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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Jul 02. 2024

노래 그리고 춤

너는 노래를 해. 나는 춤을 출게

아무도 없어? 응 아무도 없어. 이젠 정말 아무도.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올 때는 정신없이 나와서 잘 모르는데 이렇게 저녁에 집에 오면 이상하게 허전해. 바닥도 차갑고. 왜 아니겠는가. 아무도 없는 집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이 집 어떡할 거야? 모르겠어. 먼 친척이 딱 한 분 계신데 연락을 해봐야지. 사촌언니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응 언니도 아직 어리니까. 그래도 성인인데. 그래도 언니가 편하지 않아? 글쎄. 한 순간 모두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니까 누구에게도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어. 내가 빨리 성인이 되는 수밖에 없는데 시간이 참 느리게 가. 라면 먹을래? 그래 좋아. 난 물을 많이 넣고 퍼진면을 좋아하는데 넌? 나도. 다행이다. 라면의 퍼진면을 좋아하는 M과 나는 이날 밤 급속히 더 친해졌다. 가끔 아니 자주 놀러 와. 그럴게. 오늘밤 괜찮겠어? 응 괜찮아. 너 학원 못 가서 어떡해? 괜찮아 200개 단어는 진작 다 외웠고 내일 분량도 이미 머릿속에. 그래. 우리 어서 어른이 되자. 


집으로 가려다 말고 물었다. 참 너 뉴키즈는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거야? 처음 나왔을 때부터. 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 외국음악잡지 핫뮤직이라고 정기구독하셨거든. 거기서 처음 봤어. 하얗고 귀엽더라고. 음악도 좋고. 브로마이드 부록으로 주는 것들 모아서 들여다보고 음악 듣고 가사 외우고 그랬어. 학원도 다니지 않는데 영어는 항상 전교 1등인 이유가 여기 있었다니. 그런데 어느 날 한국에 온다는 거야. 안 갈 수가 없지. 용돈도 모았겠다, 표를 사러 엄마랑 같이 갔어. 조금 보태주시긴 했는데 콘서트날은 같이 못 간다고 하시더라. 혼자 갈 수 있다고 표 사주셔서 고맙다고. 엄마한테 고맙습니다라고 해본 것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 하루하루 콘서트 날만 기다렸어. 떼창 나올 곡들은 무조건 외우고. 콘서트장에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려들었어. 기념품을 많이 팔았는데 껌이랑 장갑도 겨우 샀어. 사람들이 많아서 밀리고 밀려서 입구로 들어가려다 어디서부터 인지 모르겠는데 넘어지기 시작하더니 한순간에 우르르르. 정신을 차려보니 난간이 보여서 겨우 붙잡고 있었어. 잠시 공연이 중단된다는 방송이 나왔는데 아픈 것보다 오빠들 못 볼까 봐 눈물이 나더라. 철없지. 아니 이해되. 어찌어찌 공연장에 다시 갔는데 불빛들 사이로 하얗고 귀여운 5명이 춤을 추는데 꿈같았어. 브로마이드에서 튀어나온 오빠들. 목이 터져라 같이 노래 부르고 아까 샀던 장갑을 끼고. 이거야 얼굴들이 손가락에 새겨져 있어. 멋지지. 응 멋지네. 신기하네. 뉴키즈 얘기를 하다가 다시 신발을 벗고 거실에 앉았다.


다시 거실에 앉아 주스를 마시고 오징어 땅콩을 먹으며 뉴키즈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사를 모두 외운 거야? 다는 아닌데 좋아하는 곡은 하도 많이 들어서 저절로 외워지더라. 들어볼래? 갑자기 M 은 분주히 카세트테이프를 준비하고 탁자를 저만치 밀더니 작은 무대를 만들었다. 마이크 모양의 막대기는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 꽤나 진지하다. 스텝바이스텝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한 박자도 놓치지 않은 채 끝까지, 랩까지 모두 불렀다. 박수 치는 것도 잊은 채 노래에 빠져들었다. M 이 이렇게나 노래를 잘했던가. 영어 발음이 좋은 줄은 알고 있었는데 순간 언니처럼 느껴졌다. 와. 하며 박수를 친 것은 노래가 끝나고 M 이 카세트테이프를 멈추고 나서도 2-3초가 더 흐른 뒤였다. 조용한 거실에 내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중간에 춤인 거야? 춤도 연습 중인데 잘 안되네. 내가 춤이라면 좀 아는데 같이 해볼래? 나는 어릴 때부터 춤을 잘 췄다. 티브이에 나오는 가수들 춤은 한 번만 보면 따라 출 수 있을 정도였다. 정말이야? 뮤비 볼래? 뮤비. 처음 듣는 단어였고 처음 보는 화려한 화면이었다. 춤이 보이기 전에 놀랄만한 화면전환속도와 쉴 새 없는 특수효과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여기야.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 춤이 현란했지만 따라 출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자.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본 후, 나는 바로 춤을 따서 췄다. M 은 내가 M의 노래를 듣고 놀란 것보다 더 놀란 눈을 하곤 왜 춤을 잘 춘다고 얘기하지 않았냐고 하다가 둘이 한참을 웃었다. 너는 노래를 해. 나는 춤을 출게. 알았어. 잠시만 거울을 가져올게. 안방에 큰 거울이 있었는데 낑낑대며 거실로 옮겨와 다시 뮤비를 틀고 비장하게 노래가 시작하기를 기다린다. 전주가 흐르고 발을 몇 번 구르자 M의 노래가 시작되고 나는 옆에서 아까 외웠던 춤을 춘다. 뉴키즈 오빠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의 반대편에서 소녀 두 명이 오밤중에 자신들의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지금 시간이 몇 시인 줄 아니. 얼마나 걱정했다고. 학원도 안 가고 대체 어딜 갔던 거야.라는 반응이 쏟아져 나올 줄 알았는데 들어왔으면 됐다. 다음부턴 전화해라. 늦었는데 씻고 자. 변명도 못하게 낮은 못소리로 그러나 어쩐지 다정하게 툭 얘기하곤 방으로 들어가신다.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양말부터 벗는데 엄마는 항상 집에서도 양말에 슬리퍼를 꼭 신으신다. 방으로 들어갈 때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나는데 오늘은 어쩐지 빠르게 들린다. 이상하다. 평소에 엄마라면 아니 세상에부터 시작해서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로 끝나야 방에 가서 의자에 앉아 한숨이라도 쉴 수 있는데 그러지도 못하겠고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도 어디 다녀왔다는 얘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안방문을 두드리고 연락 못해서 미안해 M 집에서 얘기하다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몰랐어. 그래 알았어. 여러모로 이상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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