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땐 수시로 도넛이 된다
날 치유하는 것들
심경이 복잡했던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생각이란 걸 할 수 없는 날이었다. 오전 내내 회의가 이어졌고, 오후에는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숨 쉴 수 없이 내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오후 3:49분쯤 (마감 10분 전) 오늘 하기로 한 청약이 떠올라 부리나케 하고 다시 업무에 돌입했다.
마치 옆을 보지 못하게 가리개를 하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뛰어다녔다. 어떻게 하루가 흘렀는지도 감각할 수 없을 만큼 나를 잊고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은 잘 갈지언정 마음은 항상 텅 빈다. 이상하게 허탈감을 느낀다. 알맹이는 녹아 없어지고 흐물흐물 겉가죽만 남은 것처럼. 가운데 동그랗게 구멍이 뚫린 도넛처럼. 그래서였을까.
모든 걸 마치고 본가로 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이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엄마 딸,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 소리에 엄마는 한걸음에 달려와 웃으며 날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시야가 넓어지며 익숙한 풍경들이 보였다. 집안의 아늑한 온기와 밥 짓는 냄새, 보글보글 찌개 끓이는 소리, 식탁 위에 올려진 막 만든 반찬, 아빠가 틀어놓은 TV 소음 그리고 엄마의 편안하고 따뜻한 목소리까지.
텅 빈 것 같던 마음이 일순간 꽈악 찬다.
포근한 품 안에서 오늘 하루가 문득 시소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의 고단함이 묵직한 무게로 날 아래로 끌어내렸지만, 익숙한 편안함이 반대편에 올라타 다시 위로 끌어올려준 것 같았으니까. 잊고 있던 저녁 풍경 덕에 마음의 수평을 이룰 수 있던 오늘. 내가 기억해야 할 건 이것이 아닐까.
날 치유하는 것들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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