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온다는 것

by 쪼비


내가 매일 아침 가서 책도 보고 글도 쓰는 단골 카페가 있다. 보통은 평일 아침에 가는데 가끔은 주말 아침에도 가곤 한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는데 더 누워있기는 싫고 그렇다고 집에 있기는 더 싫고 해서 수영가방을 챙겨 나왔다. 한 시간 정도 커피 마시며 멍을 좀 때리다가 자유수영을 가자 싶었다.


주말 자유수영은 정해진 타임이 몇 개 있어서 아침에는 9시부터 11시 사이에 가야 한다. 커피 한잔 마시고 일어나면 딱 좋겠다 싶었다. 카페에 가기 전까지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카페 도착해서 커피를 주문하고 밖을 내다보며 본격적으로 멍을 좀 때려보려던 참이었는데 카페 사장님께서 책 한 권을 수줍게 내미신다.


"요기 앞에서 요즘 야외도서관 행사를 하고 있잖아요. 행사 참여하시는 작가님이 커피 마시러 오셨다가 책을 한 권 선물하고 가셨는데, 제가 읽어보니까 손님이 너무 좋아하실 것 같아서 한번 읽어보세요. "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책'이라는 말이 참 좋았다. 누군가가 내 취향을 알아준다는 건 되게 든든하다.


'네가 좋아할 만한 음식점을 발견했어. 거기 가보자' '이건 백 프로 네가 좋아할 만한 영화라니까'

살면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건 그 누군가들의 마음 한 구석에 내가 한 뼘정도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 같아서 괜스레 나 혼자 잠깐 마음이 뻐근해지기도 한다.


사장님이 건네주신 책을 펼쳐보니 진짜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후루룩 쏟아진다.


사진, 여행, 사람들, 다정함, 바람, 눈빛, 거리, 창문, 책, 뒷모습, 일상


계획했던 한 시간이 네 시간이 되어버렸다. 역시나 야무지게 세운 계획 따위는 별 의미가 없다. 계획 따위 필요 없다. 그러니까 대충 살아도 된다는 말이 맞다니까.


사장님께 책을 다시 돌려드리며 이 책 보여주셔서 감사하다고, 이 책 덕분에 내가 일주일치의 위로를 받았다고 말씀드렸다.


"아 정말요? 저기 앞에 이 책 작가님 계시네요. "


나는 망설임 없이 커피 한잔 사서 작가님께 다가갔고 고백을 해버렸다.


책이 참 다정해서 위로를 받았고 책이 용기를 줘서 고마웠고 사진 덕분에 오래 책에 머물렀다고 말이다.


도서전 준비하시며 물건들 정리하시느라 끼고 있던 장갑을 조용히 벗으시더니 내 손을 잡아주시며 그렇게 읽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화사한 미소에 담아 건네주셨다.


어떤 일이나 음악이나 영화, 책,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적절한 '때'에 나에게로 와주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 책이 그랬고 그 작가님을 우연히 직접 만났다는 게 그랬다.


토요일의 순간 덕분에 아마도 한 동안은 혼자 벅차서 배시시 웃을 것 같다.


그리고 혼자서 떠나는 여행을 조금은 빨리 도전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딱 지금 그 책이 나에게로 와주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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