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길
시내에서 버스를 오랫동안 타고 들어가야 하는 마을이었다. 버스는 하루에 한 번만 운행하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시내로 나올 일은 많이 없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버스를 타고 나왔다. 나와서 장도 보고 과자도 사 먹었다. 좋아하는 과자를 파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는데 자나 가다가도 그 맛이 생각이 났다.
버스 기사님은 우리 얼굴을 다 알았다. 탈 때마다 어디 가니.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매번 대답은 같았지만, 인사 겸 말을 걸어주시니 좋았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시원했다. 자리는 항상 뒷자리다. 앞쪽에는 어르신들이 앉아야 하니 버스를 타면 꼭 뒤에 앉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도 꼭 내 옆에 앉는다. 엄마도 어르신이니 앞쪽에 앉으라고 해도 빙그레 웃으실 뿐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 창가 자리에 앉아 창문 밖으로만 시선을 둔다. 처음 혼자 버스를 타고 약국에 가던 날 엄마는 걱정이 많으셨다. 거스름돈을 꼭 받으라든지 아는 어르신을 만나면 꼭 인사를 하라든지 타고 내릴 기사님께 인사를 하라든지 그런 것들 말이다. 감기에 걸려 자신은 함께 갈 수 없고 약국 가서 약을 지어와 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걱정이 한아름이다. 엄마 나 열 살이야. 그 정도는 다 안다고. 걱정하지 마. 큰소리는 쳤지만 떨리기도 했다. 엄마 없이 처음 타보는 버스였으니까.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도 연습했다. 돈 통에 돈을 넣고 거스름돈을 받고 뒷자리에 가서 여섯 정거장째에 내리면서 기사님께 인사를 한다. 이 동작들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해 본다. 실수할 구석이 없어 보였지만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선 엄마의 걱정이 더 크다. 아빠의 사고로 엄마는 운전할 수 없었고 밤에는 수면제 없이 잠을 못 잔다. 사탕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게 수면제인 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약이 무엇인지도. 나도 아빠가 보고 싶지만, 엄마 앞에선 씩씩해야만 했다.
그 아이도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갔다. 사고 난 난 곳은 단 한 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는 곳이었다. 동네의 좁은 2차선 도로였고 차들도 별로 없는 곳이었다. 속도를 내려야 낼 수 없는 곳이었다. 건널목에 신호등이 없었던 것은 그만큼 건너는 사람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시골의 좁은 도로들은 대개 신호등이 없었다. 그런데 그 길에서 사고가 나서 병원으로 가기 전에 숨을 거뒀다. 아이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가는 길이었는데 강아지는 그 길로 도망가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어디서 떠돌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빠도 매우 슬퍼했다. 자동차 사고가 난 적이 있었는데 조금만 부딪혔을 뿐인데도 한 달을 병원을 다녀야 했다며 진심으로 가슴 아파했다. 그런데 아빠도 그 자리에서 사고가 났다.
약국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여섯 정거장을 엄마랑 갈 때는 멀다고 느껴지지 않았는데 막상 혼자 가려니 멀게만 느껴졌다. 읽을 간판도 없었고 그저 흙길이었다. 버스 운전사 아저씨가 나를 살펴보는 것이 느껴졌다. 잘 앉아 있는지. 아빠 친구라고 했는데 집에 놀러 오신 적이 없었다. 서먹했다. 내릴 차례가 된 것 같다. 아저씨가 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나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내렸다. 약국까지는 멀지 않았다. 이제 약을 사서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엄마가 전화를 해두었다고 했으니 받아가기만 하면 되겠지.
약국에 들어서자 쓴 냄새가 났다.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하니 약사님이 아는 체를 해 주신다. 전화받았다. 여기 이걸 가져가면 된다. 계산은 나중에 해 주신다고 했으니 걱정 안 해도 되고. 이거 마실래? 요구르트였다. 감사합니다. 의자는 좁았다. 손님은 없었고 나는 괜히 눈치가 보였다.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는 어른들의 눈빛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가엽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데 그런 눈빛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땅을 보거나 먼산을 보거나 하는데 그러면 더 애처로워 보일 것도 같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다. 엄마는 엊그제부터 잠을 자지 못해 굉장히 힘들어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약을 빨리 전해줘야 한다. 버스를 기다리고 또다시 긴 여섯 정거장을 타고 가면 한 시간은 더 걸릴 것이지만 빨리 출발하는 게 여러모로 좋았다. 잘 마셨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약국문을 밀자 딸랑 소리가 났다. 이제 또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다른 기사님이 계실 것이고 거꾸로 가는 길은 아까와 노선이 다르다. 정신을 차리자.
돌아가는 길도 별다른 풍경은 없었다. 흙길이었고 산길이었다. 약봉지를 꼭 쥐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긴장을 해서 그런 것인지 땀이 났다. 엄마는 지금 의자에 앉아계실까. 엄마는 집에 있는 날이면 대부분 시간을 식탁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곳에서 딱히 하는 일은 없었다. 어느 날은 마늘을 다듬기도 하고 어느 날은 무언가를 쓰느라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실 때도 있고 어느 날은 두꺼운 책을 천천히 읽을 때도 있다. 엄마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내가 어릴 때 엄마.라는 단어를 굉장히 늦게 말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모두 문장을 얘기할 때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엄마는 혹시 내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했다고 한다. 명절이 되어 할머니가 오시는 날에는 엄마는 더욱 긴장했다. 우리 집안에 이렇게 말을 늦게 하는 아이는 없었는데. 이 한마디는 엄마의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못 하는 것인데 엄마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 바탕에는 엄마의 말수가 적다는 것이 깔려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아이가 있다고 해서, 그 아이의 말을 트이게 하려고 일부러 말을 많이 하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들리기만 한다면 말은 언제든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엄마.라고 말을 한 이후에도 한동안 말수가 적은 아이였고 엄마.라고 말을 한 이후에는 엄마의 걱정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