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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Aug 06. 2024

큰언니와 작은언니

창틀로 온 언니

샷시집 아저씨는 매년 12월이 되면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한탄한다고 했다. 내가 내년에는 결혼할 수 있을까. 올해도 이렇게 가네. 샷시집 아저씨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공장과 함께 겸하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좁은 아파트에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술이 늘었다고 했다. 매일 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들 수 없었고 한 잔은 두 잔, 두 잔은 석 잔, 어느새 한 병이 훌쩍 넘어 버렸고 샷시일이 밀려 새벽에 들어오는 날에도 한 병을 비우지 않고선 잠을 잘 수 없었다. 그즈음 그 버릇도 생겼다. 술 한 병이 비어갈 때쯤 차가운 물로 머리를 감은 다음 물이 뚝뚝 흐르는 채로 노래를 한 곡 부른다. 노래는 언제나 Basket case. 이 노래를 언제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영어도 잘하지 못하는 아저씨가 꼭 이 노래를 부른다. 고음에다 가사가 끊이지 않고 계속 나오는 데도 젖은 머리로 이 노래를 끝까지 부른다. Do you have the time으로 시작해서 Or am I just STONED로 끝날 때까지 계속 부른다. 어머니가 잠에서 깨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도 이 버릇이 10번 이상 계속되자 잠에서 깨지 않게 되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이사 오게 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이 노래를 끝까지 부르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어버리는 샷시집 아저씨는 다음날이 되면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어머니가 수박 주스를 건네주면 숨도 쉬지 않고 꿀꺽꿀꺽 마시고는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출근을 한다. 어느 날 친구가 너 이 분 한 번 만나볼래. 보여준 사진에는 눈이 크고 머리가 까맣고 얼굴이 조금 어두운 여자분이 있었다. 누군데. 너 저기 시내에 식당 알지. 거기 일하시는 분이야. 너도 가봤잖아. 전에 나랑. 아 거기. 쌀국수가 맛있는 집이 생겼다고 같이 갔었다. 국수가 국수지. 하고 따라 나셨다가 기막힌 국물맛에 면 추가까지 해서 먹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분은 기억에 없다. 아마도 주방에 있었나. 난 기억이 안 나는데. 이분은 네가 기억난다고 하던데. 하면서 씨익 웃어 보인다. 참나. 뭐. 한번 만나봐라 왜.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것이 간지러운데 기분이 좋았다. 그래 볼까. 너 연락처 아는 거야? 지금 거기 한번 가보자. 식당. 나 배불러. 또 먹을 수 있잖아. 가자. 억지로 끌려가는 척했지만 나를 기억한다는 검은 머리의 눈이 큰 여자분이 몹시 궁금했다. 쌀국수는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었다. 저희 쌀국수 두 그릇 주세요. 하나는 면 추가요. 식당을 둘러보아도 사진 속 그 여자분은 보이지 않았다. 그만 찾아. 곧 나오시겠지. 친구가 핀잔을 주든 말든 계속 두리번거렸다. 야. 저기 오신다. 친구가 갑자기 몸은 낮추고 목소리까지 낮춰 얘기해 준다. 고개를 돌리다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귀 끝이 빨개져 왔다. 보이지 않았지만 내 귀가 빨개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서 오세요. 쌀국수 먹으러 오셨나요. 어눌하지만 정확한 한국어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네. 근데 저 혹시 아시나요? 네. 샷시집. 어? 어떻게 아시죠. 지난번에 갔었어요. 샷시하러. 아. 갑자기 예전 기억이 촤르르 떠올랐다. 그래 맞아. 검은 머리의 눈이 크고 겁이 많아 보이는 여성분이 샷시 집에 왔었지. 샷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다 결국은 다시 온다는 말을 하고 나가는데 치마 끝이 문틈에 걸려서 내가 빼줬는데. 기억이 이제야 나네요. 그때 그 치마. 네. 치마가 끼었어요. 제가 긴치마 좋아해요. 친구는 어느 틈에 막걸리를 한 잔 시켜놓고는 씨익씨익 웃다가 막걸리를 마시다가 하고 있었다. 네. 긴치마 예뻐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굳이 하고선 야. 너만 마시냐. 나도 한 잔 줘. 괜히 큰소리를 쳐보았다. 그럼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꾸벅 인사를 하고 주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친구가 또 허벅지를 쿡 찌르며 따라가 봐. 되써. 전화번호라도 물어봐. 마시기나 해. 정말 물어볼까. 쌀국수를 먹는 내내 막걸리를 마시는 내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전화번호를 물어볼 것인가. 한 번도 누군가에게 번호를 물어본 적이 없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를 이상한 아저씨라고 생각하면 어찌지부터 시작해서 이쁘다. 까지 종잡을 수 없는 생각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돌아다녀 쌀국수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맛있어서 면 추가까지 해놓고는 반 그릇도 먹지 못했다.  

