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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Jul 05. 2024

꿈을 꾸고 꿈을 팔고

엄마는 꿈을 나에게 팔았다.

나도 어릴 적 엄마가 돌아가셨다. M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에게 장례식장에는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는 했지만 얘기를 해 놓고도 맘이 좋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친한 친구 한 명이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곁에 있어 주었다. 울면 함께 울어주고 밥도 같이 먹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때가 되면 친구가 손을 이끌고 밥상에 앉혀주었다. 울면서도 문어숙회는 한 접시를 다 먹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도 처음 마셔봤다. 쓰디쓴 커피를 왜 마시나 했는데 그땐 참 맛있고 시원했다. 발인 전날 밤 친구랑 밖에서 몰래 마신 맥주는 어찌나 짜릿하던지. 아직도 그 기분이 잊히지 않는다. 가끔 그 친구와 맥주를 한 잔 할 때면 꼭 그 얘기를 한다. 너 기억나? 그때 그 맥주. 잊지 못하지. 얼마나 시원하고 짜릿하던지. 눈물이 쏙 들어갔어. 우리 엄마도 맥주를 참 좋아하셨는데. 자. 짠하자. 엄마를 위하여. 좋아. 너 아니었으면 쓰러지고 무너졌을 거야. 고마워. 뭘. 당연히 내가 있어야지. 눈물이 툭. 습관성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진다. 눈치채지 못하게 쓰윽 닦고는 다시 맥주를 마셔본다. 


M과 나는 비밀이 생긴 것처럼 학교에서 눈을 마주치면 미소를 지었다. M이 뉴키즈를 좋아하는 것은 모두가 알 정도로 유명했지만 내가 춤을 잘 춘다는 것은 아마도 M 말고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연습실에 간다. 번화가에서 벗어난 곳 지하실에 연습실이 있다. 어느 날 걷다가 발견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끌려 들어갔다. 선생님은 혼자서 춤을 추고 계셨는데 반주도 없이 몸을 움직이고 계셨다. 너무나 멋진 모습이었다. 처음 왔니?라고 물어보기 전까지 멍해있었다. 네. 저도 춤을 추고 싶어요. 그래 언제든지 와서 추면 된다. 마침 학원을 가지 않는 날이라 가방을 내려놓고 춤을 추는데 눈물이 났다. 내 몸이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고 그런 내 몸이 소중했다. 잘 추네. 저 일주일에 한 번 와도 되나요. 그럼. 다음 주에 만나자. 등록절차도 수업료도 얘기하지 않고 나를 받아준 선생님은 알고 보니 서울에서 유명한 댄스씨어터소속 댄서였다. 무슨 이유로 이런 작은 마을에 오게 되었을까.      


어느 날 연습실에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한 명 들어왔다.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옆으로 매는 길쭉한 가방을 메고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작고 잘생긴 얼굴형이다. 나를 보지 못했는지 가방을 툭 바닥에 던져놓고는 다리와 팔을 돌리며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새로 오셨나 봐요. 네 어제 처음 왔어요. 어떤 노래 좋아하시나요. 뉴키즈를 좋아해요. 스텝바이스탭. 하면서 발을 엇갈리며 주요동작을 해보았다. 살짝 웃었다. 잘하시네요. 같이 해볼래요? 좋아요. 가방에서 테이프를 꺼내더니 툭. 플레이. 반주 없이 시작하는 첫 4마디를 지나 춤이 시작한다. 오늘 처음 만났고 이름도 모르는 남학생과 뉴키즈 음악에 맞추어 스텝바이스탭을 추게 될 줄 몰랐다. 게다가 이렇게 잘 맞을 줄이야.    

  

너 내 꿈 살래? 엄마는 항상 갑작스럽다. 응? 하기도 전에 대답해. 복화술로 말한다. 으응. 그래. 휴. 다행이다. 꿈 살래?라고 물어보면 무조건 대답부터 해야 된대. 꿈이 뭔데? 지금 말할 수는 없지. 너 돈 있니? 얼마나? 용한 데 가서 기도드려야지. 아휴. 거기 가지 마. 그 아저씨 사이비 같아. 야. 말 조심해. 용하다니까. 지난번에 그렇게 돈 버리고도 아직도 그 아저씨 말을 믿는 거야? 어디 땅이 좋다고 투자하라고 해서 없는 돈 있는 돈 끌어모았다가 지금 여기 살고 있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아무튼 이번엔 진짜야. 너한테 좋으라고 하는 거니까. 난 지금도 좋아. 나를 위해서 기도 그만해도 될 듯. 야. 너 말을 그렇게 하냐. 알았어. 돈 보낼게. 도대체 그 눈빛 이상한 아저씨가 어디가 용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내 미래도 맞추지 못했고 땅도 해결 못해준 주제에 엄마 꿈까지 돈 받아가서 뭘 어쩌려고. 답답하지만 엄마의 맹신은 끝이 없고 막을 수가 없다. 사실은 이 믿음마저 없으면 인생이 고달파서 일 것이다. 기댈 곳이 없어서 일 것이다. 안다. 그래도 이 돈이면 미용실 가서 염색도 할 수 있고 햄버거를 10개는 세트로 사 먹고도 남을 돈인데 아깝다. 기도할 때 나도 같이 가자는 말이나 안 했으면 좋겠다. 없는 야근을 만들어야겠다.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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