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갈등 관리 전략
살아가면서 갈등을 겪는 것이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이제는 '이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Daniel(1982)은 ‘갈등의 긍정적 효과가 발휘되도록 갈등의 수준을 감소시키거나 증가시키는 행동'을 갈등관리라 정의하였고, 정수진ㆍ김양호(2005)는 갈등은 긍정적, 부정적인 기능을 동시에 갖는 양면적인 특성을 띠기 때문에 ‘갈등은 없애거나 줄이려는 것이 아닌 갈등 그 자체로 인정하고 어떻게 대처할지를 효과적으로 행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결국 갈등관리(Conflict Management)란,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대처하여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가 라는 부분이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접근 전략으로 라함과 보나마(Rahim & Bonama)는 '통합, 순응, 지배, 회피, 타협'이라는 다섯 가지 관리 유형을 제시하였고, '자기에 대한 관심'과 '타인에 대한 관심'의 높고 낮음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갈등 해결은 결국 나와 타인에 대한 관심의 정도에 따라 대처하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이야기 한다. 위의 다섯 가지 중 당연히 가장 바람직한 대처 방안으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통합'일 것이다.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종합적인 대안을 공동의 입장에서 해결하기 위한 입장, 양쪽의 입장을 공동으로 통합하여 양측 모두 만족시킴으로써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론에서 이야기 하는 것들은 머리속으로는 이해하지만 현실 적용시에는 또 다른 갈등(?)을 겪게 된다. 말처럼 쉽지 않다는... 그리고 양측 모두의 만족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워크숍을 진행하면서도 참여자들의 의견차로 인한 갈등, 조직과 개개인의 입장차에 따른 갈등, 나의 기대와 현 상황과의 차이로 인한 갈등 등 다양한 갈등 상황을 겪는다. 그럴 때마다, 갈등은 우리가 상호작용하는 상황 속에 늘 존재하는 것이고, 이것을 잘 관리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이론적 이해를 바탕으로 잘 다듬고 정리해 보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하지만, 애를 쓰면 쓸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그런 불길한 느낌들.. 상황들 또한 자주 경험한다.
이러한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갈등'이 정말 '해결'되는 것이 맞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그 '갈등 상황'을 찬찬히 한 번 들여다 보니 대부분 '부정적인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이미 과거에 벌어진 일들과 좋지 않은 기억을 현재 그 때도 되돌아가 변화시킬 수도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해결해내지?"란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한 고민이 이어지던 중 재미있는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그 과거의 좋지 않았던 경험과 기억이 시간이 흐르면서 '왜곡'되거나 또는 현재의 어떤 상황과 연결되고 중첩되면서 또 다른 갈등으로 변질 또는 순화되는 등 다양한 역동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갈등'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결국 다시 원론적인 물음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던 중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에 의해 창시된 현상학(Phänomenologie; phenomenology)을 접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물음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현상학이란, 현상의 논리 혹은 의미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현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 우리에게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현상과 본질이 분리된 이분법적인 것이 아닌, 하나로 연결된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의식과 여러 세계와의 경험 속에서 계속 다른 존재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의식과 존재는 함께 있는 것, '사태 자체'로 접근하고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쿠퍼철학세미나(2022), 안세권교수)
갈등을 이분법적으로 '과거의 일'로 정의해 버리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를 현상학적으로 접근하여 해석한다면 그 갈등의 본질적인 문제는 현재와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이 지금까지의 상황과 의식 속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여 만들어진 또 다른 하나의 실채로 정의하여 이해한다면, '현재의 그 사태, 실재'를 들여다보고 해결하는 것이 의미있어 진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느끼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는 '갈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갈등해결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이 이면에 어떠한 본질들이 스며들어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과 이해가 바탕이 된다면 해결 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갈등'을 '현재의 중요한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본질을 고민해야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그 다음에는 이 갈등을 어떻게, 잘 기술할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고, 이를 누군가가 잘 도와준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끄집어 내고 기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잘 기술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또 하게 된다.
조직 내에서 어떤 문제나 갈등을 해결하고 싶다라고 할 때는 기대하는 결과물, 목표가 정의되어 있기 마련이다. 개인의 문제를 다루거나 상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중심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선, 개인의 경험과 지향성에 따른 이익이 아닌 공동을 위한 해결 방안 도출을 위한 사고의 전환 과정이 필요하다.
존 롤스(John Rawls)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과 협의나 조정을 통해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행동하는 합리적인 존재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에게 유리하거나 이득이 될 수 있는 자산, 재능,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는 배제(무지의 베일)하고 공동의 문제로 정의하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만장일치까지는 어렵더라도 모두의 의견을 어느정도 아우를 수 있는 '통합'은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루어 낸 '통합'의 과정이 참여한 이들 스스로가 의지를 갖고 해결의 의사결정 중심에서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발휘된 결과라는 것과 실천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모두가 100% 만족하는 만장일치를 이루어내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것에 가깝게 가기 위해서는 분명히 단계별로 경험과 노력이 쌓이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이 우리가 느끼게 될 변화일 테니까 말이다.
물론, 또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되면 우왕좌왕 고민을 하게 될 것이고, 왜 생각대로 되지 않는지 당황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갈등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모델로 설명되는 것이 불가능한, 우리는 VUCA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모두 다 잘 해보려고 하는 것인데 왜 이렇게 다 의심만 하고 불만만 이야기 하지? 이것이 그렇게 예민한 문제인가? 정말 합의한 것이 맞는건가?>라는 의심이 들 때, '바라보아야 할 갈등이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알아차리고 있는가?, 갈등에 대해 개인의 선입견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판단 유보)?, 모두를 위한 해결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사고로 전환되어 있는가? 스스로 변화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을 내렸는가?'라고 하는 부분을 염두에 두고 다루어 나간다면, 이 또한 그 어딘가에 있을 완벽한 해결점을 위한 과정으로 쌓여가지 않을까?
KOOFA 철학세미나 현상학 시리즈 1회~8회(2022)
존 롤스(2003) 정의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