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말일이면 언제나 같은 문구로 시작하는 편지가 도착한다. 4월 30일 늦은 오후, 새로 도착한 메일을 열자 이번에도 익숙한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4월 한 달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그대로다. 월급 명세서가 첨부되어 있는 급여 안내 메일의 한결같은 시작. 아마 이 문구 뒤에는 다음 두 문장이 이어올 것이다. ‘급여 명세서 전달해 드립니다. 다음 달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 그런데 이번엔 뭔가가 이상하다. 내 예상과 다르게 익숙한 인사말 뒤엔 무려 다섯 문장이 덧붙어 있었다. 게다가 추가된 내용은 두 번이나 날 웃게 했다. 목표를 달성했으니 성과급을 지급하겠다는 데서 한 번, 블로그를 작성하느라 고생이 많다는 데서 또 한 번. 메일의 말미에선 결국 참지 못하고 피식 소리를 내 웃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이 문장 때문이었다.
‘오늘 블로그 포스팅도 최고입니다.’
상단의 작가소개에도 밝혔듯이, 나는 현재 소규모의 인쇄 업체에서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명함, 리플릿, 브로슈어, 배너 등 제휴사들이 요청한 각종 인쇄물을 수정하거나 새롭게 디자인하는 게 나의 주요 업무이다. 그런데 한 달간의 노고를 치하하는 급여 안내 메일에는 디자인은커녕 오로지 블로그 이야기뿐이다. 더구나 그 표현에 나는 진심으로 기쁨을 느꼈다. 아무래도 어딘가 좀 이상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8개월 전, 얼떨결에 본 면접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얼떨결이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당시 나는 일 할 의지가 딱히 충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디자이너라는 직무가 나조차도 어색해 그저 새 업계의 분위기를 파악한다 생각하며 이력서를 넣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약 40분간의 일대일 면접을 끝으로 곧장 입사를 결정하게 된다.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디자인실이라 이름 붙여진 자그마한 공간을 혼자 점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고 보면 당시 나는 ‘혼자 일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고 있었다. 편집 디자인도 프리랜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택했으니 오죽했으랴. 하지만 실무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독립 근무자로서의 삶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걸 알기에 최대한 사람과의 교류가 적은 소규모의 사업체들만을 골라 지원했고 어디가 됐든 빠르게 경험을 쌓아 자립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면접을 본 회사에서 독립적인 공간을 제공해 준다는 거였다. 내 입장에선 반길 수밖에.
하지만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던가. 막상 입사를 하게 되니 내 자리는 디자인실이 아니라 인쇄 기계가 떡 하니 있는 매장 안이었다. 다시 말해, 기차가 바로 옆에서 지나가는 것 같은 소음이 수시로 발생하고 인쇄소를 찾는 손님을 대면으로 응대해야 하는 자리란 이야기다. 게다가 하필 입사 시점이 매장일이 많은 때라 바인더에 인쇄물을 끼워 넣는 식의 단순 업무도 보조해야 했다.
한마디로 어긋남 그 자체였다. 원래 받던 연봉의 70% 수준, 더 멀어진 통근 거리에도 입사를 결정한 건 홀로 독립된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는데 그 유일한 희망이 맥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의아했던 건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영업직으로 일했을 때보다 퇴사 욕구가 크지 않았다는 거다.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우선, 종종 들어오는 디자인 업무가 나와 잘 맞았다. 아직 초보라 일러스트의 빈 대지 앞에서 몸이 잘 굳어지긴 했어도 누구의 방해 없이 입을 닫고 온전히 화면만 보는 일이 생각보다 편했다. 특히, 어설프더라도 혼자 힘으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이 무척 좋았다.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홈쇼핑 방송 일에선 느낄 수 없던 내 소유의 기쁨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를 채용한 사장의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근무 조건이 면접 때와 달라진 점에 대해 그는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매장 운영자를 추가로 뽑으면 처음 약속을 이행하겠노라 반복해 말했고 단순 업무를 거들 땐 고맙다는 인사 또한 절대 잊지 않았다. 작은 일에도 솔선수범하고 표현에 아낌이 없는 젊은 사장을 보고 있으면, 불쑥 솟는 부정적 감정도 왜인지 쉽게 누그러졌다.
매장 운영 담당자가 새로 온 후, 상황이 차차 개선되자 회사에 대한 호감도도 조금씩 올라갔다. 공간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회사 블로그 운영을 자처한 것도 자연스레 상승한 업무 의욕의 결과였다. 아무런 간섭 없이 회사에서 글을 쓸 수 있으니 기록에 나름 애착이 있는 내가 나서본 거다.
더구나 글을 발행한 후 돌아오는 반응을 살펴보는 일도 꽤 흥미로웠다. 젊은 사장은 과분한 칭찬과 수고 인사를 거의 매일 내게 건넸고, 포스팅이 쌓이자 블로그를 보고 견적을 문의하는 고객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내가 쓴 글로 인해 점차 바빠지는 회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묘하게 달뜬 얼굴이 되었다. 뭐랄까, 분주해서 지친 표정이 되다가도 써먹을 만한 재주를 발견한 것 같아 입꼬리가 소심히 올라갔달까.
그러고보면 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영업인’ 일 때의 나는 한숨을 푹푹 쉬며 엑셀을 만지던 사람이었는데, ‘디자이너’ 일 때의 나는 자율성이 보장된다면 스스로 다른 업무까지 떠안으려 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퇴사 직후 불안 장애로 정신의학과를 찾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디자이너로서의 나는 잊고 있던 효능감을 느끼며 새 일상에 스며드는 중이었다.
*
회사에 도착해 자연스럽게 일러스트를 켜고 어제 쓴 포스팅 조회수를 확인할 때면 이따금씩 병원 안에서의 내가 떠오른다. 심장이 지나치게 뛰어 잠을 통 자지 못했던 2년 전의 나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두려움에 잠식된 상태였다. 깜깜한 터널 속을 아무런 위치 정보 없이 홀로 걷고 있다고 상상했으니까. 오랫동안 날 보호했던 울타리를 벗어나 모든 걸 잃었다는 상실감도 가득했다. 그랬던 내가 영업직을 그만둔 지 2년이 넘어서야 내가 서 있던 곳이 터널이 아니라 실은 길목이었음을 실감한다. 그저 다채로운 감정을 전달하는 새 길목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게 바로 회사를 나온 사람의 특권이 아닐까. 낯선 길목에는 그저 색다른 풍경이 있을 뿐이라는 걸 온몸으로 경험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