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쉐어홈 사람들
아일린, 한 명을 위해 11명이 모였다.
헤일리는 비정규직 시급제로 일하는 B기관의 소개로 아일린을 만났고 일년 가까이 지원해오고 있다. 격주 일요일 아침은 정기적으로 방문하지만, 아일린의 지원에 공백이 생길 때 가끔 구멍 난 돌봄을 메우러 출동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부가적으로 근무를 더하는 일은 아일린을 위한 일인 동시에 헤일리 본인의 경제적 필요도 충당하는 일이어서 상부상조다. 가령, 헤일리가 상당한 금액의 돈이 필요한 임플란트를 하게 되어 목돈이 필요하면 몸 놀리는 노동을 늘려야 한다. 겨울과 스노보드를 사랑하는 아들과 스키장이라도 다녀오려면 페이 슬립(pay slip, 호주의 임금 명세서)에 찍히는 노동 시간을 바짝 끌어올려서 돈을 모아 충당한다. 다행이라면 헤일리는 이 노동을 애정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헤일리는 평소에는 느슨하게 일하다 목적 있는 단기간 집약적 노동이 가능한 이 업에 만족한다. 가끔 노동 시간을 늘리고 싶다고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나, 헤일리는 스스로 노동 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헤일리가 일하는 돌봄 분야에서 회의는 대부분이 화상으로 이루어진다. 심지어는 헤일리가 꿈에 그리던 장애인 쉐어홈에 취직할 때의 면접도 화상으로 진행되었다. 돌봄 업의 특성상 모든 관계자, 그 중에서도 현장의 지원사가 모두 모일 수는 없는 법이다.가령, 호주에서 대부분의 케어러들은 헤일리처럼 두 군데 이상의 기관에서 일을 한다.
헤일리가 일하는 A 라는 쉐어홈에서 정기적인 스태프 회의가 있어도 헤일리는 참석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헤일리는 B라는 장애 기관에서 고객을 지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B라는 기관에서 고객을 위해 팀회의가 열린다고 해도 헤일리가 A라는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참석이 불가능하단 이야기다. 모두가 참석하기 어려운 더 중요한 이유는 회의가 열려도 누군가는 고객을 돌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돌봄이란 업의 중요한 특성이다.
팀리더들은 고민한다. 가장 많은 팀원들, 또는 핵심 팀원들이 참석 가능한 시간대를 물색해야 한다. 주로 팀리더들은 팀원들에게 사전에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두 세 개 정도 보내서 그 중에서 가장 많은 팀원들이 참여하는 날과 시간을 정한다. 이 말은 팀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권장하지만, 의무는 아니란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회의 시간에 참석하면 노동으로 간주되고 회의 시간만큼 시급을 받는다.
가족 코디네이터(참고 1), NDIS지원 코디네이터(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참고), 영양사, 행동전문가, 그리고 7 명의 지원사가 아일린을 위한 회의에 참석했다. 이 말은 혼자서 부모님 집 근처에 독립해서 살고 있는 아일린 한 고객을 지원하는데 이렇게 많은 지원 인력이 투입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아일린을 지원하는 지원사 중에는 개인적인 이유로, 또는 B기관의 다른 고객을 지원 중이어서 참석을 못한 사람도 있다. 어떤 지원사는 다른 고객 지원을 가는 이동 중에 주차를 하고 참여하기도 했다. 온라인 회의의 흔한 풍경이다.
이 회의에 참석은 안 했지만, 아일린에게는 치료사들도 있다. 자폐에 프라더 윌리 증후군(참고 2)까지 겸한 아일린에게 운동은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은 운동물리치료사인 크리스를 만난다. 크리스는 한 번은 수영장에서, 그리고 한번은 집으로 방문해서 아일린의 운동을 지원한다.
또한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아트 치료사인 케이티도 있다. 외부 활동이 없으면 하루 종일 안락 의자에 앉아 넷플릭스와 핸드폰 게임만 하고 음식을 찾아 팬트리를 왕복하는 아일린, 아일린에게 외부 활동을 권장하기 위함인데, 케이티가 직접 아일린 집으로와서 픽업을 해 본인 작업실로 데려가고 활동이 끝나면 집으로 데려다 준다.
“아일린은 이제 완화치료(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메멘토 참고) 단계로 들어섰다고 여기고 지원의 방향을 모색 해야 할 거 같아.”
