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경 May 04. 2024

금붕어와 햄스터와 강아지

웨얼 도그 컹컹 쏘리

금붕어가 죽었다. 오빠와 나는 잠시 멍하니 어항만 바라보았다. 휴일 아침이라 엄마아빠는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고 오빠랑 나는 마주 보며 다짐했다. 분명히 엄마는 쓰레기통에 버릴 거야. 우리가 묻어주자. 나는 며칠 전 종이 인형을 모아두었던 상자에서 종이 인형을 쏟아내 버렸다. 상자가 한 개 더 필요했다. 오빠가 레고 사람들만 모아둔 상자에 사람들을 쏟아냈다. 이제 누가 금붕어를 건져낼 것인가 결정해야 했다. 의견이 갈렸다. 오빠는 각자의 주인이 건져내자. 나는 가위바위보를 하자. 사실 나는 별로 만지고 싶지 않았다. 1분 오빠라도 오빠는 오빠니까 네가 해. 단호한 나의 말에 오빠가 팔을 걷었다. 금이를 건져내어 종인 인형 상자에 넣었다. 붕이를 건져내어 레고사람 상자에 넣었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옷을 입고 금이와 붕이를 들고 집을 나왔다. 어디로 갈지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둘 다 뒷산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말은 없었다. 한참을 올라갔다. 꼭대기에 다다라 햇빛이 드는 곳을 찾았다. 돌을 하나씩 주워 땅을 팠다. 상자가 들어갈 만큼 다 파고 두 개를 나란히 땅속에 넣었다. 손으로 다시 흙을 덮어주었다. 상자가 안 보일 때까지 흙을 다 덮고 오빠가 기도하자고 했다. 어떻게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몰랐지만,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순간 눈물이 났다. 오빠도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오빠랑 나는 손을 잡고 한참을 금이붕이가 묻힌 곳을 바라보았다. 차가울 거 같아 땅속. 둘이라서 괜찮을 거야. 한 상자에 넣을 걸 그랬나. 아니야 개별적으로 넣은 것은 잘한 거야. 이제 가자. 아침부터 어디 다녀오냐고 금붕어들은 어디 갔냐고. 우린 말 대신 울었고 엄마와 아빠는 혼내는 대신 안아주었다.      


K는 엄마가 계시지만 항상 바쁘셔서 대부분 시간은 할머니와 보낸다. 1학년이 되자 학교에 간다. 피아노 학원을 간다고 하며 바쁘게 지냈다. 어린이집을 다녀오면 대부분 시간을 집 앞 화단에서 나뭇가지로 땅을 파며 어두워질 때까지 시간을 보냈던 것에 비하면 몸은 힘들어도 이편이 나았다. K가 학교에 가면 할머니는 밀린 집안일은 하신다. 빨래도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저녁 준비를 위해 장을 보러 가시기도 한다. 오늘 마침 장날이라 K가 좋아하는 꽈배기도 살 겸 시장으로 향했다. 장날에는 늘 같은 물건을 파는 같은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매번 다른 것을 팔러 오는 사람도 있다. 장이 서는 날 길 끝에 앉은 모자 쓴 아저씨. 오늘은 햄스터를 가지고 왔다. 햄스터를 이렇게 장날에 팔아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할머니도 꽈배기를 사고 걷다가 사람들이 많아 기웃거리다 햄스터를 보았다. K 또래의 아이가 와. 귀엽다. 나고 키우고 싶다.라는 말을 들었다. K도 심심할 테니 한 마리 살까 하다가 모자 쓴 아저씨가 한 마리는 외로우니 두 마리를 사라고 해서 얼떨결에 두 마리를 모두 사 왔다. 햄스터만 사면 되는 줄 알았더니 케이지도 사야 하고 케이지 안에 들어있는 물레랑 물통 등 모두 다 해서 꽈배기를 대여섯 번 사 먹을 수 있는 값이 나갔다. 그래도 K가 좋아할 생각을 하며 기쁘게 집으로 돌아왔다.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K가 돌아왔다. K야 이쪽으로 와볼래. 할머니 왜. 짠 여기 봐라. 하는데 햄스터 두 마리가 열심히 바퀴를 구르고 있었다. 와. 진짜 귀엽다. 할머니 정말 귀여워요. 눈을 떼지 못하는 K를 보며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잘 키워보자. 네. 할머니 고맙습니다. 다음날 학교로 가는 K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학교에 가서도 피아노 학원에 가서도 햄스터 얘기를 계속했다. 선생님 햄스터 아세요? 정말 귀여워요. 저는 제 햄스터가 정말 좋아요. 제 동생 같아요. 우와. 선생님은 실제로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귀엽다니 궁금하다. 제가 사진 찍어올게요. 정말 귀엽다고요. 응 그래. 꼭 보여줘. 다음날 K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았다. K야 피아노 쳐야 하는데 왜 손을 빼지 않아. 추워서 그래? 저기. 어젯밤에 햄스터가 죽었어요. 여기 있어요. 하면서 주머니 안 손을 꼼지락 한다. 뭐라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밤새 안아주었는데 학교에서는 아무도 몰랐어요. 근데 지금 피아노 쳐야 하는데….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K야. 주머니에 햄스터를 넣으면 안 돼. 어쩌지…. 사실은 나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K를 달랬다. 우리 햄스터를 위해 기도를 해주고 요 앞에 화단에 묻어줄까. 사실은 묻어주는 것은 안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을 것 같았다. 손을 모아 기도를 하다가 우리 둘 다 울음을 터뜨렸다. 건물주가 보기 전에 땅을 파고 햄스터 두 마리를 묻어주었다. 손톱에 까만 흙을 그대로 묻힌 K와 나는 손을 꼭 잡고 2층으로 올라왔다. 햄스터를 위한 피아노곡을 쳐보기로 하자. 오늘따라 K의 손가락은 건반 위를 나비처럼 날았고 선율은 아름다워 또. 눈물이 났다.      


