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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Aug 07. 2024

큰언니와 작은언니2

뱃속의 아기

혼자 산에 올라갔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생각할 것이 있거나 생각을 없애고 싶을 때 종종 산에 간다. 조금 멀리 가면 높은 산이 있어 도전정신으로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낮은 산에 가는 것도 좋아한다. 낮은 곳이더라도 산은 산이기 때문에 멀리 보이고 작게 보인다. 땅만 보고 걷다가 잠시 고개를 들면 나무가 있고 앞만 보고 걷다가 또 고개를 돌리면 바위가 있다. 자연물이 주는 알 수 없는 에너지를 흠뻑 받고 오면 그날은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고 어지러운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한다. 작은 언니가 왔던 그 날밤의 일 때문에 마음이 산란했다. 같이 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고 언니는 이곳에 매일 왔었다고 했는데 왜 그날만 내 눈에 보였는지도 모르겠고 또 언제 올지 모르는데 매일 기다리는 것도 이상했다. 죽은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아무래도 일상적이 아닌 것 같았다. 누구에게 얘기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큰언니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언니의 일상은 또다시 무너질 것이다. 간신히 커피 두 잔으로 버티는 언니에게 매일 밤 작은 언니가 집에 온다는 얘기를 차마 할 수는 없었다. 내가 나이는 제일 어리지만 이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실제로 어깨가 아파져 올 만큼 무거웠다. 산에 가려고 신발을 신자 큰언니가 등 뒤에서 산에 가게? 한다. 응 다녀올게. 조심해. 언니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다. 커피 두 잔으로는 아무래도 안 되겠어. 어제 그렇게 얘기했는데 담배를 시작할 줄이야. 지난달 노담캠페인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그래서 어린이 홍보대사도 하고 있는데 차마 큰언니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산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 또 하나 늘었네. 하면서 걸어갔다. 처음에는 혼자 가는 내가 걱정도 안 되나. 큰언니가 야속했다. 어느 날 언니가 말했다. 사실 처음에 너 혼자 산에 간다고 했을 때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걱정이 되었어. 그래서 너 뒤따라 갔었는데 몰랐지. 진짜? 미행 천재야? 완전 몰랐는데. 혼자서 씩씩하게 잘 가더라. 그 뒤부턴 안 따라갔어. 그럼 나 혼자서 잘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 샤워도 혼자 잘하고 설거지도 잘하잖아. 그래 맞아. 언니가 너무 어리게만 생각했나 봐. 나 어리긴 하지만 많은 것을 스스로 할 수 있으니 언니도 내 걱정 너무 많이 하지 마. 언니를 안을 때 나는 냄새가 있다. 언니 살 냄새랑 비누 냄새가 섞인 아득한 냄새. 산에 오르니 바람이 시원하다.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다. 저 멀리서 바스락 소리가 나긴 했지만, 숲 속엔 나 말고도 동물들도 있을 테니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한참 걷다가 누군가 내 옆으로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 옆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사람이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동물이나 바람은 아니었다. 내 앞에 있던 나무의 나뭇가지가 조금 흔들렸다. 언닌가. 언니가 왔나. 나와 함께 이 산에.

      

빵집으로 가는 길에 도서관이 있다. 언니와 나는 도서관에 자주 갔다. 큰언니는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아 작은언니와 나만 집에 있을 때가 많았는데 오후가 되면 빵집에 갔다가 도서관에 가곤 했다. 언니는 1층 100번대에서 어슬렁거리기를 좋아했다. 나는 3층 어린이 소설 쪽에 자주 있었다. 1층 100번대에는 주역이나 철학서 등이 있었는데 언니는 그 무렵 주역에 관한 책에 빠져있었다. 주역 책에 나와 있는 말도 어려웠고 보통 주역 책은 매우 두꺼웠지만, 도서관 가는 날엔 항상 주역 책 한 권을 다 읽고 문을 닫을 때쯤 2권을 더 빌려왔다. 나는 어린이 소설을 한 권 골라 읽다가 다 읽지 못하고 빌려오곤 했다. 나는 한 권을 여러 번 읽는 것을 좋아했다. 여러 번 읽으면 처음에 보지 못했던 단어들이 다시 보일 때도 있고 나도 모르게 건너뛴 문장을 알아차리기도 한다. 결말을 알고 보면 다시 보이는 것들도 있어서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을 좋아한다. 언니는 한 번에 여러 방면의 책을 조금씩 보는 것을 좋아했다.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면 내용이 섞이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오히려 모든 것이 더 선명해진다고 했다. 나도 언니 따라서 해봤다가 뒤죽박죽이 되어 그 방법은 언니한테만 적용되는 것인가 보다 했다. 언니는 그렇게 주역 책을 읽다가 어느 날 아침을 먹다 큰언니와 내 눈을 똑바로 몇 초간 쳐다보았다. 밥 먹다가 별안간 왜 쳐다보냐며 큰언니가 웃었다. 밥에 집중하느라 언니가 쳐다보는지도 몰랐던 나도 배시시 웃었다. 사람의 눈을 보면 미래가 보인대. 언니랑 너의 눈을 보니까 딱 보여. 나 없어도 잘 살 거 같아. 밥 먹다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밥이나 먹어. 우린 셋인데 왜 둘이 잘 살아? 나는 덜컥 겁이 나 그렇게 말했는데 정작 작은 언니는 깔깔 웃으며 네 눈이 퀭해서 그런가? 눈을 봐도 안 보인다야. 우리 셋이 잘살자. 실없는 얘기를 했다. 언니는 미래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 셋 중 자신이 제일 먼저 소멸하리라는 것을. 주역을 공부하면 보이는 것일까. 그런 미래까지도.      


