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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May 10. 2024

M과 나

그녀에 관한 이야기

내 말 듣고 있는 거지? M은 대화 중 항상 확인한다. 상대방이 내 말을 잘 듣고 있는지. 지난달에 M을 만났을 땐 얘기를 하다 말고 내 눈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왜…. 그래…? 응 내 말을 잘 듣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이렇게 눈을 보고 있으면 정말 잘 듣고 있는지 다른 생각을 하는지 보이거든. 차라리 내 말 듣고 있는 거냐고 말을 하지. 어색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M을 꽤 정기적으로 만나는 편이다. 사실 어떤 날은 내가 확인하고 있다. M 이 내 말을 듣고 있는지 딴생각하는지.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는 매우 친밀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서로에 대해 날이 서 있고 늘 확인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언젠가 이 이슈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것이 불편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서로 확인하고 인정하는 사이로 남자고 약속까지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는 꿈을 자주 꿨다. 어떤 꿈은 너무 생생해서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꿈을 꾸고 나면 그 꿈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싶어 엄마한테 얘기하면 응. 응. 그래. 별로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도 알 수 있었다. 엄마 내 말 듣고 있어? 응 그런데 지금은 엄마가 좀 바쁜데 이따 저녁에 다시 얘기해 줄래? 엄마는 그냥 식탁에 앉아만 있었는데 바쁘다고 했고 저녁이 되면 어서 씻고 자라고 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내 꿈에 대해 절반도 얘기하지 못했는데 거기서 멈춰야만 했다. 아쉬운 마음에 오빠라도 붙잡고 얘기하려고 하면 숙제 핑계를 대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빠는 항상 맥주를 한 잔씩 마시고 들어오셔서 귀가 빨개진 채로 쓰러져 주무셨기 때문에 절반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항상 할 수 없었다. 누군가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직도 많은 꿈의 절반 혹은 시작도 못 한 꿈 얘기가 많다. 나처럼 얘기하기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은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M을 만나고 이렇게 비슷한 아이가 세상에 존재하다니 놀라며 친해졌다.     

야자시간에 선생님이 다급하게 M을 불렀다. 수학 문제가 안 풀려 끙끙대던 M은 나갔다 온 후 눈이 빨개져서 가방을 싸고 뛰듯이 교실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인지 물어볼 틈도 없었다. 하교할 때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나를 한번 쓱 보시더니 응. M 어머님이 돌아가셨어. 3일 정도 못 나올 거야. 어머님이요? 나는 너무 놀라 조금 비틀거렸다. 혹시 어디로 가면 M을 만날 수 있나요. 버스 타고 ㅅ 병원으로 가봐. 거기 장례식장이야. 이따 선생님도 갈 거야. 네. 엄마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장례식장에 가면 안 좋다고 했다. 나는 꼭 가봐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수능은 잘 볼 자신이 있었고 오늘은 M을 꼭 만나야 했으니까. 최대한 검은 옷을 입고 버스를 타고 ㅅ병원으로 가는 동안 눈물이 계속 났다.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아직은 어렸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복도는 길고 서늘했다. 몸이 가늘게 떨렸고 두리번거리다 복도 끝에서 M과 마주쳤다. M은 헐렁한 검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서로 안고 울었다.     

3일 후에 M이 다시 학교로 왔지만, 평소와 다른 점이 없었다. 가끔 쉬는 시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수업시간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는 것 말곤. 어느 날엔가 또 사라질 것만 같은 눈을 하길래 눈치 못 채게 따라갔다. 학교 뒤쪽에 박스를 버리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멈춰 섰다. 우리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날라리도 거기 있었다. 어. 그러더니 둘이 치익. 담뱃불을 서로 붙여주고 한 모금 빨아들인다.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본 것처럼 심장이 너무 뛰었다.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M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뛰었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한 모금 천천히 빨아들였다 내뱉을 뿐이었다. 정확히 10번 반복하곤 담뱃불을 껐다. 그리고는 뒤돌아 교실로 걸어갔다. M과 마주치지 않도록 나는 이미 교실로 돌아간 후였다. 담배도 놀라웠고 날라리도 놀라웠고 침묵도 놀라웠다. M이 조금 멀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날라리와는 대체 어떤 관계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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