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써볼게요.
네이버 블로그에 일기를 쓸 때와 다르게 브런치에서 흰 공백과 마주하면 마음에 부담이 꽤 크다. 아무래도 정돈된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일 것이다. 이 심리적 압력은 내가 너무 주위를 둘러본 탓도 있다.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명료한 색상의 작가들. 그들의 영롱한 빛깔을 구경하다 괜히 기가 죽었다. 쪼그라든 풍선처럼 의욕이 작아졌다. 그렇게 홀쭉해진 마음 때문에 어리석게도 쓰기를 자꾸 회피하고 있다. 요 며칠 블로그에도, 일기장에도 기록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할 말은 가득한데 정돈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석에 계속 방치했다.
못난 박탈감과 완벽주의에서 기인한 시작의 망설임. 오늘도 이 불편한 감정이 날 옭아매고 있다. 하지만 도망을 간다고 해서 편해지는 건 결코 아니기에 이 감정 그대로 오늘은 흘러가는 생각을 맥락 없이 나열해볼 생각이다.
1.
출퇴근 길 읽은 책에서 발췌했다. <일하는 마음>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잘하려고 애쓰기를 수행할 뿐'이라는 문장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회사 밖에서 돈을 벌기 위해 작은 시도들을 해보았으나 만족할 만한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해 종종 무력해지곤 했는데 그런 나를 비유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자주 품었던 질문은 늘 이랬다. '어떻게 회사 밖에서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질문에는 늘 이런 답이 뒤따라 오곤 했다. '일단 아무거나 해보자',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해보자'
방향성이란 건 원하는 게 분명할 때나 나올 수 있는 단어였다. 텅 비어있는 벌판에서는 무엇이 자랄지 예측할 수 없으니 닥치는 대로 씨앗을 뿌리는 데 급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문장을 통해 나의 질문이 애초에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 발을 내딛어도 '잘 내딛는 것'.
잘 내딛는 게 무엇일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이내 이런 결론을 내렸다. 무작정 방법(어떻게)에만 몰두하지 말고 지금 내 눈앞의 무엇이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는 것.
내 상황에선 이렇게 해석해볼 수 있다. 수익형 블로그로 돈을 버는 방법만 궁리할 게 아니라 블로그에 담길 콘텐츠(무엇)에 대해 좀 더 고민해야 했고, 부수입 수단을 어떻게 확장할 지보다 나의 어떤 점을 부수입의 수단으로 키울 수 있는지도 시간을 들여 탐색해야 했다.
여전히 어설프지만 그래도 잘 내딛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다시 해보려 한다.
"내가 가진 무기(재능)로 어떻게 회사 밖에서 돈을 벌 수 있을까?"
2.
재방송으로 라디오스타를 보는데 갑작스레 송해 선생님이 나왔다. 아흔 살이 훌쩍 넘었는데도 41년간 한 프로그램의 MC로 자리매김 한 그를 보고 뜬금없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안전한 노후 준비는
바로 저런 게 아닐까.
빠른 속도로 자산을 증식해
일에서 손을 떼는 것보다
오히려
일을 최대한 오래 쥐고 있는 것.
적극적으로 자산을 불리는 파이어족이 날로 늘어가고 있고 나도 그 흐름을 부랴부랴 좇고 있지만, 좋아하는 일 혹은 잘할 수 있는 일을 오래 하는 것만큼 안전한 은퇴가 또 있을까.
인생 2막을 즐기며 살기 위해선 꼭 조기 은퇴만이 답이 아닐 수도 있음을 누군가의 삶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