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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Aug 17. 2024

이모와 복싱

글러브를 다시 끼고. 

멀리 사는 이모에게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지하철로 갈아타야 했다. 이모의 엄마와 엄마의 엄마가 달랐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가 두 명이라는 것인가. 엄마가 두 명일 수도 있구나. 이모를 만난 것도 작년이었다. 나에게 이모가 있다는 것도 몰랐었다. 어느 날 엄마가 이모를 만나러 간다기에 엄마 친구인 H 이모를 만나러 간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너희들 진짜 이모.라고 했다. 나도 진짜 이모가 있었구나. 왜 말을 안 했냐고 했더니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모가 좀 아프다고 해서 만나러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어릴 땐 친했는데 지금은 서먹하다고 했다. 나도 그런 친구가 한 명 있다. 어릴 땐 매일 놀아도 헤어짐이 아쉽고 오늘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는데 내일이라는 게 왜 있을까. 생각할 만한 친구. 지금은 이사 가서 자주 못 만나서 엄마와 이모처럼 서먹해졌다. 그런 서먹함을 얘기하는 것일까. 그 이모를 나 혼자 만나러 갔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 일은 처음에는 어려웠다. 버스가 오기 전에 돈을 준비해 두었다가 빠르게 통에 넣고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넘어지기에 십상이다. 키가 작고 허약했던 나는 기다란 손잡이를 꼭 잡고 다리를 조금 벌리고 서 있어야 한다. 자리가 있으면 땅에 다리가 닿지 않아도 앉아야 한다. 버스에서 한번 크게 넘어진 뒤로는 긴장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역까지는 조금 걸었어야 했는데 혼자서 버스를 타고 내렸다는 것이 기뻐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뛰듯이 걷는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지하철에서 내리면 이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모를 만난 적이 없어 걱정되었다. 지하철은 한참을 지하로만 달리다가 지상으로 올라왔는데 창밖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동네에는 높은 빌딩이 없는데 강 건너에는 몇 층인지 셀 수 없을 만큼 큰 건물과 레고처럼 생긴 배도 강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모는 어떻게 생겼을까. 엄마와 닮았을까. 그렇다면 나와도 비슷하겠네. 생각하다가 내려 1번 출구로 나갔다. 한눈에 알아봤다. 나의 이모. 엄마와 비슷하지도 나와 닮지도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나의 이모라는 사실을. 이모는 큰 키에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고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어른이 야구모자를 쓴 것을 처음 봤다. 이모가 아프다고 했는데 전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 작은 언니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날 큰언니에게서 나던 냄새가 났다. 언니는 어른들이 마시다 남은 소주를 많이 마셨다. 이모에게서 그 냄새가 났다. 아직 환한 대낮이었다.      


이모네 집으로 가자고 했다. 걷는 동안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이모네 집은 아파트였는데 복도식이라 한 복도에 여러 집에 있었다. 1층 제일 끝 집에 이모네 집이었다. 이모네 집에는 앵무새가 있었다. 깃털이 연두색과 노란색이 섞인 작은 앵무새였다. 보통은 새장에 있는데 내가 하도 신기하게 쳐다보니 새장 문을 열어 주었다. 팔 위에 올라오라고 하면 오는데 네 팔 위에 한번 보라 앉아보라고 할까? 앵무새 이름이 보라인가 보다. 보라색은 눈 씻고 봐도 없는데 왜 이름이 보라인지 모르겠다. 보라야 하고 부르면 온다고 했다. 보라야. 작게 불러 보았다. 날개를 몇 번 움직여 내 팔 위로 앉았는데 따스했다. 새의 발이 이렇게나 따듯한지 몰랐다. 내 팔을 감싸 안은 새의 발이 아주 작고 가느다랬다. 그런데 너무 따뜻했다. 마치 누군가의 손을 잡을 것처럼. 그렇게 앵무새와 교감을 나누는 사이 나는 이모 집을 방문했다는 그것조차 잊을 뻔했다. 날아다니다가 밖으로 날아갈 수 있어서 이제 새장 안으로 넣어 놓자고 했는데 새장 안으로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새장 안으로 들어가면 날개를 펼칠 수가 없어서 불편해한다고 했는데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렵게 새장 안으로 들어간 보라를 보다가 이모가 이것 좀 마셔보라고 해서 마셔보니 미숫가루였다. 미숫가루에 꿀을 많이 넣어 달콤했다. 어릴 때 엄마가 해주던 맛 그대로였다. 얼음을 넣지 않아도 시원하고 든든했다. 미숫가루를 거의 다 먹어 갈 즈음 이모가 병원에 갔었는데 두 달 후면 죽을 수도 있대. 안에 큰 덩어리가 있는데 그걸 없앨 방법이 신통치 않은가 봐. 항암치료를 하라고 하는데 그건 하고 싶지 않더라고. 왜요. 항암치료를 한 이후의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고 했어. 그 말을 너무 많이 들었고 의사 선생님도 힘든 싸움이 될 거라고 했어. 난 평화롭게 죽고 싶어…. 내가 생각하는 평화란 조화로움이야. 하모니. 이모 성당 다니는 거 알지? 응 엄마가 한번 말씀해 주신 것 같아요. 세실리아라고…. 맞아. 이모가 합창단을 하거든. 일요일에 미사가 끝나고 연습이 있어. 그때 노래를 하면 정말 평화롭다. 그래요? 응. 파트별로 다른 음을 내는 것 같은데 들어보면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잖아. 미사를 보거나 말씀을 들을 때 보다 연습하면서 음을 맞춰보고 음악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느낄 때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어. 이모는 항암치료를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계속 합창단 연습을 하면서 지내고 싶어. 어린 내가 이해하기엔 어려운 결정이었다. 미숫가루의 뭉쳐진 가루가 자꾸만 목에 걸리는 것 같았다 이모. 나 한 잔만 더 주세요. 너무 맛있어요. 그렇지. 자. 더 마셔. 오늘 자고 갈래?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이모와 같은 방에서 하룻밤 자고 싶었다. 네. 저 이모랑 같이 자고 내일 갈래요.     


