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의 철학자들

by 쪼비

수영을 잘 하진 못해도 수영을 잘하는 사람을 알아볼 줄은 안다.

자유수영을 하러 갔는데 레인마다 북적이던 평소와 달리 어쩐 일인지 한가하다.


내가 쓰는 초급자 전용 레인에는 나 포함 두 명이었다. 이런 날은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평소와 다르게 오래 천천히 내 영법을 생각해 가며 수영을 할 수 있어서 운이 좋은 날이다. 뒷사람이 쫓아올까 봐 심적으로 쫄지 않아도 돼서 더없이 좋다.


수경을 쓰면 내 시선의 방향을 들키지 않아서 참 좋다. 잘하는 분들 훔쳐보기도 더없이 좋고 말이다. 같은 레인을 쓰는 분을 수경을 쓴 채 재빨리 스캔했다. 나이대는 대략 70대로 추정되는 젊은 할머니. 내가 좀 느리게 수영해도 재촉하지 않을 만한 인자한 인상이라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이 분 접영 하는 걸 보고 너무 놀랬다. 군더더기 없이 너무나 깔끔하고 예쁘게 하시는 거다. 그분의 세련된 접영에 비하면 이제 겨우 두 달 되어가는 나의 자유형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몇 바퀴를 돌다가 마침 같은 타이밍에 쉬고 있을 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접영을 너무 예쁘게 잘하시네요"


쑥스러워하시며 소녀같이 웃으시는 얼굴이 투명하다. 수영한 지 아직 10년은 안되었는데 그렇게 칭찬해 줘서 고맙다는 말도 하셨다.


그래서 이때다 싶어서 용기를 내어 질문을 했다.


"숨이 편해질 그런 날이 오긴 오겠죠?"


나의 질문에 부드럽게 웃으시고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영은 급하게 빨리 한다고 잘되는 게 아니에요. 생각보다 많이 천천히 해야 잘 돼요. 자신이 수영하는 모습을 자기만 볼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수영하는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천천히 생각하면서 해야 해요. 뒷사람이 쫓아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뒷사람은 알아서 앞질러가든 앞사람 속도에 맞춰서 자기 속도 잘 조절할 테니까 남 신경 쓰지 말고 수영하는 자신의 모습만 생각해요.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이 편해지는 순간이 와요. 1초 전에 안되던 것이 1초 후에 되는 신기한 순간도 오고요. 계속하는 수밖에 없어요. 근데 계속하면 돼요. 반드시 돼요."


나는 그분의 말씀을 가만히 들으면서 생각했다. 그분의 말씀이 꼭 삶에 관한 이야기 같다는...


나보다 더 많은 경험치를 가지신 분의 귀한 말씀이고 조언이니 귀하게 잘 쓰고 싶어졌다.


그래 누군가가 그랬다.

수영은 포기하지 않고 그냥 계속하기만 하면 결국엔 잘하게 된다고.


그런데 꼭 수영만 그럴까?

뭐든 그냥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계속하기만 하면 어느 순간 잘하고 있는 멋진 자신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나는 힘 빼는 방법을 몰라 매일밤 등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영가방을 싼다.


언젠가는 잘하는 나 자신을 만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