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우리의 공통점

좌충우돌, 쉐어홈 사람들

by 루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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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체험활동 안 갔어.”

“왜요?”


휠체어에 앉은 68세의 마틸다가 말했다, 표정없는 얼굴로. 옆에 서있던 50세의 헤일리가 물었다, 토끼처럼 놀란 눈으로. 옛날옛적, 그러니까 마틸다가 학생이었던 시절이라면 50여년 전, 그러니까 헤일리가 태어나기도 전, 호랑이가 담배 필 적 같은 과거다.


“마틸다, 학생 때 체험활동 좋아했어요?”


아차, 이렇게 한심한 질문을 할 수 있다니, 헤일리는 한심해서 할 말을 잃는다. 지금도 세상의 여러 곳에서는 장애가 심한 학생들이 체험활동이나 캠프, 수학 여행 등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좌절되는 곳들이 많은 게 현실인데, 50여년 전, 지적 장애가 심한 마틸다의 체험활동이라니? 헤일리는 지금 경험하는 세상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자신을 봤다. 때론 순진무구한 질문은 상대방만이 아니라 자신도 어이없게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오늘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마틸다의 지원을 맡게 된 헤일리, 헤일리의 오늘 주 업무는 마틸다의 공립 병원 진료를 지원하는 일이다. 몇달 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일어나다 넘어져서 발목이 부러져 응급실로 직행한 마틸다, 오늘은 수술을 하고 철심들을 박은 마틸다의 발목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를 점검하는 날이다.


“텔레토비도 병원에 같이 가야 해.”

“(팔목의 시계를 보여주며) 헤일리, 이 시계는 텔레토비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 줬어.”


외출 준비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물건들을 챙기고 있는 헤일리에게 마틸다는 크리스 마스 선물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금 헤일리 머릿속에 그런 이야기들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지난번 카일의 치과 진료에서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하는 헤일리는 이번엔 두번 다시 공공장소에서 ‘심장 쫄리는 화장실 에피소드’만큼은 피하리라는 굳은 의지만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장애인 택시 부르기, 장애인 택시카드, 마틸다의 용돈 금고에서 오늘 점심 먹을 때 사용해야 할 현금 $50 챙기기, 의사에게서 사인 받아야 할 서류, 마틸다의 점심 약, 여분의 기저귀, 물티슈, 위생 장갑, 여분의 옷…


지적 장애인, 휠체어 사용자, 제한된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당사자, 그리고 신변처리를 혼자 하지 못하는 당사자와 함께 외출을 할 때에는 준비물이 겹겹이 쌓인다. 갓난 아기 데리고 외출 한번 하던 시절처럼 짐이 넘쳐난다. 큰 차이라면 갓난 아기는 급하면 안거나 업고 다닐 수라도 있지만, 9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휠체어를 탄 성인은 헤일리가 안거나 업고 다닐 수가 없을 뿐더러, 이동은 휠체어 택시로만 가능하니 외출시에 완벽한 준비가 필수다.


“메리는 어디 있어?”

“조금 있으면 올 거에요. 병원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여기서 기다리면 되요.”

“(1초 후에) 그런데 메리는 언제 오는 거야?”

“금방 올거에요.”

“(고개를 빼고 병원으로 들어오는 차들을 바라보며) 메리 차는 파란 색이야. 언제 오는 거야?”

“금방 도착할 거에요.”


도돌이표형 대화를 이어가던 중 메리가 왔다. 메리는 4남매의 첫째, 마틸다의 큰 언니다. 마틸다의 둘째 언니도 장애인이어서 다른 쉐어 홈에 살고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빈 자리를 메리가 부지런히 메꾸고 있다. 메리는 두 명의 동생이 살고 있는 장애인 쉐어홈들을 이틀 간격으로 방문해서 삼십 분 정도 대화를 나누고, 동생들의 각종 병원 진료나 치료 계획 등등을 병원측이나 쉐어홈 팀리더들과 상의하고 처리하느라 바쁜 삶을 살아간다.


마틸다와 헤일리의 단절된, 서로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듣던 메리가 설명을 얹었다.


