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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Aug 03. 2024

아빠.크림스파게트.티.

끝이 티야. 스파게티.

처음부터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도 좋았다. 나고 자란 곳이라 언어도 편하고 사고방식이 비슷한 사람들과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항상 어딘가 아쉬웠고 무언가 부족했다. 가끔씩 답답함이 느껴지고 그 답답함을 누군가 나누기엔 내 인간관계가 너무나 좁았다. 부모님은 항상 바쁘시고 바쁘시지 않을 때엔 우리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오빠는 어릴 적부터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시력이 좋지 않았고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피곤해했다. 피곤한 상태에서 내가 말을 걸면 짜증을 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동네는 작았고 몇 바퀴를 돌아도 해가 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하다가 세 바퀴쯤 돌 땐 오빠는 과연 왜 짜증을 낼까. 다섯 바퀴쯤 돌았을 땐 엄마아빠는 왜 바쁘거나 우리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까.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할 때쯤엔 저녁은 누구랑 먹지. 등등 온갖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을 하다 보면 생각이 생각을 낳고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를 놔주지 않았다. 급기야 노트에 생각들을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는데 손가락에 쥐가 날 만큼 쓰고 또 써도 생각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손으로 쓰다가 어느 날 아빠가 중고로 컴퓨터를 사 오셨는데 그날은 오빠와 나를 앉혀두고 컴퓨터의 중요성에 대해 한참을 얘기해 주시고는 워드 작성법을 알려주셨다. 매우 친절하게. 친절함과 다정함의 정확한 뜻을 몰랐는데 이 날 처음 알았다. 어떤 단어의 뜻을 몸소 체험하기란 쉽지 않은데 그날 친절함과 다정함의 정확한 뜻을 완벽히 이해했다.    

  

처음부터 옷은 조금만 가져가려고 했다. 옷은 여름옷 두 이벌 겨울 옷 한 벌이면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옷 입는 것에 관심도 많이 없을뿐더러 옷을 가지고 갈 여유도 없었다. 이민을 간다고 하니 갑자기 전화를 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버지의 친구분들이었다. 너 이민 간다고. 네. 그렇게 되었네요. 아버지 제사는 어쩌고. 거기 가서 날짜 지켜 지낼게요. 그래. 내일 잠깐 여기 들를 수 있냐. 네. 점심 먹으러 갈게요. 그래. 너 좋아하는 크림스파게틴가 뭔가 그거 해줄게. 삼촌 그런 것도 할 줄 아세요? 너 좋아한다길래 찾아봤지. 재료도 있으니 몸만 와. 네. 기대할게요. 아저씨가 해주는 크림스파게티라니. 기대도 걱정도 되었다.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나도 집에서 해 먹어본 적은 없다. 아버지 장례식에 오셔서는 집에 가지도 않으시고 내내 구석에 앉아서 술을 드셨다. 한 번씩 친구들이 오면 같이 마시다 우셨다. 마지막 날이 되자 나에게 다가오셔서는 장례식장 밥 물리지.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저 크림스파게티 먹고 싶어요.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왔다. 아.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이미 아저씨는 신발을 신고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가시는 중이셨다. 이내 손에 들려온 것은 편의점에서 파는 전자레인지용 크림 스파게티였다. 아저씨. 내가 할 줄도 모르고 가게도 없어서 이것밖에 못 사 왔다. 나중에 내가 맛있게 해 줄게. 하면서 내 손에 편의점 봉지를 쥐어 주시면서 우셨다. 왜 우세요. 잘 먹을게요. 정말 먹고 싶었어요. 이런 거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니 아버지 불쌍해서 어쩔끄나. 하면서 꺽꺽 우셨다. 어린아이처럼. 장례식장에선 모든 어른들이 어린이처럼 운다. 사탕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슬프게 소리 내어 운다. 단 한 명의 어른도 예외 없이 그렇게 운다. 그러다 술을 마신다. 삼촌도 그렇게 3일을 보냈다. 아저씨가 어서 저쪽으로 가서 먹으라고 등을 떠밀었다.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뜨거웠지만 냄새가 좋았다. 이렇게 냄새를 맡고 먹고 싶은 생각이 들고 맛있겠다 생각이 든 것이 3일 만이었다. 뚜껑을 열어 포크로 돌돌 말아보았다. 고소하고 맛있었다. 삼촌은 아버지가 내가 크림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갔다고 슬퍼하셨지만 아버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크림 스파게티인 것을 알고 계셨다. 아버지와 둘이 스파게티 집에 가서 먹고 온 적도 있다. 아버지는 이런 허연게 뭐 맛있냐고 하시면서도 함께 맛있게 드셔주셨다. 아빠. 이게 스파게티 라고 하는 거야. 해봐 스파게티. 스파게트. 아니 스파게티. 티야. 끝에가. 스파게티. 그렇지. 이제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누가 물어보면 크림 스파게티.라고 해야 해. 알았지. 그래 알았다. 뭔 맛인지 모르겠지만 네가 좋아한다면야. 기억해야지. 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청국장인줄 알았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잘 먹길래 그런 줄 아셨다고 했다. 아니야 아빠. 나 그거 냄새나서 되게 싫어했어. 그걸 먹는 나를 신기하고 기특하게 보는 엄마아빠 때문에 일부러 맛있게 먹은 거야. 정말 먹는 거 힘들었어. 그랬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해서 많이 해주었구나. 이제부터 스파게트 만드는 거 배워서 아빠가 해줄게. 알았어. 아빠 스파게티야. 티. 그래 티.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오겠지. 진짜 해주려고? 그래 아빠가 해줄게. 청국장 같은 거 말고. 오. 알았어. 기대할게. 아빠와의 이런 긴 대화가 오랜만이라 어색했다. 하지만 스파게티 얘기라면 누구와도 길게 대화할 수 있다.      


