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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Sep 10. 2023

승진하고 싶지 않아



“나, 누락되면 어떻게 해”

회사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 친한 동생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뜬금없이 말했다. 그녀는 곧 있을 과장 승진자 결과 발표에서 자신의 이름이 없을까 우려하고 있는 듯했다. “그럴 리 없어. 걱정하지 마.”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진 상대에게 흔하디 흔한 위로를 건넨 후 든 생각은 엉뚱하게도 이거였다. ‘나도 내년에 진급 대상자가 된다면 간절해질까?’ 그리고는 이내 굳은 표정이 되어 고개를 가로젓고 말았다. 조금도 진급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연봉의 앞자리가 달라지는 것은 반길 만했다. 그러나 과장이 되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지속한다 생각하면 삶은 계란을 물 없이 먹은 듯 가슴이 턱 막혔다.      





그즈음 진급보다 더 강렬히 원하는 욕망이 있었으니 그것은 뜻밖에도 ‘고독’이었다. 거의 매일 ‘혼자 있고 싶다’는 내적 외침을 하며 회사를 오갔다. 처음엔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거쳐 가는 번아웃인 줄로만 알았다. 모든 회사원에게는 3.6.9 증후군(*3년 차, 6년 차, 9년 차에 퇴사 욕구가 커진다는 의미)이 있고 나 또한 9년 차에 다다랐으니 그럴 만하다 생각했다. MD란 업무는 손에 익을 데로 익었고 홈쇼핑 업계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으며, 미래의 내 모습마저 옆자리의 과장, 차장으로 짐작할 수 있었으니 눈빛이 흐릿해질 수밖에 없었겠지.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번아웃의 모양새는 조금 이상했다. 일상의 활기를 전부 잃은 게 아니라 특정 상황에 국한되어 무기력 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품 운영 팀장들이 한데 모인 편성 회의 자리에서 또는 쇼호스트와 제작팀, 협력사와 함께 판매 전략을 짜는 제작 미팅에서 그것도 아니면 방송을 마치고 파트너사 실무자들과 함께하는 회식 자리를 끝마친 후가 그러했다. 한마디로 ‘사람들 속에 있던 날’은 여지없이 진이 빠졌다. 마치 무리해서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게 없는 에너지를 어딘가에서 빌려와 사람들 틈에서 홀린 듯 탕진하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만난 대상이 달라도 마친 후의 내 모습은 언제나 비슷했다. 에너지 과소비로 넋이 나간 채 집에 돌아와 텅 빈 지갑 바라보듯 허망하게 천장을 응시해야 했다. 뭐 그래도 여기까진 ‘업무에 지나치게 치인 날’이라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후였다. 휴식과 숙면으로 체력을 회복하면 어김없이 내 안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다.      





이 일은 나와 맞지 않아      

그렇게 내뱉고도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제 막 과장 진급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이 품기엔 너무 대책 없고 뒤늦은 반응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더구나 이곳도 신생기업과 대기업 계약직을 거쳐 힘들게 안착한 직장이 아니던가. 그래서 보통의 직장인보다 진급이 느린 편이었는데 다시 사회초년생이 해봄직한 고민을 하고 있다니. 나조차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업무 강도 또한 그리 세지 않았다. 영업직인데도 불구하고 협력사가 내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외근이 적었고 종종 빌런이 등장하긴 했어도 전반적으로 상식을 지키는 사람들과 일하는 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4년 차 대리라는 위치는 어떤 직업이든 업무의 세부 과정 안엔 내 선호와 부합하지 않는 일이 존재한다는 걸 이해하는 직급이 아닌가. 그런데도 나는 쌓인 연차가 무색하게 사람들 간의 소통이 힘에 부친다는 이유로 직무 적성을 다시 고민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고 이제와 천직을 꿈꾸는 거냐고 자문해 보면 그건 또 아니었다. 거의 막무가내의 심정으로 ‘혼자 일하고 싶다’는 메아리가 내 안에서 멈추지 않았을 뿐이다. 이토록 ‘혼자’가 절실한 이유는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나는 여태껏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했던 극내향형 인간으로 살았으니까.     





내향적인 사람들은 내부에서 기를 모은다. 바깥이 어떤 작용도 그들에게 축적된 힘을 주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에서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고 반응하지 않아도 될 때, 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말없이 몰두하고 빠져들 수 있을 때, 선택을 오롯이 자신 스스로 내릴 수 있을 때 그들은 충전된다.


진민영 작가의 책<내향인입니다>를 읽다 위의 문장에 허겁지겁 밑줄을 쳤던 날이 떠오른다. 그날은 퇴근하는 버스에서 아주 느리고 조용한 피아노 독주곡 하나를 반복 재생해 들었던 날이기도 했다. 회의가 있는 날엔 왜 이토록 불필요한 언어들이 흙탕물의 모래알처럼 내 몸 안을 부유하나 의아해하며 피아노 소리에 귀 기울였었는데 그날 밤 읽은 책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에게 있어 사람이란, 과도한 자극이자 지나치게 반응해야 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MD를 막 시작할 때즘엔 상황에 부딪히다 보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람도 자주 만나다 보면 익숙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허망하게 빗나갔다. 8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사람이란 자극이 버거워 진급도 마다하는 예민한 직장인일 뿐이었으니까.  




다시 시작하고 싶다.

결국 나는 기어이 선택을 하고 만다. 한 단계 올라서는 승진이 아니라 첫 단계로 돌아가는 원점 상태로.

그렇게 나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회사를 나왔다.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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