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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그릇의 크기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 vs. 내가 가져야 할 그릇의 크기

by 워니

20대쯤이었던가? 그 때 당시 회사 대표께서 본인은 타고난 그릇이 작기 때문에 퍼주면서 살아야 잘 산다고 어느 분이 그러셨다고... 그 말이 20년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뭔가 안다고 하기도 어려운 그 나이에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보아하니 그렇게 그릇이 큰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나도 뭐든 퍼주면서 살아야 잘 살겠구나라고...

나름 열심히 퍼주면서 살았던 것 같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이 그리 크거나 많지 않았어도 누군가에게 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고, 또 달라고 하면 흔쾌히 내어주면서 말이다.


그런데 리더가 되고 보니, 이상하게 달라졌다. 열심히 퍼준다고 퍼주는데 그릇은 차고 넘쳐 흐르는 것 같고, 왜 퍼주는 것 같은데 마음은 행복하지 못하고, 나의 몸과 정신은 혼란스럽기만 한 것인지... 고민고민 하면서 나의 상태를 살펴보니, '나'였던 때와는 달리 '리더'인 지금, 지금의 그릇 크기가 모든 걸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구나, 잘 다루어서 퍼내고 있지도 못하구나, 뒤죽박죽 많은 것들이 엉켜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 그릇의 크기의 문제라 결론을 내렸다. 지금의 크기로는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기에, 이제는 그 크기를 크게 키워 나가야 하는구나.

그렇다면, 그 그릇의 크기라는 것부터 먼저 정의하는 것이 필요했다. 리더로서의 그릇의 크기란 뭘까 고민하다 리더로서 경험하고 다루어야 할 많은 상황들을 잘 정리해 낼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경험하는 상황을 잘 다룸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까지 컨트롤 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 하겠구나, 이 역량이 커져 무난하고 편안하게 잘 정리해 낼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그릇의 크기가 확장되어 가는 것이겠구나 라고 이해해 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먼저 리더의 그릇을 키워 나가기 위해 향상시켜야 할 역량에는 무엇이 있을까?


1. '나'는 누구인가? 인식하기


리더가 되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진다. 일 잘 하는 OOO에서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행동하도록 동기부여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OOO로 전환된다. 나 스스로 내가 무언가 행동하도록 하기도 쉽지 않은데, 타인이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하다니, 게다가 그 동안 나를 움직이게 했고 옳다고 믿었던 많은 기준과 가치관들이 통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리더는 과거의 모든 것이 부정당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내가 틀렸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지고 한다.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변화'라는 것에 대해 인간은 우선 저항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분명 리더 전과 후는 다르다. '나'에서 '리더'로 확장/전환 되었고, '나' 보다는 '리더'로서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살게 되므로,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2. 효율적으로 일과 시간 관리하기


실무를 버리며 리더 역할만 수행하는 경우가 점점 더 드물어 지고 있다. 실무가 줄지 않고 벅찬데 그 일을 혼자가 아닌 여러 구성원들과 함께 해야 하고, 그 함께를 만들어 주어야 하기도 하며 조정도 해주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연결의 수가 많아지고, 그 연결 안에서 조정도 생각만큼 바로바로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늘 시간에 쫓기게 만들고, 어느 순간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서두름은 좋은 선택지를 놓치거나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다루어야 하는 상황으로 연결된다.

물리적 시간의 제약 속에서 늘어가는 업무량과 충분히 숙의되지 못한 결정들은 결국 나의 역량에 대한 자기 의심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처리해 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리더, 그런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주변의 시선과 평가에 걱정이 쌓여가기만 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기 전 효율적으로 일과 시간을 관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말하기는 분명 쉬우나 '효율'을 추구한다는 것은 제한된 자원을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 이 때 현명하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상황과 맥락에 맞게 우선순위를 정하고 취사선택 해야 함을 의미할 것이다.

리더는 알고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안 되는 것', '못 하는 것'에 대해 빠르게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노력, 감정이 아쉬워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지기도 하고, '조금만 더 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낙관적인 편향으로 시간을 끌기도 하며, 실행하지 않음 자체에 대한 주변의 부정적 시선을 받을 것에 대한 우려 등 여러 심리적/감정적 이유로 생각보다 쉽지 않기도 하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결국 리더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늘 결과가 따른다는 것. 어떤 선택을 하는 리더가 될 것인지는 나의 선택인 것이다.


3. 예상치 못한 다양한 문제 해결하기


동전의 양면처럼 내가 내린 하나의 결정이 다른 하나의 아쉬움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빠르게 변하는 VUCA 세상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만으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고심 끝에 내린 그 결정이 다른 상황과 예상치 못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기도 다. 이 때 분명 나는 좋은 의도와 함께 그 상황에서의 최선이라는 믿음으로 결정을 했건만, 예상치 못한 비난과 비판에 좌절하기도 혼란스럽기도 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방어하기 위한 태도와 변명하는 것처럼 말이 길어지게 되고, 종국에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이러고 있는지 억울함만 남게 된다.

리더가 되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상황을 다루고 결정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해결책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미리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사안에 대해 최종 결정하기까지 부족한 경험과 지식을 채우기 위한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과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이고, 비판에 대해서는 감정이 아닌 본질을 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을 때는 그것을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태도를 갖고 보여주는 것, 그것이 리더로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여정이라 할 것이다.


4. 복잡한 내면의 갈등 다루기


위에서 이야기 한 상황들, 그리고 그 역량을 향상시기 위한 과정들을 살펴보면 모두 '감정'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이 그 연결된 감정이 동일한 상황, 동일한 대상과도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동시에 작동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복잡한 나의 감정 외에도 상대 또한 갖고 있을 복잡한 감정을 살피고 그에 맞게 대화 및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적 상황들에 대해 다루고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 수록 쌓이기 마련이고 쌓인 감정은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리더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루고 균형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인식하고 표현해 내는 것, 타인의 감정은 공감하되 그 안에서 나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정을 표현하는 리더, 어색하기도 또 쉽게 되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리더가 이를 표현해 낼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나의 부족함 또는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 잘 다루어 나가야 하는 것이라 인식하고 나 자신을 너그럽게 바라봐 주는 자기자비(Self-Compassion)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


높은 지위에 매달리며,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하지 말아라.(다산 정약용)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나의 내면 깊숙이 리더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또는 대접받고 싶은, 또는 그래야만 한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가 성찰하게 되었다. 외부의 평가나 지위에 집착하는 나머지 나도 모르게 나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연결되어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리더로서 그릇을 키운다는 것이 위에서 이야기 한 4가지 역량도 중요하지만, 나의 마음가짐이 어떤지, 남탓으로 문제해결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학습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를 위한 삶을 살았던 시기와 '타인'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살아야 하는 '리더'라고 하는 것이 결국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깔끔하게 해소하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타적인 이기심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타인'을 위한 행위이기는 하나 결국 '나'의 성장을 위한 행위로 연결된다는 것, 그래서 나의 그릇이 커가는 여정에 이 모든 경험이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한 리더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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