엄마에게는 남동생이 한 명 있었다. 엄마와 같은 엄마를 가진 남동생이었다. 나의 유일한 외삼촌이시기도 한 엄마의 남동생. 사실 엄마는 위로 오빠가 세명이나 있었다. 모두 돌아가셨지만. 그리고 언니도 두 분이나 계셨다고 한다. 역시 모두 돌아가시고 남은 형제는 엄마와 엄마의 남동생뿐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이모와 연락이 닿아 이제 세 명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모가 많이 아프시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다. 엄마의 남동생 나의 외삼촌은 이모를 만나기 싫다고 했다. 이제 와서 형제처럼 구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했다. 외삼촌과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이모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어 한다고 엄마가 속상하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외삼촌 마음을 이해한다고도 했다. 아직 엄마도 엄마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모를 친동생처럼 여겨지지는 않지만 자신과 닮은 부분이 있는 유일한 자매인 이모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얼마 전까지 유일한 혈육이었던 외삼촌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누군가를 미워하기에는 심성이 너무 착하고 여렸다. 그저 모두와의 관계가 두루두루 편안하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엄마처럼 자식들에게도 무언가를 요구한 적이 없다. 그저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아.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있어. 모든 책임은 너에게 있다는 것 말이야. 그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아주 어린 나이에도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살 때도 이렇게 얘기하셨고 뒷산에 혼자 올라가 보고 싶다고 했을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걱정도 안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은 모든 것을 허락하셨고 냉정하리만큼 아무것도 도와주시지 않았다. 내가 모든 것에 진심을 다해서 열심히 일하고 과정도 결과도 완벽할 만한 성과를 내는 데는 어린 시절 이와 같은 훈련이 잘 되어서라고 생각한다. 외삼촌은 세탁소를 하셨는데 동네에서 아주 유명했다. 그 당시 세탁소에서는 수선도 함께 했었는데 외삼촌의 수선 실력은 옆동네에서도 알아주는 솜씨였다고 한다. 엄마도 치마단이 풀려 마침 놀러 온 외삼촌에게 수선해 달라고 했다가 놀라운 집중력과 정교한 손놀림에 반해 박수를 쳤다고 했다. 동생이지만 대견하고 눈물이 날 정도 훌륭한 솜씨였다고 그날 저녁 세 번 이상 말씀해 주셨다. 외삼촌이 어느 날 참외를 사들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나는 낮잠을 자고 있었고 엄마는 빨래를 개고 있었다. 외삼촌은 참외를 바닥에 놓았는데 한 개가 데구루루 굴러 나와 내 허벅지에 닿았다. 나는 살며시 눈을 뜨고 잠이 깼다. 안녕하세요. 그래 자고 있었구나. 참외 먹을래. 네. 외삼촌은 참외도 잘 깎았다. 엄마보다 더 예쁘게. 나. J 만나러 가려고. 참외를 입으로 가져가려던 엄마가 흠칫 놀라며 참외를 다시 내려놓았다. 갑자기 왜. 어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한 번은 만나봐야 하지 않나. 하는. 아프다며. 가봐야지. 너 싫어했잖아. 말도 못 꺼내게 하더니. 그러게 나도 늙었나 봐. 내일 가려고 하는데 누나 나랑 같이 가자.     

