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에 돌아온 재난 영화
1996년 오리지널 '트위스터(Twister)'가 평생 하늘을 보는 직업을 갖겠다고 생각한 나에게 꿈을 꾸게 했다면, 28년 후 속편 '트위스터스(Twisters)'는 대학 시절을 추억하며 미소 짓게 했다. 유체역학, 열역학, 대기물리 등 전공 수업이 드문드문 떠올랐고, vortex, shear 등 대학 졸업 후 잊었던 단어를 들려줬다. (대기과학 첫 보고서 주제가 '집중호우'였다는 쓸데없는 디테일도 생각나더라.)
트위스터스는 '미나리'로 잘 알려진 정이삭 감독 작품으로 오클라호마에서 나고 자라 토네이도가 삶의 일부인 그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로케이션도 꼭 오클라호마로 하고 싶었다고.
두 영화 사이 28년이라는 시간차를 가장 잘 드러내는 건 CG와 화질이 아닐까. 토네이도를 찾고 연구하고 분석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인간들의 고군분투라는 큰 줄기에는 변함이 없다. 그동안 인간 사회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인간은 자연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게 참 경이롭고 겸손한 마음이 들게 한다.
'트위스터스'는 제작 과정에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NOAA: 미국 해양대기청)의 과학 자문을 받아 최대한 현실적인 토네이도 과학을 반영하고자 했다고 한다. 물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화학 물질을 사용해 토네이도를 무너뜨리는 건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런 물질이 존재한다고 해도 토네이도의 에너지를 능가할 만큼 다량의 물질을 살포하게 되면 환경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 수도 있으며 기상현상 자체가 지구의 에너지 순환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시도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토네이도는 따뜻한 공기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생성되는 상승기류(updraft)와 차가운 공기가 하강하면서 생기는 하강기류(downdraft)가 만나는 조건에서 발생한다. 메조사이클론(mesocyclone)이라 부르는 회전 상승기류를 가진 수퍼셀이 그 시작이다. 수평으로 회전하는 기류가 점점 강해지면 소용돌이가 생기면서 토네이도가 된다. 실현 불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영화에서 케이트의 이론은 중합체(polymer)를 공중에 살포해 수증기를 차단함으로써 상승기류를 막는 방법으로 토네이도를 없애려고 한다. 결과는 영화에서 확인! (과학 지식 하나도 없어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
'트위스터스'는 화산과 지진에 푹 빠져 결국 외고에 들어가서도 결국 지구과학II를 선택과목으로 택할 정도로 내가 사는 지구와 우주를 알고 싶었했던 그 마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 영화다. 영국 최대 스크린에서 보려고 반차 내고 후다닥 달려가길 잘했다. 아직 한국 개봉 전이지만 마음에 드는 대사가 몇 개 있어 한글 자막이 벌써 궁금해짐.
You don't face your fears, you ride them(두려움은 마주하는 게 아니라 올라타는 것이다) - 무섭지 않냐는 케이트(데이지 에드거존스 분)의 질문에 타일러(글렌 파월 분)는 이렇게 답했다.
If you feel it, chase it(느껴지면 쫓아라) - 타일러가 이끄는 토네이도 랭글러(Tornado Wrangler)의 슬로건인데 느낌이 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쫓아가라는 응원 구호로 쓰인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케이트가 이 말을 그대로 타일러에게 돌려주는 재미난 장면이 있어서 한글 자막을 어떻게 풀었을지 매우 궁금하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 알고 싶다는 욕구, 풀리지 않는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희열,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이런 감정들을 다시 떠올리게 한 작품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정신. 누군가는(내 동기들, 선후배님들!)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하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파헤치고 있음에 응원을 보낸다.