주인집 강아지는 맹렬하게 짖는다. 하루도 빠짐없이. 뒤편 주차장을 지나야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오는데 자전거를 항상 그곳에 두고 올라간다. 자전거 체인을 감고 일어서려는 순간 눈이 마주치면 짖는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 이렇게까지 짖을 일인가. 싶었다. 간식을 주면 그다음부턴 짖지 않을 거라는 친구의 말에 하루는 언니 몰래 간식을 샀다. 강아지 간식은 처음 사 보았는데 생각보다 비쌌다. 그날도 어김없이 으르렁하길래 얼른 간식을 꺼내주었다. 간식은 맛있게 먹었지만 내 손은 물릴 뻔했고 돌아서는 나를 향해 짖었다. 짖는 소리는 매우 높은음이라서 매번 깜짝 놀라곤 한다. 주인집 아저씨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별로 미안한 표정은 아니었다. 강아지의 표정은 항상 예민하게 구겨져 있었고 미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늘 찌푸려져 있었다. 하루는 큰언니가 언제까지 짖나 보자 하고 계속 눈싸움을 하고 앉아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짖는 것을 멈추지 않고 쪼그려 앉은 언니의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그냥 집으로 왔다고 한다. 작은 언니는 안아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사람도 그렇지 않냐고 해서 가까이 다가갔다가 괜히 엄지손가락만 물려왔다. 나는 그저 빙 돌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강아지는 왜 짖을까.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 않아 같이 짖어본 적도 있지만 통하진 않았다. 갓난아이의 울음처럼 하나의 언어겠지. 자꾸 쳐다보니까 기분이 나쁘군. 왜 내가 가는 길을 막고 지나가는가에 대한 의문. 혹은 간식을 주고 안아주려고 해서 고맙다는 인사. 할 수 있는 건 짖는 것뿐이라 모두가 움찔 놀랄 정도로 큰 소리로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인데 사람들이 오해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 쳐도 볼 때마다 짖어대는 통에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사흘이 되자 걱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렇게나 그 강아지에게 애정이 있었나 싶었다. 강아지는 아파서 입원했다고 한다. 밤새 낑낑대길래 아침에 병원에 데려갔더니 얼마 못 산다고 했다고 한다. 주인집 아저씨는 얘기하면서 손을 자꾸 비비면서 눈물을 참았다. 괜찮아지지 않을 거라고 나이도 많아서 이번 주 넘기기 힘들 거라면서 울었다. 작은언니는 그 말을 듣고 펑펑 울었다. 왜 귀여운 강아지가 자신들 중에 제일 먼저 하늘나라로 가야 하느냐고 울었다. 자신의 미래는 알지 못한 채 나를 안고 엉엉 울었다.     


