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밖을 나갈 수 없을 때면 나는 '이 놀이'를 한다

by 슥슥






9시부터 4시까지 연이은 회의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금요일. 매일 하기로 한 8 천보걷기까지 마친 후 씻고 나니 저녁은커녕 침대에 뻗을 수밖에 없었다.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잠시 자취 집의 적막을 느꼈다. 말하고, 전화하고, 조율하고, 엑셀을 보고, 그러다 다시 말하는 몇 시간 전의 내가 떠올랐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탈탈 털어낸 시간들이 기억났다. 그제야 완전히 구멍 나버린 내면을 자각했다. 다시 이 기분이다. 회오리가 지나간 듯 텅 비어버린 허탈감.





이럴 때면 모바일로 이것저것 오락거리를 찾게 된다. 이 방식이 더 마음을 가볍게 할 걸 알면서도 가벼움에 중독된 듯 휘발성 강한 재미를 찾아다닌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미뤄두었던 웹툰을 보았다. 읽지 않은 메시지 개수가 보이는 카톡 대화창도 훑었다. 헤드라인에 낚인 기사 몇 개도 클릭했다. 이 모든 것이 십여 분 만에 끝이 났다.

역시나 재미있고 가벼웠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핸드폰을 끄자 다시 천장이 보였다. 이불을 덮고 있음에도 속 빈 감정 때문인지 서늘함이 느껴졌다.

'이제 무얼 해야 하나' 질문을 품은 순간, 유튜브라는 매혹적인 놀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시간을 물처럼 쓰다 마음에 먹구름이 더 짙게 깔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하는 '놀이'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정신을 딴 곳으로 돌려 현생을 순간적으로 잊게 하는 '고통 마비 놀이'이고(유튜브가 좋은 예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걸 알아가며 여러 기억을 소환시키는 '생각 확대 놀이'이다.

평소와 다르게 첫 번째에 구미가 당기지 않는 걸 보니 오늘은 아무래도 후자의 놀이가 필요한 날인 듯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곧장 몸을 뒤집어 엎드린 상태로 생각 확대 놀이를 시작했다. 책을 펼쳐 든 것이다.







놀랍게도 나의 가정은 맞아떨어졌다. 무심히 책 한 권을 펼쳤을 뿐이었는데 두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 내 안의 어떤 공백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상하지만 분명한 감각이다.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감각이기도 하다.







22년 8월 19일.

이렇게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힘든' 금요일이 '좋은' 금요일이 된다.


창문 밖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었던,


기억하고 싶은 금요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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