준이 없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영어권, 한국, 일본, 중국, 심지어 어느 날은 대만 드라마까지 닥치는 대로 보고 있다. 물론 헤일리가 일하는 날에는 K 드라마를 주로 본다.
“엠마, 저 음식이 제육볶음이야. 좀 매워 보이지?”
“드렁드렁드렁….”
“엠마, 벌써 잠든 거야?”
분명히 3초 전까지만 해도 헤일리와 같이 K 드라마를 보고 있던 엠마, 벌써 코를 골면서 거친 숨을 들이마시며 졸고 있다. 곧바로 잠들기와 깊은 수면 유지로 고생중인 헤일리는 심지어 서서도 졸곤 하는 엠마가 신기할 정도다.
“엠마, 우리 한국 마트 가서 구경하고 올까?”
집에서 소파에 앉아서 먹고 졸고 스크린만 시청하는 엠마와 근처의 한국 마트로 산책을 나갔다. 엠마는 고도 비만이어서 한 걸음 한걸음 숨이 찬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나갈 준비를 하고, 워커를 끌면서 이동해서, 차에 올라타는데 한나절이 다 가는 심정이다. 헤일리는12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몸이 보조석에 앉으면 차가 엠마 쪽으로 기울어지는 기분이 든다.
엠마가 본인이 먹고 싶은 한국 과자 몇 개와 이미 재어 놓은 제육볶음을 한 팩 사서 계산대로 갔다. 엠마는 여느 때처럼 말했다.
“(영어로)영수증 주세요!”
그러자 한국 마트의 한국인 점원이 영수증을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한국어로) 장애인들은 의심이 많죠?”
“네???”
헤일리는 당황했고 난감했다. 무방비 상태였다. 헤일리가 3년 이상 장애인 지원사로 일을 하면서 호주 백인 로컬 장애인 고객과 동행한 한국 마트 첫 나들이었다. 그만큼 호주 로컬 장애인 당사자들은 낯선, 아시안 맛에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헤일리는 어느 정도 신이 났다. 처음으로 만난 한국의 매운맛을 좋아하는 금발 머리의 장애 당사자라니!
“헤일리, 뭐라고 한 거야?”
헤일리가 당황해서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는 사이 궁금해진 엠마가 묻는다. 헤일리는 엠마가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고 급하게 물건을 챙겨 엠마를 데리고 나온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헤일리는 이유모를 불편함을 느낀다. 오늘 방문한 한국마트는 평소에 헤일리가 자주 방문하는 곳이고 오늘 점원은 언제나 선량하고 친절한 중년의 여성이다. 엠마뿐만 아니라, 헤일리도 물건을 구매하면 항상 영수증을 요구하는 버릇이 있다. 헤일리에게는 ‘의심이 많다’란 말을 하지 않는데, 왜 엠마에게는 저런 질문을 했을까?
질문은 잠자리까지 이어진다. 헤일리는 이불킥을 하면서 벌떡 일어난다. 뭔가 마땅한 대답을 해주지 못한, 그래서 장애 고객을 제대로 옹호하지 못했다는 낭패감이 든다.
‘바보처럼 적당한 반박도 못하다니!’
헤일리는 생각해 본다. 혹시 본인도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누군가에게 차별의 말들을 쏟아내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그것도 장애인 지원사란 선량한 타이들을 달고서 거침없이 차별주의자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헤일리는 앞으로 남은 인생은 기본값을 이렇게 정해놓고 살아가기로 했다.
“나는 차별할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