다시 금붕어를 사는 일은 없었다. 햄스터를 사는 일도 없었다. 아빠는 동물을 돈을 주고 사면 안 된다고 했고 오빠와 나는 동물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5걸음 걸어가면 D의 집이 나온다. D는 강아지를 세 마리나 기른다. 동네 산책을 할 때면 세 마리 모두 맹렬하게 짖는다. D는 콰이어트. 쏘리. 하며 얼른 지나가라고 손짓한다. 우리 동네 유일한 외국인. 짖으면 항상 움찔하면서도 오빠와 나는 D의 집 앞을 지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뒷걸음질하며 강아지 귀엽지.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었다. 항상 세 마리가 동시에 짖었는데 각각 다른 소리로 짖었기 그 때문에 구별할 수 있었다. 컹컹 짖는 개는 덩치가 컸다. 캥캥 짖는 개는 작았고 눈이 까맸다. 가르르깡 짖는 개는 가장 귀여웠는데 털이 하얬다. 어느 날 컹컹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들리지 않았다. D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영어를 잘 몰랐던 우리는 난감했다. 오빠는 집에 있던 영어 사전을 찾아보며 노트에 뭘 자꾸 적었다. 학교에 다녀온 어느 날 책가방을 던지고 가자. 하더니 노트를 챙겨 빠른 걸음으로 D의 집 앞으로 갔다. 오빠가 초인종을 눌렀다. 곧이어 D가 나왔다. 하이. 헬로마담. 마담은 또 뭐람. 나는 옆에서 웃음을 참았다. 웨엘.... 도그.... 컹컹..... 며칠 동안 사전에서 찾은 단어로 천천히 발음한다. 나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D는 알아들은 것 같았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집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다 쭈뼛대며 들어갔다. 집안은 어두웠다. 방이 두 개가 있었는데 방 하나의 문은 닫혀있었다. 다른 방문은 열려있었는데 그곳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오빠더러 앞장서라고 손으로 쿡쿡 찌르며 발꿈치를 들고 따라갔다. 방안은 환했다. 서랍장이 창문 반대편에 있었는데 높지는 않았다. 그 위에 하얀 항아리가 있었는데 항아리가 방에 있네. 신기하다. 생각했다. 그 항아리를 쓰다듬으며 히얼. 도그. 한다. 우리가 알아듣기 쉬우라고 오빠처럼 두 단어만 얘기한다. 나와 오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러니까 이 항아리는 그 컹컹 도그의 뼈가 담긴 항아리인가. 오빠 가자. 무서워. 속삭였다. 오빠는 대답하지 않고 내 손을 잡고 항아리 가까이 갔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오빠는 항아리를 한 번 쓰다듬더니. 아임쏘리. 한다. 쏘리가 미안하다는 뜻인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미안하지. 나는 빨리 이 집에서 나가고 싶은데 오빠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다. D는 계속 울고 있었고 어쩐 일인지 캥캥 짖던 개도 가르르깡 짖던 개도 오늘은 조용하다.     

작가의 이전글 금이와 붕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