이모는 아프기 전까지 복싱했다고 했다. 내가 아는 복싱선수라곤 무하마드 알리밖에 없다. 그마저도 직접 경기를 본 것은 아니고 그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문장만 어디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눈이 부어 있거나 피가 흐르는 얼굴에 일그러진 그러나 행복한 웃음을 짓는 이미지. 그것이 내가 아는 복싱의 전부였다. 엄마와 외삼촌이 이모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나도 같이 갔다. 엄마는 나를 맡길 곳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는데 내가 가면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린이가 가면 일단 몇 살인지 물어보고 엄마를 닮았다는 둥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벌 수 있다. 나도 몇 번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다. 나의 쓰임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내가 아는 것만 대답하면 되고 모두가 기쁜 얼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존재하면 되었고 가끔 웃으면서 얘기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어른들이 얘기할 동안에는 가져간 책을 읽거나 엄마 수첩에 사슴벌레 따위를 그리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간다. 어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즐거운 얘기는 거의 없다는 것을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굳이 나까지 알 필요는 없는 이야기들을 두세 시간 나누면 비로소 내가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는 집에 가자. 한다. 나의 역할을 다하고 집에 오는 날은 뿌듯하다. 오늘도 그런 날 둘 중의 하나가 될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모를 만나자마자 몇 살이야. 정말 엄마랑 똑 닮았네. 여기 앉아봐. 하면서 내 얼굴을 요리조리 들여다보았다. 보통 다른 어른들이 나를 앉혀놓고 쳐다보면 어색하고 시간아 빨리 가라. 하는데 이모가 할 땐 기분이 좋았다. 이모는 나와도 닮은 것 같았다. 이모의 첫인상은 엄마가 말해준 그대로였다. 짧은 머리에 작고 하얀 얼굴. 그리고 작은 키에 마른 몸매. 내가 아는 복싱 선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나는 이모 뒤로 보이는 글러브를 가리키며 이모. 저거 글러브, 이모 거예요? 응. 이모 거야. 복싱글러브죠. 복싱이란 말도 아네. 맞아. 한번 껴볼래? 생각보다 무겁고 컸다. 손가락을 다 집어넣자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지고 방어 자세가 나왔다. 오 제법 폼이 나오는데. 여기 이모 손바닥 한 번 쳐 볼래? 하며 이모가 두 발을 동시에 뛰었는데 한 마리 나비 같았다. 훨훨.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이모의 손바닥을 살짝 쳐 보았는데 갑자기 핑. 어지러웠다. 힘 좋구나. 너. 복싱 배워볼래?      


엄마와 외삼촌은 놀란 눈치였다. 어릴 때 함께 지내왔던 이모의 모습과 복싱을 하는 이모의 모습은 매치가 잘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터 복싱을 하게 된 거야? 한 6개월 되었나. 갑자기 시작하게 된 거야? 어느 날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한 여자 복서에 관한 이야기였어. 오직 복싱만 생각하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어. 그리고 작년에 그리스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기념품 가게에서 복싱하는 두 소년의 모습이 조각된 것을 보았어. 작은 조각품이었는데 정말 정교하게 잘 만들었더라고. 표정이 살아있다고나 할까. 어루만져 주고 싶을 정도로. 저기 저 위에 있잖아. 그래서 복싱이 나에게 그냥 스며들었나 봐. 어느 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전단지를 꽂아 놓은 곳에 복싱장 광고지가 있더라고. 여태 몰랐다가 그날 눈에 들어온 거야. 바로 전화를 해봤지. 마침 아침 시간에 자리가 있다고 해서 한번 가봤는데 복싱 경기할 때 울리는 소리 알지. 땡 하는 소리. 그 소리가 들리는데 심장이 뛰더라. 나도 모르게 등록을 하고 매일 연습했어. 처음엔 줄넘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단다. 어릴 때 이후로 줄넘기를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어려운 운동인지도 몰랐지. 지금도 줄이 발에 걸려 넘어질 뻔할 때도 많아. 관장님은 그럴 수도 있다며 천천히 쉬었다 하라고 늘 말씀하시는데 아마 답답하시겠지. 줄넘기조차 하지 못하는 몸이라서. 처음엔 복싱 글러브가 왜 이렇게 크고 무거운지. 손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겠더라. 그런데 글러브를 끼자마자 그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어린 복서가 생각나더라고. 손에 무언가를 칭칭 감고 글러브를 끼면 눈빛이 돌변해서 팍팍 소리가 나도록 오른팔을 뻗었다 왼팔을 뻗었다 했거든. 그 눈빛. 그리스 인형에서도 보았던 그 눈빛. 나도 가지고 싶은 그 눈빛을 열망하며 계속 배웠던 것 같아. 지금은 몸이 아파 못하고 있잖아. 너무 슬퍼. 두 발로 뛸 수 없다는 사실이. 글러브를 다시 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니야 이모. 다시 할 수 있지. 무슨 소리야. 의학이 얼마나 발달했다고. 이모 병은 병도 아니래. 진짜야. 이모 집에 방문하고 한 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모의 존재도 모르고 있다가 생전 처음 만났는데 이모가 마치 오랜 친구 사이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렸다. 어색함을 감추려 앞에 놓인 주스를 마셨다. 그래. 너 다시 복싱하는 모습 나도 보고 싶다. 엄마도 거들었다. 외삼촌은 말이 없었다. 외삼촌은 이미 주스도 다 마셨고 이모가 얘기할 동안 바닥에 머리카락 몇 개를 주웠다 놓았다 했다. 인제 그만 가자. 외삼촌은 결심한 듯이 일어섰다. 나는 이모와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 따라 일어섰고 엄마는 이모 손을 한 번 꼭 쥐고 돌아섰다. 문밖으로 배웅을 나왔다가 이모가 들어가자 우리 셋은 손을 잡고 울음을 삼켰다. 이모가 저 위에서 볼까 봐 어깨를 들썩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이모는 이미 병색이 짙었고 이모 말처럼 다시는 글러브를 끼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우리 셋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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