아일린의 가족 코디네이터인 벨이 말문을 열었다. 비통한 얼굴이다.
“프라더 윌리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평균 수명이 40에서 50사이야. 그런데 아일린은 마흔이 넘었어. 이렇게 악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건 슬프지만 이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고 더 심해져서 우리가 돌봄을 할 수 없어서 high care 기관으로 가기 전까지는 최선의 방법들을 찾아보려고 해. 그리고 가정방문 간호사를 알아보려 하고 있어.”
지원 코디네이터인 제시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일린은 40여년의 특화된 장애인 지원기관이란 역사를 가진 비영리조직 단체인 B 기관의 초창기 고객이다.
“우리는 30여년 동안 단 한번도 아일린을 다른 장애 기관에 맡겨 본 적이 없어.”
“B기관이랑 우리는 가족이야.”
몇 달 전 온 몸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응급실로 실려간 아일린의 병원 지원을 간 헤일리에게 아일린의 부모님이 추억을 길어 올려 전해 준 말이다. B기관과 함께 성장해온 산 증인들이다. 지원 코디네이터 제시도 10여년 아일린과 가족과 함께 일을 했고, 가족 코디네이터인 벨도 한때는 아일린의 지원사였고, 중년이 넘은 지원사들은 대부분 아일린과 십 여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하고 있다. 오피스에서 일을 하는 가족 코디네이터인 벨은 아일린의 지원 공백이 생기고 본인이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직접 아일린을 지원하러 집으로 오기도 한다.
한참을 아일린의 현재 상태, 즉 음식 조절의 어려움과 무기력함, 항시 달고 사는 온몸의 통증, 부쩍 잦아진 짜증, 부모님의 염려와 지향하는 돌봄의 방향 등을 설명하던 벨이 말한다.
“그리고 이 자리는 아일린 뿐만 아니라 지원사들을 위한 자리이기도 해. 나도 오랫동안 지원사로 현장에서 일을 해왔으니까 중증의 복합 장애인, 그것도 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는 당사자를 지원하는 케어러들의 정신적 고립감과 외로움과 두려움을 잘 알고있어. 그러니 아일린을 지원할 때 발생하거나 느끼는 어려움들을 이야기 해 줘. 그러면 아일린과 함께 지원사들을 어떻게 지원할지도 우리가 고민해 볼 게.”
헤일리는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사실 그랬다. 요새 아일린 지원을 나가는 날은 정신적 부담이 막 차오르던 참이었다. 하루하루건강이 쇠약해지고 인지 능력이 퇴화되고 이에 병행해서 짜증과 화가 부쩍 잦아진 아일린이었다. 가정방문 지원에서 혼자 일하는 지원사들은 가끔 두렵고 고독하다. 특히 건강상/의료적인 어려움을 지닌 중증의 장애인을 혼자 지원할 때는 고립감을 느낀다. 물론 아일린의 부모님과 B 기관의 오피스 담당자들에게 언제든 연락을 취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지만, 현장에서 온몸으로 고객의 어려움을 목도하면서 받아내는 지원사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원사들의 증언들이 잇따랐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아일린의 상태가 악화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지,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막막한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혹시 내가 제대로 지원을 못하고 있는 걸까 고민이 많이 됐어.”
“다른 지원사들도 비슷한 감정과 고충이 있다는 걸 아니까 위로가 돼.”
회의의 마지막에 지원사들이 이런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속 이야기를 털어놨다.
회의를 통해 헤일리도 마음속 부담을 조금 내려 놓기로 했다. 동료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란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이 한결 겨벼워 졌다. 마지막으로 벨과 제시가 덧붙였다.
“고객 지원은 현장의 지원사들을 지원하는 일이기도 해. 제발 정신적이든 물리적이든 어려움이 있다면 언제든지 우리에게 말해줘. 특히 정신건강면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꼭 알려줘. 바로 지원사 정신지원팀을 연결해 줄게. 우리 오피스 직원들이 항상 현장지원사들 뒤에서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줘.”
참고>
가족 코디네이터 : 장애 당사자와 가족이 필요한 돌봄·복지·의료·교육·장애 지원 서비스를 잘 연결하고 조율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
프라더 윌리 증후군(Prader-Willi Syndrome): 선천적인 유전 질환으로, 식욕 조절·성장·근긴장·지적 발달·행동에 영향을 주는 희귀 증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