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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Dec 30. 2023

연간회고 | 키워드로 회고하는 2023년







12월이 끝나갈 즈음이면 자연스레 회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분류하고 기록해놔야 추억도, 기억도 좀 더 선명해질 테니까.

2023년은 '키워드'로 한 해를 돌아보았다. 각 카테고리에 맞는 사건들을 모두 톺아보느라 에너지를 많이 쏟았지만 이런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너무 많은 기억들을 무심히 흘려버렸을 것이다.  




굵직한 변화가 있던 2023년의 되감기를 시작해 본다.
















#30대후반 #직무전환 #편집디자이너


장기적인 관점에서 ‘혼자 일하는 삶’을 꿈꾸며 30대 후반의 나이에 새 기술을 배웠다. 주말 수업으로 끄적끄적 배우던 편집 디자인 과정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근 것이다. 고민 끝에 8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국비 지원으로 출판편집디자인 수업을 수강했다. 오래 걸어온 길에서 완전히 이탈하여 새 경로로 가는 길이 결코 녹록지 않았기에 이 결정은 올해뿐 아니라 내 인생에서 오래 회자될 것이라고 본다. 새가슴 내향형 인간의 삶에서 손에 꼽을 만한 무모한 도전이자 변화의 첫 도미노로서.
















#엑셀말고어도비 #새일터 #새시작


일터가 완전히 달라졌다. 엑셀만 다루던 10년 차 직장인이 이제는 출근하면 일러스트레이터부터 실행한다. 잦은 대면 회의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던 1년 전의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디자인 툴을 끄적이며 일하는 내가 여전히 좀 낯설다는게 재밌는 포인트.


“우리 나이에 직업을 바꿀 수 있구나!”

전 회사 친구가 나를 보며 한 말이다. 낯선 세계로 전진하면서 나 또한 스스로를 의심했다. 캄캄한 미래가 무섭고 두려워 올해는 유독 많이 걸었다. 연말이 되어서야 터널을 통과한 기분이 든다. 돈이란 조건을 우위에 놓지 않는다면, 언제든 ‘새 시작’이 가능하다는 걸 일상의 변화로 깨달았던 해였다.














#도서관 #시간부자 #산책루틴


퇴사 후, 3개월간 모교 도서관에서 지냈던 겨울을 잊을 수 없다. 서가를 배회하며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책등을 구경하고 여유롭게 교정을 거닐던 때, 함박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를 끄적거렸을 때, 후배들이 만든 고퀄리티 눈사람을 마주했을 때까지도 모두 선명하다. 당시를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나에게 형광펜이 주어진다면, 느긋하게 하루를 누렸던 그 시기에 힘 있게 밑줄을 그었을 것이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 그 추억 때문에 연차를 쓰면 자꾸 도서관으로 향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마음에 드는 행위 하나가 일상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바로, ‘산책’이다. 주중에는 혼자서, 주말에는 함께 걷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마 산책이 아닐까. 소확행하면 떠올릴 나의 취미, 산책을 새해에도 이어나가보자.














#나를위한투자 #매일글쓰기 #2차브런치북발행


무직 상태였던 상반기는 저축 확대보단 지출 통제가 최선이었다. 1년간의 생활 비용을 대략 천만 원 정도 예상하긴 했어도 굳이 그대로 소진할 필요는 없다 보니 아끼고 아끼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그 덕에 정부 지원금으로 적금도 내고, 최종 소비 총액도 예상 금액의 절반 정도밖에 쓰지 않았지만 어쩐지 돈 관리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미래를 위한 소비’라고 할 수 있는 경험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내년은 나 자신을 위한 투자 항목이 텅 비어있지 않기를 바란다.


디자인 공부를 한 후로, 정작 가장 애정이 있던 글쓰기에 소홀해지고 말았다. 1년 가까이 쓰던 모닝페이지도 취업 한 후 흐지부지 끝나버렸고, 직무 전환 스토리를 담으려던 2차 브런치북도 목차의 중간지점에서 애매하게 중단된 상태다. 노션에서 쓰지 않은 목차를 볼 때마다 나의 근성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재개를 하고 싶은데 이미 질려버려 손이 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












#일궁합 #새로운인연 #생기회복


   통근시간은 꽤 멀어졌지만, 일 자체는 내 기질과 잘 맞는다는 생각을 자주 한 해였다. 입 닫고 혼자 궁리하며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디자인 일이 꽤나 흥미롭고, 자처해서 맡은 블로그 포스팅 업무도 생각보다 부드럽게 적응했다. 채널 확장에 관심 많은, 프로 칭찬러 사장을 만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 일과 포스팅을 아직은 어설프게 이어나가고 있는데도 직원을 믿고 일임하는 대표에게 많은 자극을 받는다.



   좁은 강의실에서 디자인을 배울 때까지만 해도 감히 상상할 수 없던 것들이 현실이 되었다. 독립성과 자율성이 좋은 소규모 회사에 취업을 했고 디자인뿐 아니라 글 쓰는 역할도 새롭게 맡았으며 직원과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 열정적인 사장과도 인연이 되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감사한 일 투성이다. 그래서인지 업무와 내 취미를 칼같이 구분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새 일터에서는 공과 사 구분 없이 경험한 모든 것을 ‘나의 배움’으로 기록하고 싶어졌다. 직업을 바꾸고 내가 얻은 가장 큰 이익이 바로 이게 아닐까. 일상의 활력을 회복한 것.