   

바닷가의 작은 마을이 고향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작은 슈퍼를 운영했는데 벌이가 시원찮았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객이 잘 오지 않는 워낙에 작은 마을인 데다가 내비게이션을 켜고도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외딴곳에 있었다. 이런 곳에 슈퍼를 하다니 그녀의 부모님도 사업수완이 없었다. 가져오는 물건도 팔리지 않을 만한 것들이었다. 간장 같은 것은 큰걸 사다 놓으면 한동안 사지 않을 물건인데 큰 사이즈 간장을 두 박스나 사 온다든가 했다. 그녀가 아무리 얘기해도 간장은 항상 두 박스씩 사 오셔서 한 박스는 반품했다. 그중에 또 왜 사 오는지 알 수 없는 물건이 있었는데 바로 콜라였다. 누구도 사 가지  않았지만 옆집 꼬마가 콜라를 좋아했다. 할머니는 콜라가 들어오는 날은 슈퍼 앞을 지키고 있다가 한 캔씩 사가시곤 했다. 나도 마셔보지 못한 콜라를 이 꼬마는 2주에 한 번씩은 꼭 마셔보는 것이다. 이 마을의 누구도 이 꼬마만큼 콜라를 마셔보지 않았을 것이다. 한 모금도 누구에게도 내어주지 않고 끝까지 마시고선 트림을 하는 것이 이 꼬마의 습관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 얘기를 하면서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양팔을 꼭 안는 포즈를 하며 너무 사랑스러워 매번 이렇게 안아준다고 했다. 무언가를 마시고 트림하는 게 사랑받을 일인가. 싶었고 나도 트림을 하고 안겨보고 싶었지만 콜라를 함부로 마셔볼 수 없었다. 엄마 몰래 딱 한 번 껌을 씹어본 적은 있다. 질겅거리며 단물이 빠져나오는 껌은 씹어도 씹어도 그대로였다. 단물이 다 빠지고 딱딱해졌을 때쯤엔 이걸 삼켜야 할지 버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지만 질긴 걸 삼킬 수는 없어서 종이에 싸서 버렸다. 그런데 콜라는 너무 눈에 띌 것 같아서 몰래 마셔볼 수 없었다. 그녀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편의점에 가득한 콜라를 보고 놀랐다. 직원이 다른 박스룰 가져와서 채워놓을 때도 놀랐다. 많은 양의 콜라가 소비된다는 사실이 놀랍고 슬펐다. 바닷가 작은 마을의 아무도 사 가지 않는 그 콜라가 생각이 나서였을 것이다. 그 꼬마도 뭍으로 나간 이후에는 아무도 콜라를 사 가지 않아 엄마도 콜라를 들여오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딱 하루 남은 콜라를 엄마가 내밀었을 땐 겁이 났다. 어떤 액체일까. 어떤 맛일까. 캔 뚜껑은 따 본 적이 있어 쉽게 땄지만, 선뜻 입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검은색의 방울이 맺힌 것이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냄새는 달콤했다. 사탕수수 향이 났다. 한 모금. 목이 따가웠지만 시원했다. 곧이어 트림이 나왔다. 그 꼬마는 다 마시고 나왔다고 하는데 나는 벌써 나왔다.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녀에겐 언니가 두 명 있었다. 한 살 터울인 언니와 가장 친했다. 학교의 그 어떤 친구보다 친했고 1학년 때 잠옷 바지 위에 반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던 것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언니밖에 없었다. 10살 터울이 나는 언니는 엄마 같았다. 늘 아침밥을 차려주었고 양말을 신겨주었다. 중학교에 가기 전까지 언니는 항상 아침에 내 발에 양말을 신겨주었다. 항상 차 조심하고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 너는 사탕을 좋아해서 언니가 걱정이 많아. 누가 사탕을 준다고 해도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고. 언니 나도 이제 그 정도는 알아. 그럼 언니는 씩 웃으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알지. 걱정돼서. 이제 학교 가자. 작은 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앞서 걷는 큰 언니를 따라갔다. 학교에서 언니를 마주치는 일은 많이 없었지만 만나는 날이면 꼭 안아주고 뽀뽀를 해줘야 나를 놓아주었다. 친구들도 부러워할 만큼의 우애였다. 내가 6학년이 되어 이제 양말은 혼자 신는다고 큰언니에게 말했을 때 작은언니는 중학교에 간다고 신났었고 나는 언니의 교복 입은 모습을 사진 찍어주며 부러워했다. 입학식이 끝나고 언니는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사 먹겠다고 시내로 간다고 했다. 이 작은 마을에 시내라곤 없었지만 어쨌든 은행이 있고 우체국이 있는 곳을 시내라고 불렀다. 그곳에 맛있는 것을 파는 데라곤 작은 꼬칫집밖에 없는데 아마 거기에 간다는 것일 거다. 꼬치의 맛이야 나도 익히 알고 있지만,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만나서 함께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가서 꼬치를 먹고 온다는 언니의 말이 미래에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한다는 말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매일 붙어 다니던 언니가 이젠 조금 멀리 떨어져 걸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니 잘 다녀와. 그래. 내가 특별히 니 건 사 올게. 하면서 나를 안아주며 볼에 뽀뽀하고 교복 치마를 나풀거리며 뛰어나갔다. 그때 한 번 더 언니 볼에 뽀뽀할걸. 그날 이후로 언니를 만나지 못했다.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은 것은 나였다. 슬리퍼를 신고 달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차가운 언니의 손에 꼬치가 한 개 들려있었다고 한다. 어찌나 꽉 쥐고 있었던지 손에서 그 꼬치를 빼내는 것이 아주 어려웠다고 했다. 바닷가에서 굴을 열어 살을 빼내는 일을 하고 있던 큰언니는 앞치마를 입은 채로, 장화를 신은 채로 달려왔다. 손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있어서 작은언니를 만져 볼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이 눈물도 나지 않는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았다. 그리고는 그제야 우리 둘이 끌어안고 울었다. 소리 나지 않는 울음이었다. 작은언니가 놀라지 않도록 우리는 숨죽여 울었다.  