어느 날 큰언니가 흑백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늘 보던 사진이 인화된 종이는 아니었다 종이가 조금 얇았고 끝이 둥글게 말려있었다. 비슷한 이미지가 두 개 연달아 있었다. 처음 보는 종이 질이었고 끝이 톱니처럼 잘려있어 신기하다 하면서 쳐다보았다. 무엇을 찍은 건지 모르게 까맣고 조금씩 하얀 부분이 있었다. 이거 뭘 찍은 것 같아? 글쎄…. 컵을 뒤집어 놓고 하늘 보고 찍은 거야? 언니가 미소를 지었다. 아니. 하지만 정말 독창적이구나. 넌. 야. 너 이것도 몰라? 아기 사진이잖아. 옆에서 시리얼만 먹던 작은 언니가 퉁명스럽게 얘기했다. 아기 얼굴이 없는데 아기 사진이라니. 작은언니도 모르는 게 있구나. 했는데 큰언니가 맞아. 했다. 다시 봐도 까만 구멍같이 동그란 이미지에 하얀 점만 찍혀있는데 언니들이 오늘 단체로 왜 이래. 싶었는데 큰언니의 쓸쓸한 얼굴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언니는 가끔 그런 얼굴을 할 때가 있다. 수건을 개다가도 라디오를 듣다가도 국에 넣을 두부를 썰다가도. 쓸쓸함이라는 뜻을 몰랐지만, 언니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지금. 그런 얼굴을 하고 있다. 맞아. 언니 배 속에 아기 있어. 진짜야? 여자야? 아직 모르지. 아직 점처럼 그런 거야. 여기 보이는 것처럼. 작은 언니는 무엇에 심통이 났는지 말없이 시리얼만 먹다가 나 간다. 하고 나갔다. 으응. 그래. 평소 같으면 옷을 똑바로 입어라. 신발은 구겨 신지 말아라. 이따가 집에 오면 손부터 씻어라. 나가는 언니 등 뒤로 무수히 많은 말들을 했을 텐데 그냥 으응 그래.라고 했다. 오늘 아침 분위기는 처음 맞아보는 이상하고 긴장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잘 알고 있다. 큰언니 팔에 꼭 안겨 볼을 비비고 신발을 신고 다녀오겠습니다. 를 크게 외친 후 하이파이브를 하면 된다. 그럼 큰언니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내 기분 따위보다 언니가 웃는 것이 중요하다. 그나저나 먼저 나간 작은언니를 붙잡으려면 전속력으로 뛰어야 한다. 언니는 달리기도 잘하지만 걸음이 빠르므로 이미 골목을 돌아서 큰길로 나갔을지도 모른다. 언니는 집 앞에 서 있었다. 뭐야. 언니 먼저 간 거 아니었어? 너 기다렸어. 왜 빨리 나갔어? 말이 없었다. 큰언니 어땠어? 웃으면서 잘 다녀오라고 하던데. 치. 걱정도 안 되나. 무슨 걱정. 언니 배 속에 아기 있다잖아. 그게 왜.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가 언니 배 속에 있다고. 처음 들어보는 문장이었다. 아기 아빠. 배속. 단어들이 떠다니고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왜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다. 가면서 설명해 줄게. 학교에 늦을까 봐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천천히 설명을 해 주었다. 학교에 다다르자 나는 엉엉 울었다. 울지 마. 우리는 지금 언니를 지켜야 해. 언니 배 속의 아이도 지켜야 해. 그러니까 넌 오늘부터 울지 마. 하면서 언니도 울었다.     


큰언니가 좀 이상했다. 방에서 부엌까지 걷는 데 오래 걸렸다. 걸음걸이도 이상했는데 발이랑 손이 같이 나간다든지 한발 떼고는 한숨을 쉰다든지 그랬다. 말수도 적어졌다. 큰언니는 우리에게 항상 말이 많았다. 난 너희들 생각하면 걱정밖에 안 된다. 면서 나한테는 건널목을 건널 때는 좌우를 살펴야 한다고 했고 손을 들고 건너라고도 했다. 언니. 요즘 아무도 손들고 길 안 건너.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아무도 들지 않더라도 너는 들고 건너라는 것이었다. 나는 키가 작기 때문에 운전하는 사람들은 내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우리 반에서 그렇게 작은 편에 속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언니 눈엔 넌 작으니까 손을 들어야 그나마 안전하다고 했다. 억울했지만 언니 말을 들어야 한다. 지난번에 맑은 날에 무거운 우산을 들고 가라고 해서 심통을 부렸지만 우리 반에서 나만 우산을 가져와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 적이 있었다. 언니말을 그때부터 잘 듣기로 다짐했다. 작은언니에게는 운동화를 구겨 신지 말라고 했다. 요즘 운동화를 구겨 신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구겨 신으면 멋이 나지 않는다고 언니 나이 또래의 취약점인 멋을 강조해도 언니는 항상 운동화를 신으면 뒤축을 구겨 신었다. 차라리 슬리퍼를 신으면 언니에게 잔소리를 듣지 않을 텐데 슬리퍼는 신지 않았다. 우리는 큰언니가 한숨 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명심했지만, 항상 언니 성에 차지 않았고 매일 아침 언니의 한숨을 뒤로하고 등교를 했다. 그래도 우리가 현관문을 밀고 나갈 때는 항상 등을 두드리며 잘 다녀와. 이따 만나. 했다. 그 말이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하루 종일 마음 놓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따 언니를 또 만나면 되니까. 하루는 아침밥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언니는 커피만 마시는 날이 있어도 아무것도 먹지 않는 날은 없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희미하게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작은언니는 그래. 그럼 좀 누워있어.라고 했다. 언니는 알고 있었다. 큰언니 배 속에 있던 아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언니 혼자 병원에 다녔왔는데 그날은 작은언니에게 같이 가자고 했었다. 새끼손가락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다녔는데 그것도 지우고 갔다. 언니 어제 발랐는데 왜 지워? 지우고 와야 한 대. 수술하려면. 무슨 수술? 금방 끝나는 수술이야.라고 했지만, 손이 떨리고 있었다. 큰언니는 이틀을 누워 지냈다. 땀을 흘리면서 울면서 누워만 있다가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우리에게 우산을 하나씩 들려주었다. 잘 다녀와. 이따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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