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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Jun 11. 2024

아무로와 나

뉴키즈온더블록

놀라운 일은 또 하나 있었다. 그 옆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한 명이 더 있었는데 바로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우리끼리 아무로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그녀도 함께 담배를 피웠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나도 어서 한 대 피워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 정도였다. 나만 담배를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아빠는 엄청난 골초여서 아침에 일어나면서 머리맡에 있는 솔 담배를 물고 일어나서 종일 피워대는 체인스모커셨는데 담배 심부름은 항상 나만 시키셨고 사탕을 한 개씩 주셨다. 오빠는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는데 오빠가 담배에 물들까 걱정해서였다고 나중에 고백하셨다. 하지만 오빠는 이미 담배에 물들 대로 물들었다. 아빠가 담배를 피우든 안 피우든 오빠는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는데 홍콩영화에 꽂혀버린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였다. 정작 홍콩영화에 담배 피우는 장면이 자주 나오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닌데 괜히 용돈을 모아 담배를 샀다. 겁은 많아서 그냥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만 다녔는데 어느 날 한 번 피워보더니 입맛에 맞는지 계속 피워댔다. 어느 날 나한테 걸렸는데 제발 아빠에게 말하지 말라고 해서 용돈에서 10프로를 매달 떼서 주기로 협상하고 나는 비밀을 지켰다. 그런데 아무로는 정말 의외였다. M과의 관계도 담배도 날라리와의 친분도.     


그날 셋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갑자기 너무나 궁금해진 나는 하교할 때 M을 기다렸다. 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 큰길까지 걸어왔을 때까지도 물어보지 못했다. 집에 다 와가자 초조해져서 에라 모르겠다. 그냥 물어봤다. 혹시 아무로랑 친해? 아니 그러니까 S 말이야. 물어보길 기다렸다는 듯이 응. 어쩌다 보니 친해지게 되었어. 언제부터였더라……. 기억이 잘 안 나네. 아. 뉴키즈 껌을 가지고 있는 걸 보고 내가 말을 걸었던 거 같아. 뉴키즈 껌? 그거 뉴키즈 콘서트 간 사람만 가지고 있는 거거든. 너 알지. 나도 뉴키즈 팬인 거. 나 거기 갔다 깔릴뻔했잖아. 눈이 반짝였다. M이 뉴키즈 팬이란 걸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아무로도 거기 갔었다는 거야? 껌이 있으니 그랬겠지? 그래서 물어보니 정말 다녀왔더라고. 아. 그랬구나. 누구의 팬도 아닌 나는 그게 참 신기했지만 같은 가수를 좋아하고 그 가수의 얼굴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씹지 못할 껌이라도 좋은 것이겠구나 짐작했다. 근데 아무로랑 나랑 왜? 아니 사실 너희 둘이 담배 피우는 걸 봤어.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를 꺼냈다. 손은 떨리고 귀는 빨개졌지만 티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M이 웃으며 왜 손은 떨고 난리야.라고 하기 전까진 안 보이는 줄 알았다. 담배는 장례식장에서 처음 피워봤고 계속 생각나서 학교에서도 꺼내 봤지. 안 걸릴만한 곳이 어딘가 하고 거기까지 갔는데 모두의 생각이 비슷한가 봐.


그럼 혹시 날라리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미안.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사실 장례식장에서도 봤어. 응 장례식장에 찾아왔더라. 나도 놀랐어. 그날 처음 얘기를 나눠봤어 나도. 나보다 더 많이 울었어. 같이 안고 많이 울었어. 그리고는 그냥 가더라고. 그 뒤로 학교에서 가끔 만나면 인사 정도만 하고. 알지? 학교 매일 안 나오는 거. 응 알지. 그랬는데 그날 거기서 만난 거야. 담배 피우면서. 셋이 별 얘기는 안 했어. 서로 쳐다보며 웃다가 각자 담배 꺼내서 조용히 피다가 교실로 들어갔어. 그게 다야. 그게 다야? 응 그게 다야. 그랬구나. 선생님한테 말 안 할 거지? 응. M의 집에 거의 다 와 갔다. 우리 집에 갈래? 처음이다. 집에 같이 가자는 말. 그래 좋아. 오늘 외울 영어 단어가 200개였지만 시험이 걱정되었지만 일단 M의 집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 차가운 바닥. 그리고 뉴키즈 사진 한 장. 이것이 M의 집의 첫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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