    

언니가 찾아온 것은 한 달 후였다. 어느 날 밤 창문을 열어두고 잠을 자다가 으슬으슬한 기분이 들어 창문을 닫으려고 일어났다가 언니를 만났다. 언니. 자고 있었네. 응 언니. 왜 거기 앉아 있어. 내려와. 언니는 창틀에 위태롭게 앉아 있었다. 어떻게 있을지 몰라서 여기 있었어. 나도 이런 적이 처음이라. 이런 몸과 이런 마음이. 언니 여기 이불 위에 앉아. 아직 밤은 추워. 나는 괜찮아. 교복이 아직 새것 같았다. 하긴 하루밖에 입지 않았으니 아직 블라우스의 끝이 빳빳했다. 이름표가 오바로크 되어 있는 곳은 실밥만 남아 있었다. 언니 이름표가 떨어졌네. 그때 떨어진 것을 찾지 못했어. 그래도 괜찮아. 내 이름은 기억하고 있어. 사실 나도 혼란스러웠다. 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이렇게 온전한 형태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꿈에서 만나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언니 미숫가루 줄까. 그거 좋아했잖아. 그래 좋아. 꿀은 많이. 알았어. 미숫가루 통을 꺼내러 부엌에 가는 데 큰 언니 방문이 열렸다. 왜 안 자고. 응 목이 말라서. 나는 작은 언니가 찾아왔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언니가 알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자다가 목이 말라 나왔다고 둘러댔다. 언니는 미숫가루를 좋아했다. 숟가락으로 세 번 컵에 넣고 꿀을 넣고 두유를 부어 섞어 주면 한 번에 세잔도 마실 수 있다. 집에 미숫가루가 떨어지는 날은 없었다. 어제 언니 생각이 나서 학교에서 오는 길에 미숫가루를 사 왔는데 언니에게 미숫가루를 타 줄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았지만 한 편 기뻤다. 누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도 좋은 일인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미숫가루를 한참 젓다가 그런데 마실 수는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설날에 차례를 지내고도 음식을 먹는 사람은 우리였는데 언니는 과연 이 미숫가루를 마실 수 있을까. 예의상 마신다고 했던 걸까. 정말 마실 수 있는 걸까. 언니는 정말 맛있게 미숫가루를 끝까지 다 마셨다. 숟가락을 달라고 해 컵의 바닥에 붙어있던 가루도 다 떼어내 마셨다. 정말 마시고 싶었어. 꿀이 들어간 미숫가루. 정말 그리운 맛이야. 언니가 눈물을 흘렸다. 미숫가루가 눈물을 흘릴 만큼의 맛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언니의 눈물은 이해가 갔다. 언니 금방 가야 하는 거야?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아.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오래 있지는 못할 거야. 다시 올 거지? 그것도 확신할 수는 없어. 하지만 확실한 건 난 너는 매일 만나러 왔었어. 이렇게 너와 얘기할 수 있을 줄은 몰랐네. 다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땐 내 이름표 찾아올게. 언니 다음에도 또 나를 만나러 와. 내가 그땐 레모네이드를 만들어줄게. 

