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는 정말 힘이 있는 걸까?

by 슥슥







기록에는 정말 힘이 있는 걸까? 지난주 브런치스토리에 '블로그를 통해 인쇄물 디자인 수주하기'라는 목표를 세웠다고 적었는데, 놀랍게도 바로 다음 날인 월요일, 그 문장이 실현되었다. 내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세무사 리플릿 디자인 후기(바로 이 글)를 보고, 또 다른 세무사 대표님께서 디자인 의뢰를 해오신 것이다.

아직 디자인 후기가 채 50개도 되지 않는 작은 블로그에서 인쇄물 디자인까지 연결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얼떨떨하면서도 신기했다. 수주의 기쁨에 취해 견적서를 급하게 쓰고 있는데, 대표님으로부터 메시지 하나가 더 도착했다.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차분하고 신뢰감 가는 느낌으로 만들어주세요."




이럴 때는 꽤 비관적인 나조차 대책 없이 낙관주의자가 된다. 블로그라는 채널을 꾸준히 가꾸다 보면 기회는 언제든 찾아온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폭풍처럼 몰아쳤던 지난주 업무가 어느새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이번 주는 욕심 없이 블로그 기록에만 매진하려 했는데, 무려 한 주의 시작점부터 기분 좋은 희망의 알림이 울린 셈이었다.

다음 날, 여느 때처럼 걸어서 출근하는 길에는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차분하고 신뢰감 있는 인쇄물'을 만들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할지, 또 어떤 배치를 시도할지 고민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공유 오피스에서 도착해 온종일 해당 작업에 매진하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일관된 콘셉트를 고려하며 페이지에 들어갈 글과 이미지를 배치하는, 이 편집디자이너 일이 점점 더 재밌어진다는 사실을. 입을 꼭 닫고 아무의 방해 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하다 보면, 바로 이 순간을 위해 프리랜서의 숙명인 불안과 미지를 견디고 있구나 실감한다.




'입 닫고 일하고 싶다. '

다소 우스운 표현이긴 하지만, 3년 전 홈쇼핑 편성팀에서 일하고 있을 땐 거의 매일, 저 문장을 염원했다. 하지만 수많은 유관부서와의 협업해야 하는 홈쇼핑 업계에선 침묵하며 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긴... 이게 어디 홈쇼핑업계뿐일까)

근속할수록 은둔 내향 기질이 강해졌던 나는 가급적 키보드 소통을 선택하려 애썼지만, 매일 편성 회의가 이어지던 부서에선 사람들과의 접점을 피할 길이 없었다. 결국 서른 중반의 나이에 무모한 이탈을 결정했고, 표류하는 배가 되어 편집 디자인이라는 낯선 바다를 떠돌다 3년이 지나서야 '프리랜서'라는 섬에 겨우 정박한 셈이다.

바라던 대로 입을 꼭 닫고 일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신기하기만 하다. 애매한 기술을 갖고 확신보다는 불안을 한가득 품고 전진한 사람도, 결국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히 열심히 구상한 덕분에 리플릿 디자인은 지난번보다 빠르게 완성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 번의 수정을 끝으로 깔끔하게 시안 확정이 나면서 의뢰인으로부터 이런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손댈 곳 없이 마음에 쏙 들게, 빠르게 디자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조직 안에서 일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직무 순환으로 생애 최초 MD가 된 후 처음으로 한 시간 방송 목표를 초과 달성했던 때. 쭉쭉 올라가던 콜 그래프를 보며 내 도파민도 솟구쳤지만, 어쩐 일인지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것은 나의 성과라기보다 함께 준비한 '팀'의 성과이자 '조직'의 성과였고, 판매시기가 맞아떨어진 '운'의 영향도 컸다. 숫자 데이터가 만든 희열은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빠르게 타올랐지만, 곧바로 더 높은 목표가 주어지며 금세 식고 말았다.




반면에 메일로 전달받은 단 한 줄의 감사 인사는 달랐다. 늦은 오후에 도착한 그때의 한마디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 한구석을 계속해서 따뜻하게 데우고 있다. 식지 않는 이 열기의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아마 나는 매출이라는 외적 보상보다, 단 한 명이더라도 개인이 보내는 직접적인 인정에 더 큰 만족을 느끼는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내가 스스로 일을 만들고 있는 감각, 그리고 나의 작업물이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는 자각도 이 열감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이번 주는 단 한 사람의 만족을 통해 내 일의 방향과 작업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이제 나의 과제는 점점 더 명확해진다.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더 많은 개인을 만족시키는 작업자가 되는 것. 그래야 내가 선택한 이 방식의 삶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입을 닫고 몰입해 일하되, 더 많은 사람의 신뢰를 쌓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다음 주도 생존해 보자.




+덧.

이번 주 진행한 리플렛 디자인




Done List : 이번 주 생존의 흔적들

[디자인] 이번 주 작업 목록

신규 수주 | 세무회계 홍보 리플릿, 피부과 원내 비치할 포스터 2종과 스티커

수정 및 보완 | 쇼카드 3종 외국어 버전 3종 문구 수정, 대학병원 홍보물 3종 마지막 수정


[온라인 영업] 샘플 제작 요청

샘플 발주 | 세무회계 리플릿 두 가지 종이로 샘플 요청


[채널 운영] 콘텐츠 기록 및 운영

개인 채널 | 네이버 블로그 포스팅 2건 (쇼카드 디자인 과정, A5 2단 접지 샘플 제작 후기)

외주 업무 | 전 회사 블로그 포스팅 4건 예약 발행 완료


이전 13화쓸모없는 경험은 정말이지...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