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족'이라는 아픈 단어
박탈감은 왜 항상 아플까?
함께 점심을 먹다가 나보다 서너 살 어린, 같은 팀의 후배 대리가 이렇게 말했다.
40살에 10억 모아서 은퇴하는 게 꿈이에요
내가 되물었다. "파이어족이 꿈인가 보네?" 그러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근데 한 70%는 이뤘어요. 서른 살에 1억 모아서 집 샀는데 그게 작년에 7억이 되었거든요."
그리고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갔지만 사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의 갑작스러운 재테크 성공 고백에 모든 게 아득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자산증식 속도에 관해선 지각생임을 인정했음에도 이런 순간은 어쩔 수 없이 커다란 허망함을 느낀다. 마치 레이스 맨 꽁지에서 나보다 한참을 앞서 있는 사람들의 등짝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 이 날은 카카오뷰 수익 알람 문자를 받아 기분이 꽤 좋은 날이기도 했다. 퇴근 후 꾸준히 보드를 발행한 덕에 17만 원의 부수입이 생겨 홀로 뿌듯해했던 하루였는데, 내가 얻은 희망의 숫자 17은 더 작은 7이란 숫자 앞에 처참히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재테크 지각생인 나에게 박탈감은 늘 통각으로 전해지곤했다. 몸의 가장 내밀하고 여린 부분을 찔러대지만 남들에게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통증이었으니까.
'늦게 시작했잖아'라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통증의 여운은 꽤 오래 나를 괴롭혔다. 일에 집중하다가도 허탈감이 밀물처럼 들어찼다. 곱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몇 시간 전 동료와의 대화 속으로 반복해서 고꾸라졌다. 누군가 내 얼굴을 부여잡고 강제로 바라보게 하는 것처럼, 자꾸 그 시점으로 끌려들어 갔다. 결국, 퇴근할 때쯤이 되었을 땐 마음에 멍이 들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공격하고 매질하는 자책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도대체 여태 뭘 한 걸까?
ㅂㅅ같이.
덜 잠근 수도꼭지처럼 우울이 뚝뚝 떨어졌다. 비난도 함께 번져갔다. 이럴 땐 하는 수없이 걸어야 했다. 감정과 생각이 버거워질 때마다 걷기로 그 무게를 덜어내곤 했으니까. 집까지는 한참 남았지만 그대로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무작정 걸었다. 영하 9도까지 떨어진 추운 날이었지만 식어가는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자꾸 희망이 차게 굳어갔다. 생각과 감정에 잠긴 채 한참을 걷다 보니 뜬금없이 단 것이 당겼다. 쓴맛뿐인 오늘 하루에 당분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당장 그것뿐이란 생각에서였을까?
다시 충동적으로 조각 케이크를 샀다. 집에 돌아와 밥 한 그릇을 후다닥 해치우고 케이크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만보 가까이 걸었고, 먹고 싶은 음식으로 배를 채웠음에도 거듭 내 몸에 무언가를 집어넣고 싶었다. 무엇을 해도 텅 비어버린 속은 '돈이 아니고서야' 메워지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그랬다. 곧이어 내 집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미아의 얼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눈앞에 켜켜이 쌓인 그릇들을 닦아내는 것 밖에는.
버릇대로 이어폰을 꽂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끼기 위해 멜론 구독을 해지하고 음악을 다운로드한 내가 참 초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장된 음악을 재생시켰다. 폴 킴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가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잔잔한 멜로디가 어두운 감정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다른 전환이 필요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며칠간 잊고 있던 브런치 앱을 켜보았다. 왼쪽 상단에 새 소식을 알리는 파랑 점이 보였다. 한 달 전에 쓴 글에 새로운 공감과 댓글이 달려있었다. 서둘러 댓글을 읽어보았다.
힘내자는 말 뿐이지만, 앞으로도 글 계속 써주세요
빚에 허덕이며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고맙습니다.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이 댓글들을 읽는데 머리 위가 잠시 고요해졌다. 분명 귀에서는 폴 킴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미아 같은 얼굴로 계속 허기를 느낀 오늘의 나처럼 저마다 다른 이유로 하루를 견딘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 왜 나는 여기서 연결된 기분이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어도 그 감정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저마다 느린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저마다 드러내지 않는 통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모르는 구석에서 혼자 넘어진 날, 여기저기서 내민 손길 덕분에 외롭지 않았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