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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May 01. 2024

금이와 붕이

우리가 기다렸던 

전화를 받아보니 오빠였다. 최근에 전화한 적이 없었는데 목소리만 듣고 알았다. 어색한 침묵 끝에 오빠가 한 말은 곧 군대에 간다는 말이었다. 어 그렇구나. 잘 다녀와. 응 그래. 군대 가면 전화 자주 못 할 거야. 어차피 자주 하는 사이는 아니잖아.라고 말하려다. 그렇겠네. 편지할게. 라고 말해버렸다. 성인이 된 이후로 일 년에 서너 번 만날까 말까 한 사이가 되었고 만나도 딱히 할 얘기가 없었으므로 식사만 하고 헤어지는 사이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편지라니. 그래. 그럼 주소를 남길게. 나중에 편지해라. 하더니 뚝 끊는다. 오빠는 아직도 국제전화를 할 때 동네 슈퍼에서 국제전화카드를 사서 동전으로 스크래치 하면 나오는 번호를 수첩에 적고 그 이외의 수십 개의 번호를 눌러 어렵게 전화를 건다. 지난번 처음 전화할 때 어떻게 카드를 샀고 몇 개의 번호를 눌렀는지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도 수첩을 꺼내 번호를 확인하고 어쩌면 수십 개 숫자 중 하나를 잘못 눌러 처음부터 다시 했을 수도 있는 그 전화통화에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말들 사이에 자신의 현재 상황의 변화에 관해 얘기한 것이다. 그것도 어색한 여동생에게. 전화를 끊고 다시 양송이 수프를 먹으며 생각한 것은 분명 무슨 일이 있다.라는 것이다.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닌데 나에게 전화를 걸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불안해졌다. 그렇다고 여기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곧 군대에 간다고만 했지 언제 가는지는 얘기를 안 해주었다. 내일 다시 전화를 해봐야겠다. 처음으로 인간적인 걱정이 들었다. 

     

오빠와 나는 1분 차이 쌍둥이다. 1분 먼저 태어난 오빠는 나와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다. 1분 차이로 동생이 된 나는 같은 나이지만 동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은 지금까지도 불만이다. 엄마와 아빠는 늦은 나이에 결혼해 아이를 가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고 했다. 두 분 다 성당을 다니셨지만, 절에 가서 백일기도도 드리셨다고 한다. 아는 스님의 추천으로 많은 돈을 내고 천도재도 지냈다고 했다. 번번이 실패한 임신에 엄마는 말라갔고 딱 한 번 시험관을 해보기로 하고 용하다는 병원을 찾아갔다. 수치스러운 검사들과 여러 번의 주삿바늘이 오갔다. 지칠 대로 지친 엄마와 아빠는 두 번은 하지 말자고 약속하며 임신 확인을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 정체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 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와 창문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날아갔다고 했다. 엄마는 불안했던 마음이 잠자리를 보고 조금은 편안해졌다고 했다. 평소에 잠자리를 좋아하거나 특별한 애정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한참을 앉아 있다가 간 것을 보면 차창 유리에 붙어있는 햇빛 가림막이 나뭇가지인 줄 알았던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지만, 엄마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병원에 겨우 도착해 드디어 임신이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라는 얘기를 듣고 두 분 다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그리고 쌍둥이입니다.라는 얘기를 듣고 또 한 번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나와 오빠의 아기 시절은 정말 고통 그 자체였다고 지금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그렇게 원했던 아기들인데 한꺼번에 두 명을 돌보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엄마는 외동딸이고 사촌도 없었다. 아빠 역시 외동아들이었고 친척이 많이 없는 집에서 조용히 자라셨다. 수백 번의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지. 엄마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해서 김치가 맛있네. 같은 얘기처럼 들렸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오빠는 나보다 키도 빨리 크고 걷는 것도 빨리 걸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성장이 더디고 행동도 느렸으며 엄마.라는 말도 2살이 다 되어서야 겨우 했을 정도라고 해서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오빠는 걱정이 없었어. 주면 주는 대로 잘 먹고 잘 자고. 글자도 혼자서 깨우쳤잖니. 지겨운 레퍼토리다. 너는 잘 먹지도 않고 잠도 안 자고 말도 안 하니 정말 걱정이었지.라고 말하는데 엄마의 죽음의 문턱이 나였구나 싶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구나. 탓할 사람과 환경이 있어 다행이었다.     


아빠는 어느 날 어항과 어항 속을 꾸밀 돌과 가짜식물들이 들어있는 패키지를 같이 사 오셨다. 엄마는 할 일이 하나 더 추가되어 표정 없는 얼굴로 좀 크네요. 했다. 우리는 티브이에서만 보던 어항이 집에 그것도 방에 설치되는 것에 흥분하여 물을 떠 온다, 돌을 넣는다 분주했다. 그런데 정작 금붕어가 없었다. 내일이 주말이니 함께 나가서 금붕어를 사 오자. 아빠의 말을 믿고 평소보다 일찍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빠가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오빠와 나는 엄마에게 울먹이며 아빠는 어디 있느냐고 했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부장님 알지? 전화받고는 나가셨어. 그럼 우리 금붕어는? 엄마랑 같이 가자. 다른 곳을 보며 엄마가 대답했다. 평소보다 빠르게 아침을 먹고 세수와 치카를 번개같이 해치웠다. 옷도 빠르게 갈아입어 엄마를 당황하게 했다. 학교 다닐 때도 이러면 좋으련만……. 혼잣말인데 들렸다. 못 들은 척을 하고 신발까지 신고 현관에 서 있던 우리는 엄마 우리 먼저 가고 있을게. 하고 하며 뛰어나갔다. 시내에 있는 금붕어 가게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엄마와 따로 앉아 엄마의 뒤통수만 보였는데 들뜬 우리와 달리 엄마는 뒤통수마저 조금 슬퍼 보였다. 어린 나이에도 뒤통수가 슬프구나. 느껴졌다. 금붕어는 생각보다 종류가 많았다. 딱 두 마리만이야. 엄마의 단호한 말에 한참을 고민하다 오빠랑 내가 좋아하는 두 마리를 골랐다. 주인아저씨가 물과 함께 투명한 비닐에 두 마리 금붕어를 넣어주시면서 환경이 바뀌면 죽을 수도 있다. 잘 키워라. 하셨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흘려들었고 잘 키워야지 다짐만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조심조심 들고 왔는데 집 앞에서 그만 비닐봉지를 놓치고 말았다. 엄마는 허둥대며 물과 바가지를 가져오셨고 우리는 길에서 팔딱대는 금붕어 두 마리를 손으로 잡아 바가지 안으로 넣고 허겁지겁 어항에 그 둘을 넣었다. 긴박했던 10분이었다. 먹이를 솔솔 뿌려주고 지느러미를 흔들며 나아가는 금붕어는 반짝이고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보았던 생명체 중에서 가장 귀엽고 예뻤다. 엄마도 어항 벽을 톡톡 치며 살짝 웃었다. 점심을 먹지 않아도 배불렀다. 아빠는 곧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어항 속 금붕어를 보며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금붕어가 우리 가족의 웃음을 되찾아주었다. 오빠와 나는 금붕어에게 금이 붕이 라는 단순한 이름 붙여주며 까르르 웃었다. 다음 날 아침 금이 붕이가 물 위로 떠 오르기 전까지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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