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생 엄마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울컥 한다. 그 울컥함은 입시의 결과가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올라오려니 싶지만, 불합격한 입시생 엄마의 울컥함은 너무나 복잡하다.
입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여러번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어차피 경우의 수는 합격, 예비합격, 불합격 3가지. 하지만, 딸이 도전한 과의 경우에는 예비합격자가 없다고 하니, 그리고 여태껏 예비합격자로 충원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하니 결국 2가지 경우의 수. 행복회로를 돌려보기도 했다. 합격자 발표날 홈페이지에 '합격'이라고 뜬 화면을 보고 있을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기쁨을 어떻게 가족들에게 알리고, 지인들에게 겸손한 척 자랑하며 그 사실을 전할까하는... 그리고 상상하기 싫었지만, '불합격'이 되었을 때는... 멋진 어른처럼 아이의 상처를 먼저 보듬어 주고 지나간 과거는 생각말고 앞으로의 준비에 매진하도록 침착하고 차분하게 그 상황에 직면해야지 하는... 이렇게 생각할 때만 해도 나는 그것을 너무나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결과가 '불합격'이라 할지라도...
발표 날, 안 될 수도 있다고 입으로는 이야기 하고 있었지만, 나의 기대는 이미 너무나 높아져 있었고, 드디어 발표 결과.... '불합격'... 혹시 시스템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나에게 그 소식을 전해준 남편이 장난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다 이내 받아들였다. 그래, 세상에 쉬운게 어디 있겠어, 다시 한 번 해봐야지. 그리고 잠시나마 실망했을 딸아이의 모습도 생각하며, 나보다 더 상처가 크겠지 위로도 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 못내 서운함이 있기도 했지만 이때만 해도 이성적인 감정 컨트롤이 어느정도 되는 듯 했다. 멋진 나를 다시한 번 칭찬하며, 잘하고 있다고 응원하며 집으로 가는 길에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침착하니 위로하며 전화를 끊기 전, '그런데, 같이 시험 본 친구는 어떻게 되었니?', '합격했어.'....
다른 친구의 합격이 딸 인생과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그 친구는 붙었는데 너는 떨어졌다고? 라고 하는 새로운 감정이 치밀어 올랐고, 그때부터는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뭐지 이렇게 요동치는 감정의 정체는... 그리고 그날 밤, 잘 참아오던 감정을 끝끝내 누르지 못하고 딸 아이에게 퍼붓고 말았다. 그 동안의 너의 태도와 열심히 하지 않음이 쌓여 오늘의 결과가 있었던 거라고. 이 결과는 온전히 너의 책임이라고. 열심히 하지 않고 그런 기대를 품게 한 너의 솔직하지 못함이 문제였다고...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너라는 사람도 별 수 없구나 라는 실망과 함께 이러한 감정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어떻게 이 상황을 다뤄야 할 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 때가...
차분히 나의 감정에 대해 돌아보기로 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뭘지. 입시생 엄마라는 정체성으로서의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무엇일지.
우선 불안했다. 인생 길게 보면 1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큰 차이도 아닌데, 갑자기 딸이, 나의 소중한 내 딸이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그리고 1년 더 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순간 딸의 10년 뒤, 20년 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해서 만족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적당히 직장에서 일하다 적당한 사람 만나 아이 낳고 그 아이 키우느라 맞벌이 하며 허둥지둥 살아가는 딸의 모습이... 뭐지? 난 왜 이 결과 하나만으로 딸의 10년, 20년 뒤의 모습까지 이렇게 정해버린 것인지.
갑자기 내탓인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일 한다는 핑계로 아이의 학습을 잘 살펴봐주지 않았던 것, 공부는 자기주도로 해야 하는 것이라는 기준으로 결국 아이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만약 잘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신경쓰고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에 잘하고 있을거라고 믿으려고 애썼던 것은 아닌지, 남들 말처럼 일찍 학원으로 보내 억지로라도 공부하게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 동안 입시를 준비하며 했던 나의 선택들의 결과가 지금의 결과가 아닌 것인지 미안함과 후회, 자책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일 하면서도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멋진 엄마로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딸의 성공의 나의 성공을 결정짓는 중요한 도구였던 셈이고 그 과정과 결과를 나의 성공 스토리롤 활용하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있었는데, 그것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상실감이 내게 몰려왔던 것 같다.
하나하나 나의 감정을 살펴보면서, 결국 모두 다 '내 감정'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 감정 때문에 딸 아이의 감정은 어떨지 배려하지 못했고, 속상함으로 표현하며 그 감정들에 대한 보상을 딸 아이의 탓으로 돌리며 위로받고 합리화 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하지만, 아무리 퍼붓고 나도 감정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내 감정'이었기데 '내'가 해결하고 정리해야 할 것이지 그것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봐야 소용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것을 사전에 조정하지 못한 어리숙하고 미숙한 어른이었던 것이다.
입시생 엄마로서의 나는 아쉽게 그 과정을 마무리 한 듯 싶다. 하지만, 이 감정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정리되는 이 경험을 통해 전보다는 조금 성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 감정으로 인해 딸을 힘들게 했던 것을 반성하며, 오늘부터는 딸의 감정을 살펴봐줘야겠다. 이번의 불합격이 딸에게는 좀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을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