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꽤 오래 알고 지내던 지인과의 관계를 끊었다. 관계를 그만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마도 몇 번의, 아니 수십 수백 번의 망설임이 있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그 태도에 실망이 컸을 것이고 그래서 최근의 이 결정에는 외려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늘 들어주는 사람이어야 했던 그 관계에 지쳤던 것 같다. 만나면 늘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면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나는 땅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늘 같은 주제로 하소연을 하고 넋두리를 하면 나는 또 하염없이 들어주고 맞장구를 치고 듣고 싶어 하는 조언을 해주는 반복이 이제는 하고 싶지가 않다.
어떤 일은 결과가 이유를 말해주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사람관계를 끊기로 마음먹기까지 그 결과가 머금고 있는 이유는 한 개일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하나하나 그 이유를 입 밖으로 꺼내고 문장으로 드러내는 게 너무 구차해지는 것 같아서 입을 닫는 쪽을 택해버렸다.
시소도 양 끝에 탄 사람의 무게가 얼추 비슷해야 재미가 있고 계속 타고 싶어진다. 사람관계도 시소랑 비슷하지 않을까? 한쪽만 늘 들어주는 쪽이어야 한다면 그 들어주는 쪽의 사람은 점점 더 자기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채로 상대방의 하소연까지 껴안고서 점점 더 무거워진다.
언젠가 그 지인이 내게 왜 연락을 끊었냐고 서운했다고 말을 한다면 '오롯이 내 이야기에 온 마음을 다해 귀를 한번 기울여줘 봤냐'라고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그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어주고 들어봐 줬냐'라고 물어보고 싶지만 그것도 그냥 관두기로 했다. 그런 걸 물을 정도였으면 이 관계가 이렇게 마무리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하기 대회는 있어도 들어주기 대회는 왜 없는 것일까? 들어주기 대회가 있으면 난 1등 할 자신 있는데 말이다.
내 맞은 편의 사람이 말없이 미소 짓고 고개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면 나도 두 번에 한번 꼴로 건너편의 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자.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