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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May 18. 2024

장례식장에서

너와 담배

M은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 내 한숨은 무게가 없는 것 같은데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고 내뱉는 한숨은 형체도 보이고 깊어 보였다. 발인 하루 전날 새벽에 잠이 안 와 밖에 앉아있는데 사촌 언니가 다가왔다. 대학을 다니는 언니는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옆에 앉자마자 담배를 꺼냈다. 고3인가? 응. 한 대 피울래? 응. 펴봤니? 아니. 그래. 오늘 같은 날은 한 대 피워도 된다. 일단 물어봐. 어딜. 거기 끝에. 언니가 불 붙여주면 바로 쭉 들이켜. 쭉? 응 쭉. 쉬면 안 돼. 알았어.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되었다. 언니가 라이터에 켜고 담배 끝에 불을 붙여주었다. 나는 끝을 주시하고 있다가 쭉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숨을 멈췄다. 연기를 내뿜기는커녕 곧바로 컥컥 기침이 나왔다. 언니는 처음엔 그래. 두 번째부턴 안 그럴 거야 다시 해봐. 다시 한 모금 쉬지 않고 쭉 들이켰다가 뱉어보았다. 연기가 나왔다. 그리고 눈물도 나왔다. 연기 때문에 매워서인지 내일이 발인이라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한 개비를 다 피울 때까지 언니와 나는 말이 없었다. 언니 내일까지 있을 거야? 응. 고마워.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했지만, 곧 발인 시간이 다가왔고 화장장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가는 길은 쓸데없이 아름다웠다. 마을도 산도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 화장터가 있다니.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이 들다가도 이런 곳이 아니면 화장터를 할 수 없겠지 싶기도 했다. 화장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내내 눈물이 나왔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이제 엄마는 고통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오르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조금 슬펐지만, 그 정도는 견딜 만했다. 놀랍게도 딱 한 줌이었다. 키도 작고 마르시긴 했지만 한 줌이라니. 한지에 곱게 접어 주셨는데 그걸 일단 주머니에 넣었다. 어쩌려고. 집에 가져가려고. 그래. 언니와 나는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왔다. 주머니 속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어쩐지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언니 우리 담배사자. 그래 편의점에서 언니가 담배를 살 동안 밖에서 기다렸다. 편의점 옆 골목에서 언니와 나누어 피우던 담배는 맵지 않았다. 더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더 이상. 언니 이제 가. 나 괜찮아. 오늘 밤만 같이 있을게. 아니야. 나 내일 일찍 학교 갈 거야. 그래. 알았어. 무슨 일 있음 꼭 전화해. 알았어. 담배랑 라이터를 내 손에 꼭 쥐여 주었다. 필요할 것 같아서 좀 더 샀어. 하며 나머지는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 꾸역꾸역 넣어주었다.      


M의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전교에서 제일 유명한 우리 반 날라리를 만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 날라리는 날라리 치고는 공부를 잘하고 예쁘게 생겨서 선생님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였다. 어느 날 날라리가 나에게 다가와 D 오빠를 아느냐고 물었다. 아는 오빠였기에 안다고 했더니 기분 나쁜 표정으로 그래. 그 오빠도 너를 안다고 하더라. 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아는 것을 안다고 했을 뿐인데 그날 이후로 뒤통수가 따갑고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 오빠는 대체 이 날라리를 어떻게 아는지 그것 또한 의문이었다. 기타 학원에서도 조용히 기타만 치고 가던 오빠였는데 말이다. 모두가 일렉기타를 칠 때 꿋꿋이 클래식 기타를 쳐서 다른 오빠들이 음악을 모른다며 절레절레했고 클래식 기타를 치는 바람에 엄지손가락 손톱이 유난히 길었던 손이 하얀 오빠였다. 안녕 정도 인사만 주고받았는데 그 날라리에게 내 이름을 안다고 할 정도의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것 또한 참 이상하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날라리는 장례식장에 처음 와봤는지 절을 해야 할지 목례를 해야 할지 고민하더니 갑자기 기도하고는 M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고 2~3분 대화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는데 어떤 얘기를 했는지 물어보진 않았다. M은 눈물을 조금 흘렸던 것 같고 날라리는 두 번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애틋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샘날 정도였다. 나는 밤까지 M과 함께 있다가 집으로 왔다. 장례식장의 무거운 분위기, 처음 입어본 검은 옷의 불편함, 내내 울던 M의 얼굴이 계속 아른거려 밤새 뒤척였다. 오늘이 발인이라고 했는데 가볼 걸 그랬나 싶다가 하루 장례식 다녀온 것도 엄마가 눈치를 줘서 다음날도 간다는 말을 못 했다.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고 걱정만 하다 학교에 갔다. 날라리는 오늘 결석했다.      


의외의 면이 있는 M이었다. 모든 면에서. 그날 담배 피우는 것을 보았을 땐 의외라기보다 어쩐지 늦게 발견했던 것 같기도 한 그런 기분이었다. 그런데 날라리와의 친분은 의외였다. 무시무시한 소문이 많은 날라리는 내가 알기로 우리 학교에선 친구가 없고 옆 학교 날라리 혹은 언니들이랑만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M과 웃으며 학교에서 심지어. 맞담 피는 사이라니. 그것은 조금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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