# 기억에 남는 작가들 : 캐럴라인 냅, 리베카 솔닛, 오지윤, 홍승은, 김소연

# 감탄하게 되는 사람들: 이동진 평론가, 정혜윤(알로하융), 북튜버 너 진짜 똑똑하다

# 자주 구경했던 사람들 : 고수리 작가, 지식큐레이터 요니, 북콘텐츠 크리에이터 제이라이프, 단단한 일상의 단맛 단단


+ 애용했던 미디어 : (팟캐스트)책읽아웃, 씨네마운틴 / (앱)밀리의 서재, YES24, 노션, 네이버 블로그, 멜론, 손목 닥터 9988
















ㆍ 서울 시립 북서울 미술관(폭신했던 정사각형 1인 소파 잊을 수 없다)

ㆍ 종암동 개운산(겨울에서 봄이 되어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모교 도서관 테라스(봄을 느끼며 야외에서 책을 읽는 맛이란)

ㆍ 난지 한강공원(친척 언니와 즐겼던 페스티벌. 중꺾마를 알게 됨)

ㆍ 장미 축제할 때의 중랑천 공원(매일 가던 산책길이 포토 스폿이 되다니)

ㆍ 서울시 인쇄센터(첫 야외수업, 내 디자인을 실물로 마주해서 뿌듯했던 날)

★도봉산 능원사(반듯하게 관리된 조경에 시선을 뺏기고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에 평화로웠던)

ㆍ 수락산 천상병산길(짧은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벤치에서 날씨를 만끽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ㆍ 파주 헤이리 마을(이모네와 함께 갔던 여름 여행. 모두 함께 밀짚모자를 사서 썼더랬지)

ㆍ 공릉동 카페거리(겨울에 갔던 곳을 다시 가보면서 그때 추억을 재현했던 날)

★미사동 조정경기장(그림 같던 풍경, 완벽했던 가을 날씨, 처음 본 핑크 뮬리까지)

ㆍ 반포대교 달빛 무지개분수(피자와 치킨, 맥주를 앞에 두고 친구 텐트 안에서 입 아프게 수다를 떨었던)

ㆍ 회사 근처의 다양한 산책로(점심 산책이 루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아름다운 공원들)

ㆍ 본가 보일러실(뒤엉켜있던 신발들을 가지런히 정리했을 때의 기분이란)
















#피아노스케치 #글쓰기BGM #하츠


올해도 어김없이 멜론에서 레코드가 왔다. 23년에 들은 나의 음악 감상 통계를 보내준 것이다. 이번 결과에서 놀란 건 가장 많이 재생한 음악이었다. 여러 아티스트들이 떠올랐음에도 멜론이 지목해 준 건 ‘피아노 스케치’라는 인물이었다.

‘어, 모르는 사람인데?’ 순간 오류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해당 음악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이건 바로 글쓰기를 하면서 가장 자주 들었던 음악이라는 것을. 소음을 차단하고 집중을 도와주는 음악을 발견하면 그 한 곡만 반복 재생하는 습관 때문에 아마 이 곡이 상위에 랭크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한 해는 음악이 차음의 도구였던 것 같다. 음악을 감상하는 것만큼이나 주변의 소리를 막아낼 보조 수단으로서도 자주 활용했으니 말이다.


나의 TOP3 아티스트에는 ‘하츠’가 새롭게 랭크되었다. 팔레트를 시작으로 그의 음악에 입덕했는데 마침 10월에 새 앨범이 나와 한 달 내내 전곡을 반복해 들었다












#명랑한은둔자 #길잃기안내서 #스토너


노션의 기록들을 살펴보니 올해 읽은 책 중에 평점을 별 5점으로 표기한 책은 총 12권이었다. 제목만 다시 훑어도 독서할 때의 충만함이 느껴질 정도로 좋았던 도서들이다. 좋은 책은 언제나 나를 어딘가로 이동시킨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던 사유의 세계를 탐험하게 하고,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느껴지는 어떤 지향점을 따르게 만든다. 그래서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어딘가로 부단히 움직인 기분이 든다. 다행히 해가 갈수록 이 감각이 더 좋아지고 있다.



+ 그러고 보면, 서메리님의 저서를 제외하곤 모두 종이책으로 읽은 책들이다. 출퇴근길에 습관적으로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듣긴 하지만 독서의 여운은 아무래도 종이책과 비교할 수 없다. 내년은 종이책의 양을 늘려 책이 주는 감흥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23년도를 회고를 위해 구글 포토에 넣어둔 사진을 1월부터 찬찬히 훑었다. ‘올해도 금방이네‘라고 허술하게 푸념하기엔 소중한 기록들이 그곳에 있었다. 당시의 날씨와 인물이 고스란히 간직된 사진들을 보다 보니 엉뚱하게도 기록에 대한 열의가 샘솟았다. 이 숱한 시간들을 뇌의 구석으로 밀어 넣고 방치하여 사라지게 만드는 건 아무래도 너무 게으른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쩌면 지난 일들을 회고하는 건 곧 유기될 기억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식이 아닐까.



그런 의미로 내년엔 흩어져있던 기록 도구들을 통합하고 싶다. 노션을 좀 더 체계화해서 기록 아카이브로 활용해야지. 그것들을 토대로 너무 빨리 지나가는 시간들을 부지런히 보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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