“마틸다는 어릴 때 시설에서 살았어. 멜버른의 큐(Kew)라는 지역에 있던 Kew Cottages에 살다가 지금의 블랙번 홈(지금 거주하는 쉐어홈 이름)으로 옮긴 거야. 집단시설에서 기숙 생활을 하는 곳이 좋을 수가 없었겠지.”


시설, 이란 용어는 헤일리의 기억을 끌어올린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시절에 봉사시간을 채워야 하는 학생들과 더 채우고 싶은 학생들을 모아서 교회의 목사가 운영하는 장애인 시설을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교사가 학생들의 봉사활동에 동행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 2000년대, 젊은 시절의 헤일리는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타입이었나? 중년의 헤일리는 본인도 한 때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소규모 시설이었는데 시설안은 완전히 처음 만나는 세상이었다. 헤일리는 눈앞에 펼쳐지는 당사자들과 환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어서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었다. 헤일리의 30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지근거리에서 갇힌 공간에서 처음 만나는 장애인들이었고 그들의 일상의 단면이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장애인이 방석 하나 없는 맨 바닥에 여기 저기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어느 분은 발이 묶여 있었다. 어느 분은 손이 묶여 있었다. 어느 분은 얇은 이불 한 장 깔고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어느 분은 계속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쥐어 박았다. 어느 분은 초점 없는 시선을 허공에 보내고 있었다. 헤일리는 속으로 부끄러웠고 참담했다. 장애와 장애인, 그리고 그들의 시설생활이 어떤것인지를 일도 모르는 채 방문을 했기에 어떻게 처신을 하고 눈길을 보내고 말을 거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냥 돌아가고 싶어.’란 말이 목구멍 위로 치솟는데 겉으로는 학생들 앞에서 교사로서의 ‘처신’을 하느라 분주했던 듯하다. 그리고 헤일리는 그날 알았다. 다시는 시설을 방문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장애인 수용시설, 그 후로 헤일리는 종종 기사들을 통해서 그 안에 거주하는 분들의 학대나 참상을 짐작만 할 뿐이었다. 왜냐면 장애인 수용시설의 미담을 담은 기사들은 본 적이 없으니까. 어떤 주거공간은 탄생 자체가 미담을 품기 어렵기도 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헤일리는 아는 나이가 되었다.


어떤 용어는 질문 자체를 압도하기도 한다. 질문 좋아하고 호기심 많은 헤일리지만 메리의 ‘시설’이란 용어 앞에서 헤일리는 질문을 멈췄다. 더군다나 헤일리는 장애인 지원사이지 활동가도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기자도 아니다. 또한 이미 호주는 2000년대에 탈시설이 완료된 사회이기도 하다.


“큐 집에 살 때 너무 싫었어. 너무 싫었어.”


메리의 이야기를 듣던 마틸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시설이란 용어가 헤일리의 과거를 소환했듯이 마틸다의 과거를 소환했다. 호주와 한국, 다른 언어와 문화, 시설에 직접 살았던 당사자와 방문자, 장애 당사자와 지원인, 38년이란 나이 차를 가진 두 사람. 슬프게도 이 둘에게 공통점은 시설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이다.


메리가 묻는다.


“지금 사는 블랙번 홈은 어때?”

“너무 좋아.”


사실 마틸다는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던 중에 만난 헤일리에게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었다. 헤일리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마틸다가 마침내 좋은 집에 살게 되어서. 그리고 상상해 본다. 세상의 모든 장애인들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사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그리고 다짐한다. 쉐어홈에 거주하는 분들에게 ‘좋은 집’, ‘돌아가고 싶은 집’, ‘그리운 집’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참고: 호주의 탈시설화의 간략한 개요(챗지피티 리서치)

1970년대에 대형 정신병원과 장애인 수용시설등의 인권침해, 학대, 방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1980년대에 국가의 정책으로 ‘탈시설’ 방향으로 전환을 했고, 1990년대에 대형 시설들이 폐쇄를 시작했으며, 2000년대 초에 남아있던 모든 시설들이 역사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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