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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May 20. 2024

그 단어를 앞에 두고

에세이 드라이브(2회 차) 네 번째 에세이




도망치듯 자취 집으로 돌아왔다. 키보드 치는 소리 외에 모든 소음이 차단된 곳. 그토록 원했던 고요함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혼자가 되고 나니 누군가가 더욱 선명히 그려진다.     





*

지난 일요일 아침, 본가에서 느지막이 밥을 먹은 후 엄마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겠다고. 주말에 이어 월요일 연차 휴일까지 본가에서 지낼 거라 예상했던 엄마는 당혹스러운 눈빛이 역력했다. 예상대로 왜 이리 빨리 가느냐는 타박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엄마의 손은 분주했다. 계란말이를 금세 말아 뜨거운 열기 그대로 반찬통에 담았고, 오전에 삶아 놓은 단호박도 뚝딱 썰어 다른 통에 넣었다.     





무거우니 괜찮다고 말해도 엄마의 손길은 막힘이 없었다. 과일은 먹고 다니냐 물으면서 방울토마토를 씻었고 김치는 남아있냐 중얼거리면서 냉장고를 살폈다.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에 다가서니 어느새 들고 가야 할 짐이 한가득이었다. 본가가 시끄러워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정 없는 딸내미가 뭐가 예뻐 이리 챙겨주냐 물으니, 엄마는 옅은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엄마 마음이야."     





엄마 마음.

두 손 가득 담긴 게 엄마 마음이어서였을까. 그날은 유독 짐의 무게도 느끼지 못한 채 집에 들어섰던 기억이 난다. 적막한 내 방에서 방울토마토를 한입에 넣으며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다정한 모친 덕분에 나는 사랑을 세밀하게 체감하고 있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 이런 경험도 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의 어느 날, 잠든 엄마 옆에 슬며시 가 누웠던 적이 있다. 그때 내 발이 차가웠는지 엄마가 놀라면서 깨고 말았는데 나를 바로 알아채고는 곧장 자기 발을 내 발 위에 포갰다. 잠결인데도 딸의 언 발을 녹이겠다는 마음이 앞선 것이다. 그때 엄마의 발은 한창 열이 오른 핫팩처럼 뜨끈했다. 포갠 건 발뿐인데도 더운 온기가 금세 내 얼굴까지 퍼졌을 정도로.






엄마와 함께일 땐 늘 애정의 시소에 올라탄 기분이 든다. 사랑의 무게를 가늠하는 그곳에선 내 발은 언제나 동동 떠 있다. 내 쪽에서 아무리 하중을 더한다고 하더라도 엄마 쪽으로 치우친 경사는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간해서는 수평이 되지 않는 기울기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자부심이란 단어를 앞에 두고 과거의 내 수고들을 떠올리다 이내 머쓱해지고 말았다. 내가 발산했던 에너지가 온전히 내 공이 아니었음을 불쑥 실감했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 애정의 무게로 나를 위로 끌어올려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내가 과연 무엇을 계속 추구할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글감 :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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