     

아침은 큰언니와 작은언니, 내가 식탁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빵에 잼을 발라 먹거나 버터를 발라 먹었다. 큰언니는 차 대신 가끔 커피를 마셨다. 언니가 모카포트에 커피를 넣을 때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나는 언니의 모카포트 안에 넣을 커피를 갈아주는 것을 좋아했는데 소리도 좋았고 가루가 되면서 나는 향이 좋았다. 막상 커피를 마시면 쓴맛이 나서 이걸 대체 왜 마시냐고 하면서도 커피를 갈거나 모카포트에서 끓어오르는 커피를 보면 기분이 좋았다. 집에서 나와 걸어서 10분 정도 가면 빵집이 있다. 매일 아침 7시에 식빵이 나오는데 그 시간에 가면 빵이 뜨거워 자를 수가 없어 통째로 사야 한다. 작은 언니는 우리 셋 중에 제일 먼저 일어나기 때문에 빵집에 가서 식빵을 사 오는 것은 작은 언니 담당이었다. 하루는 일찍 눈이 떠져 작은 언니와 빵집에 같이 갔다. 언니와 나란히 걸으며 학교 얘기도 하고 어제부터 배우는 수학 공식 얘기도 하고 영어 문장 만들기 게임도 하고 큰언니가 어제 코 골았던 얘기 하면서 웃기도 했다. 언니도 아직 커피를 마셔보지 않았는데 큰언니가 오늘 마신다면 한 모금 마셔보겠다고 했다. 나는 아직 어리다고 안된다고 했다. 마실 생각도 없었는데 어려서 안 된다고 하기 오기가 생겨서 언니들이 안 주면 몰래 마신다고 했더니 볼을 살짝 꼬집으며 안된다고 했다. 빵 냄새가 골목 어귀부터 난다. 조금 느끼하지만 고소하고 짭짤한 냄새가 풍기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오늘은 작은 언니와 내가 제일 먼저 식빵을 사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서비스로 마들렌을 주셨다. 오늘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는데 그날 사고가 날줄은 몰랐다. 큰언니는 이제 차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도 두 잔이나 마신다. 빵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커피만 마신다. 내가 아침에 식빵을 사 오지 못하는 날은 언니는 커피만 마시고 나는 차만 마신다. 꿈에 나왔어. 누가? 호빵. 얼굴이 동그랗다고 언니는 작은언니를 항상 호빵이라고 불렀다. 어땠어? 온몸에 문신했더라. 진짜? 응 다리에는 큰 꽃이 있었어. 발목에서부터 줄기가 시작되고 허벅지에서 활짝 핀 꽃이 한 송이 예쁘고 탐스럽게 피어있었어. 너무 아름다워서 만져볼 수 없을 정도였어. 양쪽 다리에 두 송이 큰 꽃이 활짝. 어깨랑 팔에는 어떤 글씨가 계속 이어졌는데 알아볼 수는 없었어. 그걸 읽어 볼 수만 있다면 좋았을 텐데 읽을 수가 없더라. 일단 영어는 아니었고 처음 보는 언어였어. 그런데 그 글씨도 참 예뻤어. 그 애는 살아있을 때도 예쁜 것을 좋아하더니 아직도 그렇게 예쁘더라.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으며 눈물을 닦았다. 나도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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