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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Sep 15. 2023

이직과 여행 둘 다 싫은 직장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회사 일이 힘들다고 말하면 상대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였다. 이직을 준비하라는 사람과 여행을 권하는 사람. 이들을 다른 표현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잘 팔리는 대리 직급일 때 몸값을 올리라는 ‘이성적 설득 유형’ 그리고 그간의 노고를 충분한 휴식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감성적 회유 유형’. 두 가지 모두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 어느 것도 고르고 싶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회사를 바꾼다고 해도 영업직을 내려놓지 않는 한 사람들과의 접점을 피할 길이 없었고 인파가 싫어 출입국 도장이 여권의 두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 내가 여행을 간다고 한들 무조건 재충전될 리도 없었다. 사람들이 건네준 대안은 아무리 봐도 나의 것이 아니었다. 분명 내 일상 어딘가가 꽁꽁 묶여있는데도 어디가 매듭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만은 꽤 선명했던 것 같다. 문제의 실마리는 아무래도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MD가 홈쇼핑의 꽃인데 말이죠

입사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서 MD 총괄 팀장은 실무자가 부족하다는 하소연과 함께 저 말을 덧붙였다. 그때 꽃이라는 뜻밖의 단어에 나도 모르게 잠시 귀를 기울였었다. 회사라는 공간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비유까지 들며 그녀가 말하려던 건 아마 이점이었을 거다. 상품의 입점부터 론칭까지 방송 판매 전 과정을 관여하는 MD는 유통 업계의 핵심이므로 보강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      





낯선 이의 은유적 피력이 꽤 인상 깊었음에도 당시 나는 다른 팀에 속해 있던 터라 그 말들을 유유히 흘려버리고 만다. 1년 뒤 내가 바로 그 꽃이 되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극내향인의 MD 데뷔가 가능했던 이유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조직의 수장이 바뀐 후, 회사의 외형이 커지면서 돈을 벌어다 주는 영업 부서의 규모도 함께 불어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원 부서였던 나 또한 그 흐름에 편입되어 생애 최초 ‘영업’이란 역할을 맡게 된다.




    

영업. 이렇게 두 음절로 뭉뚱그려 표현했지만 홈쇼핑 MD의 정확한 의미는 사실 ‘상품 기획자’이다. 다시 말해, 팔릴 만한 물건을 선별하고 판매 구성과 가격 조건을 매만져 시청자에게 매력적으로 선보이는 일인 것이다. 언뜻 간단해 보여도 이 한 줄의 문장을 실현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모든 단계에는 전부 ‘사람’이 있다. 한 개의 상품을 론칭하려면 마주해야 하는 실무자가 어림잡아도 최소 10명이 넘는다는 의미다. 적은 숫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할당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MD들이 보통 한 해 준비하는 상품 수가 수십 가지에 이른다면 어떨까.     





그래도 MD 5년 차가 되니, 내향인에게 맞는 업무 방식을 어느 정도 터득해 가는 듯했다. 협력사 실무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대신 그들의 카톡 프사(프로필 사진)와 먼저 인사를 나눴고 사무실에선 휴대폰보다 키보드를 더 자주 사용하며 일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만남과 말’보다 ‘거리 두기와 텍스트’를 앞세워서 업무를 진행했다. 다행히 이 방법은 나의 체력 소모를 늦추는데 효력이 있었다. 게다가 코시국이라는 상황도 뜻밖에 구실이 되어 이러한 우회적인 의사소통 방식에 힘을 보태주었다.      





그러나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나의 업무 태도는 아무리 봐도 미봉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3년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이후는?’, ‘직급이 올라가도 텍스트 소통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업무 내내 나를 쫓아다녔다. 커리어라 말할 수 있는 실무 경험은 늘었지만 잘 가고 있다는 감각은 느낄 수 없었다. 이러한 끝없는 불신은 아마도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 그러니까 태연한 얼굴로 상대방에게 다가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매일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업무적 소통 방법은 사람을 챙기는 방식이 결코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서 내 모습은 뭐랄까. 꼭 포스트잇 같았다. 연결되기 위해 사람에게 달라붙어 보지만 사회성이라는 내 허술한 접착력은 금세 수명을 다했고 그러고 나면 팔랑팔랑 맥없이 떼어지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설프게 사람들 속에 있다 보면 마치 단 한 개의 기호에 둘러 쌓인 기분이 들었다. 방향이 ‘바깥’으로만 향해 있는 화살표들 말이다. 내 주변을 에워싼 그것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필요한 태도는 오직 ‘발산’ 이니,

밖으로 더 더 드러내야 한다고.










나를 내보이는 게 여전히 어려운 9년 차 직장인이 되자, 막연했던 불안은 어느새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안을 비우는 일 말고 채우는 일은 없을까.
내가 좀 더 자연스러울 수 있는 환경은 없을까.
힘을 들여 적응하고 버티는 과정이 일의 전부일까.  
나를 지키는 밥벌이는 정말 없는 걸까.
.
.
.
앞으로도 나의 내향적 기질을 부정할 수 있을까.




물음은 쏟아지는데 답은 요원했다. 아마 내가 어딘가 갇혀있기 때문이라 추정되었다. 매일 보는 프레임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손에 쥐었다. 자기만의 대안을 끝끝내 찾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다음 글이 이어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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