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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Oct 15. 2020

책임은 제가 집니다.

시댁에 가서 가장 난감할 때가 이럴 때이다. 역할이 상충되는 그런 날.

나는 결혼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임신-출산-육아의 굴레를 벗어나 본 적이 없어서, 직업에 며느리가 추가되는 날은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다. '엄마'인 직업만 해내는 것도 사실 너무나 벅찬데, '며느리'라는 직업의 도덕적 잣대는 내가 우러러보기도 힘든 높은 산에 있는 것 같다. 엄마로서 해야 하는 일과 며느리로서 해야 하는 일이 자꾸 겹쳐질 때, 그럴 때마다 얼마나 그 안에서 싸우고 타협을 했었는지 - 시댁에 가면 더더욱 우는 아이를 엄마로서 달래야 하는지, 며느리로서 아이를 내팽개치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지, 그런 게 늘 고민이었다.

사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그 고민의 정체는 이런 것이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는 정말로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 하면 욕을 먹을 것 같고, 그 욕이 고스란히 내가 가져가는 게 아니라, 우리 부모님까지 전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운 마음, 그것이 크지 않았을까.

큰 아이만 있었을 때 나는 시댁에 갈 때마다 엄마가 아니라 며느리라는 직업을 더 편들어주곤 했다. 아이가 울면 우는 아이를 탓했고, 며느리로서의 일을 방해하는 아이에게 매일 '저리 가'라는 말을 반복했던 것 같다. 요즘은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일단 내가 역할의 우선순위를 먼저 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 그것은 순전히 나의 결정이고, 그에 따른 책임도 내가 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시댁에 가는 길은 여전히 두렵다. 내가 늘 끼고 사는 아이들이 어떤 부분이 예의가 없는지 너무나 객관적인 지표로 속속들이 간파당하는 느낌이고, 아이의 행보 하나하나에 나의 평판이 왔다 갔다 한다. 그런 살얼음판 속 나는 며느리로 중심을 잡아야 할지, 엄마로 중심을 잡아야 할지도 모르면서 혼란 속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요즘의 나는 예전보다는 당당히 엄마의 역할에 조금 더 우선순위를 쥐여주곤 한다. 예전에 아이가 울어도 고무장갑을 쉽게 못 벗었다면, 지금은 아이가 울면 고무장갑을 벗고 달려가서 안아준다. 아이가 울 때 어르고 달래는 게 아이 버릇 나빠진다고 하는 소리를 들을지 몰라도, 내가 안아주고 싶은 만큼 안아주고 달래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삶에 더 큰 가치는 며느리보다는 엄마인 것 같아서, 일부러라도 엄마의 역할을 하려고 조금씩 노력을 한다. 

정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채 불만은 불만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울리고, 나는 나대로 우는 것을 볼 바에야, 내가 조금 더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당당하게 책임을 지고자 한다. 내가 낳은 아이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는 길로, 며느리의 역할이 조금은 부실해도 좋은 엄마가 되는 길로, 아이의 어린 행동들이 어른들의 마음에는 들지 않아도 지금이 행복한 아이들로 안내하는 길로, 지금은 내가 선택하고 싶다. 그리고 그 책임도 고스란히 내가 가져가야겠다고 한 번 더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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