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네요

by 슥슥


12월 초에 윤슬님의 편지를 읽은 것 같은데 12월 말에야 답장을 하네요. 거의 매번 '회신이 늦어서 미안해요'라는 말로 글을 시작했는데 결국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어요. 한 달 만에 답신을 하는 날 말이죠.

이렇게나 회신이 늦은 이유에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어요. 어떤 대단한 이유.... 같은 건 없었고요, 그저 허둥지둥 지냈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고백해요.

일하지 않는 처지, 그러니까 자유의 시간을 적응하는데 제가 많이 서툴더라고요. 좋다가도 무섭고, 두렵다가도 기분이 째지는 순간들이 속수무책으로 이어졌는데 이 감정들이 버거워 12월은 허둥대는 날들의 연속이었어요. 그래서 늦고 말았습니다...;





실은, 지난주에 윤슬님에게 답장을 쓰려 브런치를 열었고 심지어 몇 문단을 남겨놓았데도 불구하고 끝내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했어요. 수신자에 대한 관심은 적고 발신자에 대한 근황만 줄줄이 늘어놓는 저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직장인 신분을 버리고 모교 도서관에서 숨어 지내다 보니 저에게만 파고드는 경향이 더욱 커지고 있나 봐요. 저와는 달리 슬님은 항상 먼저 다가와 상냥한 안부를 남겨주는데도 말이죠. 그 댓글들과 마주하다 보면 자꾸 얼굴이 붉어져요. 제가 다가가는 법에 참 서툴구나 싶어서.





답신에 게을러서 부끄럽고 또 관심을 표현할 줄 몰라 쑥스럽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답장을 써봐요.









나를 존중하기가 수월해지도록
작은 성취의 경험부터 쌓기



윤슬님의 근황을 읽으면서 문득 이 문장이 떠올랐어요. 책 <더 좋은 곳으로 가자> 후반부에 나오는 대목인데, 아무래도 하루의 루틴을 지키려는 윤슬님의 모습이 위의 문장과 닮아있어서인 것 같아요. 운동과 독서, 두 가지를 통해 새로운 재미와 활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이 참 반가워요. 헬스장에서는 힘을 발산하고, 직장에선 (책으로) 에너지를 쌓는 일을 균형 있게 병행한다는 점에서 역시 윤슬 님은 스스로를 잘 돌보는 사람이구나 느끼기도 했고요. 물음표가 가득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하셨지만 저는 의심하지 않아요. 윤슬님이 쌓고 있는 건강한 습관이 삶의 무게를 견딜 단단한 근육이 될 거라는 사실을요. 그러니 두 가지 루틴을 삶에 잘 안착시키길 진심으로 바라요 :-)





제게 이런 질문을 주셨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는 하루하루가 어떤지 궁금하다고요. 저의 근황을 전하기 전에 사진 하나를 먼저 투척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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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찍은 이 피사체는 놀랍게도 돌하르방 눈사람입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조각물을 촬영한 곳은 좀 전에 잠깐 언급했듯이 10년 전 다닌 모교이고요. 지난여름휴가 때 도서관을 방문하고 정서적 평화를 얻은 뒤 학교는 자연스럽게 저의 안식처가 되었는데요. 요즘엔 무기력 방지 차원에서 적어도 3일은 그곳으로 출근(?)하고 있어요.

도서관에서 마음껏 읽고 쓰다 불쑥 산책을 나가곤 하는데, 보시다시피 눈으로 조각을 빗는 후배들의 엄청난 손재주에 매일 놀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에서 이미 곰돌이 눈사람과 토끼 눈사람, 그리고 토토로 눈사람을 보셨죠...?)





어제는 학교 도서관이 유독 조용했는데 벌써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더군요. 덕분에 저는 넓은 도서관을 마치 전세 낸 것처럼 유유자적 누렸어요. (이때가 바로 기분이 째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매일 좋지만은 않아요. 가끔은 속이 출렁거릴 정도로 흔들리곤 합니다. '내가 정말 퇴사를 질렀구나' 싶으면서 아찔해지고 무서워지거든요. 하지만 그럴 땐 어떻게든 시선을 '현재'로 돌리려 해요. 과거도 미래도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물론 현재의 행동들이 쌓여 미래로 이어지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현재에만 충실해보자 마음먹기로 했어요. 불안을 그저 불안으로만 남겨두지 않기 위해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책을 열심히 찾아 읽고 있기도 하고요.





'어차피 한평생 노동자로 살 운명이라면 찰나의 자유라도 온전히 만끽하고 싶다.' 이런 배짱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어요. 자유의 시기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인생에서 자주 있는 일도 아니니 이왕 값을 치른 거 후회 없이 누려보고 싶은 마음인 거죠. '두려운데 참 귀하다' 이러면서 도서관에서 자주 누워지냅니다. (... 도서관 내부엔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독서 명당입니다.)





아, 책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최근에 읽은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에 이런 문구가 있었어요.

어쩌면 우리는 변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계속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쩐지 이걸 글벗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우리의 글이 10개 이상 발행되면서 서로의 변화가 이 공간에 잘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혼자 쓰던 글쓰기에서 '함께 쓰기'로 달라졌고, 슬님이 좋아하는 문장처럼 올해는 각자 앉은자리를 부단히 바꾸려 했었으니까요. 제주를 닮은 삼척의 바다 앞에서, 그리고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우리가 그토록 쓰고 싶었던 이유도 저 마음 때문이지 않았을까요? '너무도 변하고 싶어서'

쓸수록 더 쓰고 싶어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저는 끝없는 갱신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의미로 내년에는 거창한 목표는 접어두고 그저 열심히 기록을 해보려 합니다.





윤슬님은 어떠신가요?

새해에는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