새로 이사 온 집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조금만 걸어가도 아파트가 브랜드별로 줄지어 있는 반면 이곳은 흙길을 따라 들어와야 했고 집 한 채. 그게 다였다. 그 집 뒤로 돌아가면 집이 하나 더 있긴 했다. 새시 공장을 겸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크지는 않았고 새시 틀만 만들어 내는 곳인 것 같았다. 새시틀처럼 생긴 길쭉한 철봉들이 줄지어 서 있는가 하면 트럭에는 세모로 생긴 새시고정틀이 세워져 있었다. 이사 오기 전 집 앞 슈퍼아저씨가 혹시 뒤쪽에 새시집이 있는 곳이냐고 했다. 새시 이름이 적힌 트럭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아마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아. 그쪽이구나. 제가 그 친구 잘 알거든요. 제 친구예요. 정말요? 그렇구나. 신기하네요. 그 친구 나랑 동갑인데 아직 장가를 못 갔어. 아. 근데 아마 조만간 좋은 소식 있을 거라고 다른 친구가 얘기를 해주긴 해주더라고. 뭐 어디 외국에서 온다고. 그렇군요. 얼마죠. 딱 만원이네요. 이사 가도 종종 올게요. 네 그래요. 들어가요. 사실 집을 보러 갔을 때 부동산 아저씨가 새시 집이라고 했을 때 믿기지가 않았다. 아직도 이렇게 작은 곳에서 맞춤으로 제작하는 곳이 있구나. 하긴 새시가 모두 맞춤이긴 하지. 그래도 그렇게 많은 브랜드가 있는데 새시의 세계는 정말 넓구나. 싶었다. 돌아 나오는 길은 외길이라 차가 딱 한 대밖에 지나갈 수 없다. 트럭이 마주 오면 그대로 후진을 해야 한다. 이사 첫날도 그랬다. 새시를 실은 트럭이 마주 와서 길 초입까지 그대로 후진을 했다. 미안하다고 내려서 음료수까지 주셨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채 건네기도 전에 바쁘게 길을 빠져나가셨다. 그렇게 인사를 한 이후에는 인사가 없었다. 찾아가지도 않았을뿐더러 찾아오지도 않았다. 이사를 하면 떡을 돌리는 거라고 엄마는 떡을 어서 주문하라고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웃은 새시집뿐이었고 요새 누가 떡을 먹냐고 그냥 전화를 끊은 터였다. 그래도 떡을 좀 할 걸 그랬나 잠시 후회했지만 역시 그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주의 현대인들에게 맞지 않는 행동 패턴이야.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얼마 전 우연히 예전 살던 동네를 지나다가 슈퍼에 들렀다. 이사한 곳 지낼 만해요? 네 좋아요. 마음이 편해요. 다행이네요. 참 그 새시집 내 친구 곧 장가간대요. 와. 그러시군요. 그때 말했던 외국에서 온 여자분이랑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짜식이 복 받았죠. 그 사실 새시집 아저씨 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결혼하신다고 하니 그것도 외국인 신부를 맞이한다고 하니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다. 찾아가서 인사를 다시 건네볼까. 그건 어색하겠지. 결혼식에 가볼까. 그건 더 오버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새시집 아저씨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 결혼하신다고 들었어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하기 시작했다. 아. 그게 저기 그 슈퍼 아시죠. 그분 친구분이시라고 들었는데 그 슈퍼 사장님이. 그러니까. 네 맞아요. 저 결혼해요. 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결혼을 앞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평온한 인상이었다. 결혼을 앞두면 들뜨지 않나. 보통은. 누군가 인사를 건네면 멋쩍은 듯 웃으며 얼굴이 발그레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새시집 일은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이상하게 일찍 눈이 떠져서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와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것이 나서 두리번거렸다. 저 뒤쪽에서 누군가 웅크리고 있었다. 까맣고 긴 머리가 앞으로 쏟아져 내려와 검은 덤불처럼 보였다. 발은 맨발이었고 아직 추운 날씨라 그런지 발가락이 모두 접혀 들어가 있었다.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는 것을 보니 고양이가 아니라 이 여자분이 울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여자분이었고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커피를 든 손을 다른 손으로 받쳐 들고 까치발을 하고 다시 앞마당으로 나왔다. 우린 집에 들어온 침입자였지만 어쩐지 보호해 주고 싶었다. 울고 있는 사람을 내쫓을 수는 없었다. 담장이 없는 것이 불편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도둑이 오다가도 힘들어서 그냥 가겠다 싶었고 담장을 세울만한 여유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울고 있는 여자분이 올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 여자분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모르게 실컷 울 만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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