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슥슥 Sep 22. 2023

입사 7년 차에 부업이란 걸 '처음' 하게 되면




퇴사 D-965일, 밤 11시. 그때 나는 내 방 책상에서 때아니게 분주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그날 익힌 주식 투자 용어에 관한 글을 쓰고, 어설프게 썸네일을 만들어 블로그에 업로드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일 1포스팅이라는 내가 정한 약속을 지키려 그날도 퇴근 후 꾸역꾸역 PC 앞을 지킨 셈이었다. 당시 목표는 꽤나 호기로웠다. 코로나가 부추긴 투자와 부수입 열풍 속에서 나 또한 ‘수익형 블로그로 새 파이프라인을 구축하자’는 야심을 품었으니까. 4개월 만에 드디어 광고 게재 승인을 얻어낸 후 눈에 불을 켜고 매일 글을 썼던 건 사실 제 2의 월급을 기대하는 여느 직장인과는 조금 다른 목적이 있었다.






나의 머릿 속에 '퇴사 계획'이라는 단어가 선명해진 시기가 바로 그 무렵이었다. 퇴근만 하고 나면 유튜브 속 퇴사 선배를 찾아가 그들이 실행한 퇴사 대응책을 살펴보곤 했다. 표현은 달라도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듯 했다. 아무 준비 없는 충동적 퇴사보다는 최소 생계비 정돈 벌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고 나오라는 것. 물론 나도 공감 하는 바였다. 산소 호흡기 마냥 월급에 의지해 숨 쉬는 직장인에게 퇴사란 스스로 동아줄을 끊는 거나 마찬가지니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때의 내 야밤 포스팅도 그들의 조언에 동의한 결과였다. 월급 외 수익 구조를 마련하는 일이 퇴사 로드맵의 첫 단계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믿음이 섣불렀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이유를 말하기 위해 잠시 블로그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수익형 블로그로 돈을 버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의 블로그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유인시키는 것, 다른 하나는 페이지에 가급적 오래 머물게 해 광고 배너를 클릭하도록 만드는 것.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비법과 공식들을 거칠게 요약하긴 했어도 수익을 위한 핵심은 한마디로 이것이었다. '나의 블로그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헌데 내가 피로를 느낀 부분은 다름 아닌 그 점이었다. 글을 쓰기 전, 오로지 돈을 위해 ‘유인책’부터 고민하는 일이 점점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이슈나 고단가 키워드를 고민하는 일도 적응하기 어려운데, 유입된 이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글의 구조나 썸네일을 고민하며 글을 써야 하는 건 정말이지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실은 몹쓸 완벽주의 탓도 있긴 했다. 그나마 만족스러운 포스팅은 토요일 하루를 통으로 쏟아 부었을 때나 간혹 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끝내 불만족스러웠던 건 포스팅을 마친 후의 내 모습이었다. 수익을 나타내는 대시보드를 수시로 새로고침하며 그날 번 돈을 파악하는 내 얼굴엔 조급함 외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수입의 세계는 마케팅과 과장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영역 같았다. 돈 버는 요령과 꼼수가 꿀팁이란 포장지에 싸여 거래되는 ‘개인 광고의 장’이랄까. 나를 드러내는 일을 유독 어려워하는 은둔형 내향인의 엔진은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금세 동이 나고 말았다. 아마도 '돈'과 '남(타인)'이 목적이 된 행위는 가뜩이나 잦은 대면 회의로 텅 비어가던 내면을 제대로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간 대비 효율을 중시하는, 또 하나의 경기장 같은 그곳에서 나 자신이 (뛸 줄 모르는) 초식 동물 같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이러니 결과는 뻔했다. 온라인 부업이란 치열한 세계에서 서툴게 애만 쓰던 나는 400여 개의 포스팅과 약 30만 원이라는 수익을 끝으로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부수입 세계에서 이탈한 내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엉뚱하게도 '묵독의 세계'였다. 당장의 요령을 알려주던 유튜브와 전자책에 심드렁해지고 나니 어쩐지 좀 느려도 더 친숙하고 신뢰할 만한 매체에 의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다른 이야기가 간절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말끔히 정답만 도출한 꿀팁 말고 어떻게 자기 선택을 믿고 낯선 길로 갈 수 있었는지 전체 맥락이 설명되어 있는 전후 과정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새 수입처를 마련하려던 계획은 잠시 내려두고 회사 밖을 나서기로 한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 나갔다.






물론 책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즉효의 수단은 아니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적립되는 감각만큼은 제법 분명히 느껴졌다. 내 안에 쌓인 그것은 일종의 '시간' 같았다. 다른 이들이 걸어간 길을 천천히 따라가 보는 시간이자 조용히 혼자서 내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 그래서였을까. 눈으로 볼 수 있는 결과물은 아주 조금씩 길어지는 독서 목록 밖에 없었는데도 내면에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는 순간이 종종 생겨났다. 이를테면, 나의 은둔 성향과 내향 기질을 비난하던 말버릇이 점차 줄었을 때, 그리고 '회사를 나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노트에 적고 답을 궁리하던 때가 그랬다.






그 흐름에서 내가 놀랐던 건 이 행위가 갈수록 자연스러워졌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으며 품었던 적 없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는 과정은 추운 겨울 모닥불 같이 차분한 안정감을 주었다. 어쩌면 내가 찾고 있던 건 딱 떨어지는 정답이 아니라 그저 이 감각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기 위해 다른 돈 벌이부터 알아보던 3년 전의 나를 다시 떠올려본다.  묘하게도 그 위에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가 슬며시 겹쳐진다. 그때의 나는 쥐고 있는 걸 잃을까봐 초조해하며 옆도 보지 않은 채 앞으로만 달렸던 건 아니었을까. 여태 그랬듯 체질을 감추고 원래 자리를 지키면서 보편적 답을 쫓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근하면서 말이다.




불안이 동력이었던 과거의 모습을 되짚던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이런 의견들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모아둔 돈을 써도 괜찮아. 대신 예산을 정해보자.'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도 내 안에 남는 기술, 글쓰기와 이어지는 기술을 배워보자.’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예정)



매거진의 이전글 이직과 여행 둘 다 싫은 직장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